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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30. 2023

동생의 여자친구는 싫었고 동생의 아내는 좋다

멀리 살아 더 좋은 시누와 올케입니다.

나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중학교에 가자 마자 발라당 까지기 시작했던 나와는 달리

얼빵하리만큼 순진했던 내 동생은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조금씩 세상의 때를 묻혔다.


그간 맞아가며 내가 길을 잘 닦아놓은 덕분에

이 녀석의 일탈은 무해하고 무탈한 애교가 되었다.

새끼 강아지가 이 날 때 간지러워 자꾸 깨무는 것 같은 타격감 제로의 애교.

그 누구도 성인이 된 내 동생의 일탈에 터치 하지 않았다.


남자라 그런지 나에게는 엄수를 종용하던 통금이 단 한 번도 적용되지 않았다.

군대에 가서 담배를 배워와도 잔소리도 한 번 안들었다.

술을 먹고 들어와도 남자가 그럴 수 있지 하고 엄마는 콩나물국을 끓여주셨다.


스무살이 된 동생과 동생친구를 막걸리집에 데리고 가 술을 먹이며 술을 가르친 것도 나였다.

그날 사이다 탄 동동주 맛을 호되게 본 동생은 지금까지도 동동주나 막걸리는 안먹는다.

나한테서 더럽게 배운 탓인지 술 먹고 주정부리는 이 놈을 잡는 건 내 부모가 아닌 나였다.


가끔 우리집에 술 먹고 와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던 동생 친구들은

내게 등짝도 맞고 어떤 날은 뺨도 맞았다.

(나는 손이 참 맵지만 가벼운 사람이었고,

내 동생 친구들은 나한테 맞는 걸 어찌보면 좀 즐겼던 것 같다.)


두드려 맞아도 다음날 나를 보고 실실실 웃으며 누나 죄송해요 소리나 하던,

내 동생과 내 동생친구들은 정말 똥멍청이들이었다.


초록은 동색이고 유유상종이란 말 처럼, 멍청이 옆에 똥멍청이.

내 동생과 그 친구들은 내게 딱 그러한 끼리끼리들이었다.


그러나 멍청한만큼 착하고 순진해 부려먹기 좋고,

내 말은 투덜거리면서도 일단 다 들어주는 귀여운 것들이라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냄새나는 머스마들끼리 술이나 먹고 담배나 필 줄 알았던 동생이

군대를 다녀온 후 첫 연애를 시작했다.

(물론 지금의 올케가 동생의 첫사랑은 아니다.)


동생이 교복을 입던 날부터 여자는 네 왼쪽으로 세우고 걸어라 하고 가르쳤고,

동생이 성인이 되었을 때 콘돔을 주며 책임지지 못할 행동은 하지 말라 가르쳐왔었다.

여자하고는 거리가 먼 부류들이었기에 가르치면서도 이걸 언제 써먹나 했는데 결국 그날이 왔다!


동생이 처음 여자친구를 사겼을 때 나는 이 똥멍청이를 만나는 아이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연민. 동정. 호기심. 궁금증. 애정 등등등.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해봐도 대체 왜 얘를 만나나 싶어 처음엔 그 아일 무조건적으로 이뻐했다.


물론 내가 남자친구의 쉽지 않은 누나인지라 그 아이와 편한 사이되지 못했다.

나는 여자 형제가 없던 탓도 있고, 선후배 관계가 명확한 여중, 여고를 나온 탓에  나보다 어린 여자를 편하게 대하는 을 몰랐다.


그리고 사회 초년생이 된 나는 내 앞가림에 바빠 그 아이에게 베풀거나 무언갈 해준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우리 모자란 똥멍청이를 만나주는 그 아이가 그저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나는 동생의 여자친구가 미워졌다.

똥멍청이 옆에 똥멍청이 하나 더 추가된 거구나 싶어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내가 못되먹는 시누가 될 인간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 와서 라면을 먹고 치우지 않고 나간 그들의 흔적을 보며 열을 내었다.

내 차를 끌고 나가 그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며 사고를 내는 동생놈도,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라 가라 하던 그 아이도 모두 싫었다.

내 동생과 싸우고 내 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술을 처먹게 만드는 것도 싫었다.

-이놈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여친과 싸운 티는 매 번 났다.


모자란 내 동생과 만나주는 걸 고맙게 여겼더니

어느새 우리 가족의 고마움을 권리인양 구는 게 싫었다.

그 애의 꼴도 흔적도 보기 싫어서 동생을 개 잡듯 잡기도 했고,

내 눈앞에 그 아일 보이지 말라는 모진 소리까지 했었다.

