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김에 키웁니다 36
차에서 "엄마!" 하고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그 부름 뒤에 나올 말을 알 수 있다.
"나 쉬마려!" 아니면 "나 똥 마려!" 라는 걸 말이다.
외출 준비를 하며 분명히 나는 차에 타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몇 번이나 말한다.
"알았어!" 하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든, "안 마려워!" 하고 그냥 나오든.
왜 차만 타면 갑자기 쉬가 마렵고 똥이 마려운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배변 조절을 의지대로 하지못하는 돌쟁이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마렵다고 한다.
가끔은 나나 남편을 엿먹이려고 일부러 이러나 싶기까지 해 기분이 더 더더 언짢다.
하나 누이고 출발하면 또 다른 녀석이 또 마렵다고 할 땐 정말 단전 아래에서부터 깊은 빡침이 올라온다.
"아!!! 쫌!!!!! 안갈 거야?!!!! 좀 가자 좀!!!!"
다섯 식구가 어디 한번 길을 나서면 길에서 화장실을 찾고 싸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요즘에야 고속도로 중간 중간에 졸음 쉼터가 워낙 잘되어있어 차라리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마렵다는 건 괜찮다.
오늘은 문제없이 잘 출발했다 싶은 날에도 꼭 올림픽 대로나, 외곽 순환 고속도로 등 화장실이 없는 도로에만 가면 아이들은 너도 나도 마렵단다.
길을 달리다 말고 차를 세우고 노상방뇨를 하기에는 이미 궁뎅이가 너무 커버린 딸들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어쩌라고!!!!!!"
"좀 참아!!!!!"
"그러게 집에서 다녀오랬잖아!!!!!"
남편과 나는 앞좌석에 앉아 마렵다고 다리를 꼬아대는 딸들을 향해 짜증이 깃든 잔소리 폭격을 날린다.
"미리 미리 싸지 않고 꼭 어디 간다하면 마렵다하고, 달릴만 하면 마렵다하고.
왜 맨날 화장실 없는 데서만 마렵다고 하는 건데!"
솔직히 여섯살인 아들은 아직 차에서 빈 물병을 갖다대고 처리가 가능하다.
그래서 아들의 '쉬 마려워'는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이 녀석은 언제나 똥이 문제다.
딸들은 대부분 아침에 자고 일어나 학교에 가기 전에 큰 볼일을 보는 아주 건강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설사병이 나지 않는 이상 차에서 어지간하면 똥마려! 소리는 잘 없다.
하지만 아들놈의 작은 체구는 똥을 쌓아둘 공간도 작은지, 걸핏하면 똥! 응가! 마려~~~~를 외친다.
실제로 막히는 고속도로에 13시간이나 갇혔던 지난 추석.
우리 아들은 차 안에서 봉지에 대고 응가를 해결하기도 했다.
아직은 똥도 예쁜 여섯 살 막내라 가능했지만,
클 만큼 큰 열여섯짜리가 차 안에서 봉지에 대고 똥을 싸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차만 타면 마려운 이 버릇을 어찌 고쳐놔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이 된다.
며칠 전 아이들을 두고 남편과 단 둘이 차를 타고 갈 때의 일이다.
당연히 차에 타기 전 나는 집 화장실에서 억지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내고 나왔다.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 다니러 가는 것이라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조수석에 앉아 막히는 도로를 언제 빠져나가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하게 요의가 느껴졌다.
참아보려고 다리를 달달 떨어보고 핸드폰도 보며 딴 짓을 했지만 소용이 없다.
"오빠, 나 쉬 마려!"
아침 식사 후에 커피에 물을 왕창 타서 마셔버린 탓인지,
유지를 위해 줄이긴 했어도 여전히 먹고 있는 다이어트약의 이뇨 작용 덕인지
정말 불현듯 요의가 갑자기 느껴졌고 그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애들이 누굴 닮았나 했더만, 차만 타면 마려운 게 너 닮았구만!"
