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해준 맛, 음식
전남편이자 현 동거남인 남자는 강원도가 고향이다.
그의 부모님의 고향도 강원이고, 3대 독자였던 그의 할아버지 고향도 강원도이다.
낳기는 강원도에서 낳았어도, 자라는 건 경기도에서 자란 그에게는
손만두를 빚어먹던 강원도민의 피가 흐른다.
해마다 시부모님은 밀가루를 반죽하여 밀어 주전자 뚜껑으로 찍어낸 만두피에
김치가 잔뜩 들어간 소를 만들어 넣고 만두를 빚으셨다.
남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리 해오셨고, 남편이 자라는 동안도 하셨고,
남편이 다 자라 독립을 한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오고 계신다.
그 덕에 나도 결혼 전부터 그 밍숭맹숭한 손만두를 먹었다.
만두나 수제비처럼 그 집 식구들이 좋아하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기에
딱히 겨울이 온다고 해서 그 손만두가 생각나거나 먹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결혼 후 나는 오로지 남편 하나를 위해 거의 해마다 만두를 빚어왔다, 이혼 전까지는.
그의 귀책으로 이혼까지 한 마당에
뭐가 이뻐서 그가 먹고싶다는 걸 정성들여 시간들여 해주나
라는 이유로 만두 빚기를 그만 둔 것이면 좋겠는데,
여전히 내가 열렬히도 사랑하는 그이기에 그런 이유로 만두를 부러 빚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실 이혼 후 집안의 가장이라 마음을 먹고 사는 나는
감히 손만두 빚기를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바빴고 지쳤다.
동거를 하고 있는 전남편이 여전히 곁에 있더라도
이혼 후 나의 생각과 생활은 분명히 바뀌었기에
마음의 안정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비겁하게도 손만두 이야기만 나오면 힘들다 피곤하다며 자꾸만 회피했었다.
그러다 문득 이번 주말에 만두를 빚기로 했다.
"몇 년이나 만두를 빚어주지 않았다"는 남편의 궁시렁거림이 도화선이었고,
"엄마! 우리 만두 빚어요! 만두 빚을래요!" 하는 아이들의 요청이 내 마음을 굳혔다.
만두소를 만들기 위해 아침부터 재래시장에 가서
짜 놓은 두부와 만두피를 구입해왔고,
마트에서 부추와 숙주, 간 돼지고기, 당면을 사왔다.
돼지고기에 간마늘과 다진 파를 넣고 소금간을 조금해서 볶았다.
부추를 잘게 썰고 당면과 숙주는 데쳐서 썰었다.
하이라이트인 시어머니의 재작년 김장김치도 한 포기 꺼내 쫑쫑쫑 썰었다.
이사를 하며 버려버린 베 보자기를 대신해 체를 아래에 두고
손목이 얼얼할 정도로 두보와 김치를 비롯한 재료들을 꾹꾹 짜댔다.
적당히 소금 후추 생강가루를 넣어 소를 버무려 만들었다.
"역시 네 엄마 손은 빨라!" 하며 남편이 만두 빚기를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나도!" 하며 큰딸이 앉고 작은 딸도 앉아 만두피를 들었다.
막내인 아들도 호기롭게 만두 빚기 위해 식탁 앞에 앉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만두피만 여기 저기 덕지 덕지 묻힌 채 기권을 선언했다.
사진을 하나 찍었다.
엉망인 부엌과 식탁 위이지만 다섯 가족이 앉아 만두 빚는 풍경이 가슴이 찡하도록 이쁘다.
이혼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있는 내 속은
이렇게 별 거 아닌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온전한 가정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마주한다.
그런 내 상념을 깨우듯 아이들이 말했다.
"엄마는 안 빚어?"
"빚어야지. 빚습니다. 숨 좀 돌리자!"
남편만을 위해 청양 고추를 다쳐서 가지고 식탁 앞으로 와 만두피를 들었다.
어느새 아이들 앞에 놓아진 만두가 여러개이다.
딸들이 크니 손이 제법 야무져서 120장의 만두피는 순식간에 만두로 탈바꿈됐다.
다 했으니, 맛이나 보자며 만두를 먼저 찜기에 쪄냈다.
양념간장에 콕콕 찍어 아이들이 하나 둘 먹으니 한 판은 금세 없어졌다.
"아빠는 이제 엄마가 해주는 만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그짓말! 할머니가 해주는 만두가 제일 맛있으면서."
"아니야. 할머니가 아빠 어렸을 때 부터 만두 빚어주셔서
그 추억에 만두가 먹고싶어지는 거 이긴 한데,
아빠는 아빠 입맛대로 만들어주는 너희 엄마 만두가 제일 맛있어."
시어머니의 만두에는 고기나 부추가 들어가지 않는다.
김치만 아삭아삭 씹히는 것보다
우적 우적 고기도 좀 씹히는게 좋다는 남편에게 맞춰 내가 넣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청양고춧가루를 넣어서 만두를 맵게 하시는데
나는 청양 고추를 다져 넣어서 만두를 맵게 한다.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만두를 끓이는 육수이다.
시댁 식구들이 달고 사는 양념 간장 덕분인지,
시어머니는 만둣국을 끓일 때 다싯물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아주버님이 육수를 사용해서 끓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한 몫한다.)
대신 개인 그릇에 덜어진 만둣국에
다진 마늘, 다진 파, 다진 청양고추, 고춧가루, 후춧가루가 잔뜩 들어간 양념간장을 넣어 간을 해서 먹는다.
밥 숟갈로 푹푹 떠 넣는 양념간장의 양은 정말 상상 초월이다.
그걸 평생 먹고 산 남자와 산 세월 덕에
나도 이제는 양념간장을 시어머니만큼 맛있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없는 살림에 4남매를 키우느라 양으로 승부를 봐야 했던 시어머니보다
나는 좀 더 비싸지만 좀 덜 짠 간장을 사용하고, 통깨와 생강가루를 추가적으로 넣는다.
이제 남편의 입맛에는 내 양념간장이 그에게 맞춤이 되었다.
시어머니와는 반대로 부산 출신의 나는 주로 멸치 육수를 내어 만둣국을 끓인다.
물론 약식으로 멸치액젓과 참치액젓을 섞어서 육수를 낼 경우가 더 많다.
간간한 육수에 끓인 만둣국을 맹물에 끓인 것보다 내 집 식구들은 더 좋아한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양념간장이라도 간장 섭취량이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는양념간장에 모든 간을 맡기지만은 않는다.
아무튼 오늘의 만두빚기는 그간 미루고 회피했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딸들 덕에 성공적으로 빠르게 쉽게 끝이 났고
모든 가족들이 맛있게 찐 만두도 만둣국도 잘 먹었다.
추억으로 먹는 음식.
그에게는 집에서 빚어먹는 손만두이고, 나에게는 잔치국수이다.
우리 엄마는 잔치국수를 그렇게나 맛있게 해주셨고,
딸인 나는 이제 엄마만큼 잔치국수를 맛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의 엄마는 만두를 그렇게나 맛있게 해주셨고,
그의 아들을 데리고 사는(?!) 나는 이제 그의 엄마만큼 만두를 맛있게 빚을수 있게 되었다.
우리 딸들도 나의 국수와 나의 만두를 먹으며
어렸던 오늘을 추억하는 날이 올테다, 바로 지금 남편처럼.
집에서 음식을 하는 엄마라
아이들이 자라서도 추억할 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조금 더 매일의 밥상을 신경써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방학이 되었으니, 아이들의 추억에 남겨질 음식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