그리고 동생은 짧지 않은 첫 연애를 끝내고 결국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바람이 난 첫 여자친구에게 시원하게 차이고 나서 생긴

동생의 두번째 여친은 어쩐지 처음부터 싫었다.

그래서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관심을 두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게 내 동생을 가운데서 힘들게 할 줄 알면서도,

나는 싫은 건 무조건 싫은 사람이라 티를 팍팍 내었다.

하는 짓 마다 모자라 보이고 핀잔하고 면박을 주니 어느새 동생도 지친 듯 했다.

빨리 결혼하고 독립해 자리를 잡고 싶어하는 동생과 뜻이 달라 트러블이 있었다.

그렇게 내 동생은 두번째 여자친구와도 결국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뒤 내 동생에게 세번째 여자친구가 생겼다.

인생은 삼세판, 연애도 삼세판!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본 건 어쨌거나 셋뿐이니!)

동생의 세 번째 여자친구는 지금 나의 올케가 되었다.







올케와 남동생 둘이 연애를 하기 전부터 나는 이미 결혼을 해 집을 멀리 떠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에 갔더니 동생이 대뜸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일 년에 몇 번 다니러 오는 게 전부인 나를 만나기 위해  

올케는 동생과 둘이 예정된 여행을 양보하고 우리 식구들을 여행지에 초대했다.


물론 그 때의 나는 동생 여친에 대한 그 어떤 기대도 없었다.

그래서 또 볼지 안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성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날 유독  나는 참 무개념하게 굴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왔다는 핑계로 얼굴도 모르는 동생 여친에게 애 둘을 맡겨놓고

(물론 동생과 내 남편이 있긴 하였지만)

나는 내 친구들을 만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여행지로 갔다.


아이들은 동생 여친 덕에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들어있었다.

술잔을 앞에 두고 마주한 동생의 전 여친, 현 올케의 첫 인상은 '요것봐라?'였다.


그 날로부터 얼마 전 서울 우리집에 다니러 왔던 내 동생은

같이 먹은 술에 저만 취해 함께 있던 아빠께 대드는 바람에

나에게 뺨을 맞고 내 집에서 쫓겨났었다.


그 때의 얘길 꺼내며 동생 여친은 잘못된 행동을 한 동생을 때린 나를 이해한다면서도

나이 서른이 넘은 다 큰 동생을 때리면 되냐고, 말로 하지 그랬냐고,

아프게 왜 때리냐고, 오죽하면 아빠께 그러했겠냐고, 불쌍하지 않냐고.

제 할 말을 아주 반듯하고 정중하게 따박따박 했다.


누나 무섭단 소리를 하도 동생 친구들로 부터 많이 들어서 긴장된다며

손 끝은 덜덜덜 떨면서 술김을 빌려서라는 핑계로 술을 연거푸 마시면서 말이다.

(영업 짬밥에 술힘이 필요한 것인지, 술이 센 건지 정도는 이미 다 파악했다.

동생 여친은 아마도 내 동생보다 나보다 훨씬 더 술이 셀 듯 싶었다.)


우와!


제법 육감이 좋은 나는 사람 좀 볼 줄 안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세번 째 동생 여친을 만나서 얘기를 나눈 그 날. 딱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얘 잡아야 한다!!!!"


겉으론 똑똑한 척 굴지만 멍청한 내 동생이 이 아일 잡기만 한다면

지가 가진 복을 처복에 모두 갖다 쓰는 게 될 만큼 성공한 거라고.

이 애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싶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마음 속 생각과는 달리 예비 올케로 점 찍은 그녀에게 쉽게 굴지 않았다.


속으로 쌍수 들고 환영한다 싶으면서도

같은 여자로서 시집과 동시에 열릴 고생길에 대한 미안함에

웰컴투 헬, 아니 웰컴투 하드 시월드 하며 어서 오라고 차마 손짓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 올케는 똥멍청이 옆에서 멍청이가 된 것인지

세월이 흘러 제 발로 우리집으로 걸어들어왔다.


어쩌나!!!!

너 이제 큰일 났다!!

우리집은 물려 받을 것이라곤 선산과 일년에 10번도 넘는 제사뿐인데!

노후 준비 안된 부모님 사이도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라 가운데서 고생할텐데!

그나마 다행인 건 성격 지랄 맞은 시누는 하나 뿐인데다 멀리 살아.

그거 하나 위로 삼으며 살래?


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지만 나는 격하게 올케를 환영하고 있었다.