난 이제 겨우 한 번 쉬마렵다고 한 건데, 상습범들을 나에게 갖다붙이다니!
억울하다!!!
기분은 나쁘지만 일단 핸들을 쥔 이가 내가 아니니 한발 물러났다.
"아, 됐고. 오빠 나 빨리 화장실!" 하며 비굴하게 애원했다.
"좀 참아 봐!"
애들한테 하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 받았는데, 성질이 난다.
"참아질 것 같지 않으니까 말을 했지! 빨리 주유소에라도 들어가!"
"으이구... 애들이나 엄마나 차만 타면 왜 그러냐,
다행히 저기 앞에 주유소 하나 있다고 나오네. 잠깐만 기다려 봐."
조급해진 내 표정에 남편은 막 풀리기 시작한 도로에서 가속페달을 깊이 밟아 속력을 냈다.
한번 마렵다고 느끼자 온 몸의 신경이 방광으로 향하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다.
"아..... 커피 괜히 마셨어."
"커피 핑계는!"
핸들을 두 손에 쥐고 운전을 하면서도 핀잔은 잊지않는 그 입!!!! 밉상이다!
"나 카페인 하수잖아. 앞으로 차 타기 전엔 커피 안마셔야겠어."
망각의 동물이라 돌아서면 금세 잊고 말 다짐을 해보지만 지금 내 사정은 너무나도 급하다.
빠르게 주유소 화장실 앞에 차를 세운 남편이 버튼을 눌러 차의 잠긴 문을 풀었다.
"얼릉 다녀와. 금강산도 쉬후경이지!"
"어! 차 제대로 대고 기다려!"
후다닥 내려 시원하게 볼일을 보면서 남편의 말을 자꾸만 곱씹는다.
금강산도 쉬후경.
참 재밌는 말이기도 하고, 맞는 말이기도 하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센스 넘치는 말이다!!!
배 고파서 예민해지는 것은 그래도 참을 수 있지만, 마려워서 급해지는 사정은 허기보다 더 간절하다.
시원하게 쏟아내고 나와 거울을 보는데 개운한 얼굴이 괜히 머쓱해진다.
'우리 애들도 의지와 상관없이 이렇게 급했겠지' 싶으니 짜증을 낸 게 미안해진다.
속마음을 숨기고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차에 올라타자 남편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시원해? 이제 애들 쉬마렵다 똥마렵다 해도, 너는 아무 소리 못하겠다!"
어쩜 저리 얄밉게도 내 마음의 소리를 쏙쏙 뽑아서 얘기하는지!
나중에 내가 운전대 잡고 남편이 마려울 때 한번 보자!!!! 싶었다.
"어! 인제 뭐라 안하려고.
못 싼다고 생각하니까 더 마려운거 있지!
나 진짜 바지에 싸는 줄 알고 식겁했네.
누구 말마따나 금강산도 쉬후경이라고 이젠 애들 마렵다면 다 받아줘야지, 뭐."
나를 놀리는 게 재밌는지 남편이 웃었다.
"그래서 시원하게 다 눴나? 이제 출발해도 되나? 또 가다가 급똥이다 뭐다 하는 거 아니지?"
"어!!! 다 눴으니까 적당히 놀리고 이제 출발해! 늦었어!"
"애가 없으니 어른이 난리구만."
마지막까지 남편은 야무지게 나를 놀려먹었다.
타격은 1도 없는 놀림이지만 마렵다며 울상이 되던 아이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근데.... 마렵다 생각만 했는데 이게 점점 급해지더라니까.
그리 오래 참은 것도 아닌데 한참 나오더라!!!! 진짜 커피 때문이었나봐!"
부부가 나란히 앉아 한참을 싸는 이야기를 하며 갔지만,
왜 그런지 이유는 각기 달라도 애들의 급한 사정을 몸소 체험해보니 화를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몇 번을 반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앞으로는 금강산도 쉬후경이니 화내지 말고 아이들이 마려울 때 용변을 잘 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