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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an 10. 2024

슬프면서 기쁜 날

누군가는 떠났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어서

29살에 결혼을 했던 나지만

남편과 6살 차이가 나다보니

나의 라이프사이클은 친구들보다 5-10년은 먼저 간다.



하지만 돈 없이 나이만 먹은 남자의 삶에 뛰어든건

정말 겁 없고 무모한 일이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그런 나를 쭉 지켜본 누가 내게 해준 말처럼

나는 나이 많고 돈 없는 남자 덕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제법 하며 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눈에 보여도 모른척 선택한 내 잘못인걸!

(솔직히 투 머치 였던 내 사랑은 눈과 귀를 멀게 해

제대로 된 현실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했었다.)




내가 결혼할 당시에도 남편은 사업만 한다뿐 잘 벌진 못했다.

여지껏 결혼 1n년이 넘도록

남편이 일년 열두달을 꼬박꼬박

금액과 상관없이 쉬지않고 벌어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한 회사에서 1년 넘게 일한 적도 없고

혹시나 그만큼 일을 했어도 12번의 월급이 쉬지 않고 제 날짜에 나온 적은 없었다.


퐁당퐁당 가져오는 돈으로 살아온게 신기할 정도로!








40대 초반이었던 남편의 사업에 쫄딱 망했을 때도

나는 집구석에서 줄줄이 애나 낳고 키우며 무능력했었다.

다행인건지 운이 좋은건지

나는 그 때 여전히 30대 중반으로 어렸다.


"쟈기 자빠진게 50대 아닌 게 어디야, 난 아직 30대야! "

오로지 덜 먹은 나이 하나 위로 삼고

넘어졌던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땅을 짚고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나와 남편과 아이셋까지 일으키는 동안

초라하고 처절했던 내 모습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안식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만큼 힘들진 않으니까!하는 그런 류의 위안.


그래,

30대 때는 넘어져도 일어 날 용기가 불끈 생길 정도로 어렸다.

시기 자체가 주위에서도 결혼 임신 출산 돌잔치 같이

축하해야 하는 일이 더 많은 푸르른 나이였다.


40대가 되고보니 겁 없던 나도 이젠 자주 겁이 난다.

누구 엄마 어디아퍼 누구 아빠 무슨 암이래

누구씨 회사 짤렸대 누구네 누가 돌아가셨대

하고 주위에서도 슬픈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온다.



오늘도 평생 담배 한번 피우지 않으셨던

내 어릴 적 이웃집 아저씨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 집 딸들과 나는 사춘기 시절에도 같이 목욕탕을 다녔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가봐야하는데 가볼 수 없어 마음만 엄마편에 대신 보내고 슬픈 날.


큰딸의 어린이집 친구 엄마로 알게 된 광대미녀가 하필이면 또 이러고 내 마음 건드는 소릴 했다.


(주변 사람이 잘 되는 거 넘 좋다)라는 말.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그 얼마나 이쁜 말 예쁜 마음인가!!!


나이가 들수록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이가 되어야는데,

상대의 아픔과 슬픔에 스스롤 위로하는 못난 마음에

남이 덜 되길 혹은 잘되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행복은 상대평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상대가 불행해진다고 내가 행복해지는 게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머리론 알면서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은 슬프지만 다행스런 날이다.

내 주위에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어서.



모두모두 잘 되자!

나도너도 잘 되자!


잘 되는 모습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지!


지금의 나처럼 열심히 사셨던 그분의 명복도 함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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