나는 올케가 진짜 우리 식구가 된 게 참으로 반갑고 좋았다.

동생 결혼식날 사진을 보면 아마 내가 제일 많이 웃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시누년은 시누년인데다

내 성격이 불편한 사람을 상대로 절대 편한 성격은 아닌 걸 안다.

그래서 멀리 사는 게 다행이다 싶게 적당한 관계만 유지하고 있다.


자주 연락하지도 않고, 그 흔한 SNS도 묻거나 찾아보지도 않는다.

한 때는 사람찾기 라면 내가 기술이다 싶을 정도로 잘 팠는데,

올케에겐 그러고 싶지 않다.


지켜주고 싶고 소중히 해주고 싶다.


돈이 있다면 돈으로 치대서라도 붙잡아 두고싶다.

그런데 우리 올케가 나보다 돈도 더 잘 번다.

그래서 나는 손윗시누면서 맨날 받기만 한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늘 마음 뿐이라는 핑계도 이젠 미안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우리 올케는 내 마음을 먼저 알아준다.

생각이 짧은 나보다 깊고 너른 생각으로 나와 내 동생의 부족함을 채워준다.


우리 아빠는 나한테도 불러주지 않던 '공주'나 '복덩이'란 애칭으로 며느리를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케에게는 질투가 전혀 안난다.

우리 올케는 내가 생각해도 복덩이가 맞다.

넝쿵 째 굴러들어온 복덩이.



내가 보는 눈이 참 정확했던지, 결혼식 이후 지금까지 동생 부부는 잘 살고 있다.

여지껏 살아온 걸 보면 동생은 올케 덕에 사는 것 같다.


성질이 지랄 맞은 나보다 더 안좋은 꽁한 성격을 가진 트리플 에이형 내 동생.

그 모든 걸 맞춰주고 참아주고 인내하며 살아주는 우리 올케.

내 동생같은 똥멍청이를 고른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 게 정말 정말 불쌍하고 안됐지만

내 동생, 내 조카, 내 부모 그리고 나에게 잘 해주어서 너무 고맙고 이쁘다.


혹시나 만약에 동생이 이혼하면

동생을 버릴지언정 올케는 주워 담고 싶을 정도로 올케가 이쁘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죽어도 작가는 하지마라고 끝끝내 막으셨던 부모님 보란 듯이 제일 먼저 가족단톡방에 알렸다.

엄마 아빠는 전화 와서 쓸 게 고작 이혼 이야기냐고 핀잔하셨다.

그런데 우리 올케는 다 아는 내 얘기를 읽으며 울고 웃고 했다며 잘 하신거라며 응원해줬다.

동생놈은 암만 신경 써서 키워봤자 내 글 따윈 읽어주지도 않는다! (야이 나쁜놈아, 보고있냐?)


그리고 며칠 전 우리 올케가

"구독자로서 응원한다"며 내 글을 읽고 향수를 보내왔다.

눈물이 찔끔 났다.


해준 것도 없는 시누년이 뭐가 좋다고 맨날 응원하고 격려하고 기뻐해주는 지.

나는 우리 올케에게 또 빚을 졌다.

그러면서 나를 보며 느끼는 바가 커 해야할 자신의 공부를 미루지 않고 시작하겠노라 했다.

올케가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말에 딱 한 단어가 떠올랐다.


선한 영향력.


이렇게 내 주위에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참 많다.

힘든 세상살이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나의 검은 에너지를 그들은 이렇게나 밝게 바꾸어준다.


진심을 한 가득 담아 말했다.

"고맙다" 고.




올케처럼 나도 마음도 넉넉하고 주머니도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기에 올케도 내 생각만큼 힘들지 않은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 올케는 늘 꽃길만 걸으면 좋겠다.


동생놈에게 늘 아내에게 고마워하고 내 몫까지 네가 더 잘 하라고 당부하지만,

부부사이에 그 말이 다 먹히진 않을 거란 게 안타깝다.


모자란 내 동생 데리고 살아줘서 고마운 우리 올케를 위해

나도 선물을 하고 싶은데 뭘 해줘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센스가 모자란 탓인지 어떤 걸 주면 좋아할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 맛있는 식사 한 끼 대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동생 빼고 올케랑 나랑 둘만 나가서 진짜 비싸고 좋은 거 먹고 신나게 놀다 들어 와야겠다.

동생과 남편에게는 애나 보라고 해야지!


올케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시누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열심히 산다.

매일 매일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할 이유가 내겐 있다는 게 감사하다.


나도 올케도 우리 모두 행복한 수요일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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