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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May 22. 2024

사망보험금이 필요한 이유가 있나요

내가 죽으면 보험금이 꽤 나온단다.

건강보험료도 부담스러운 판국에 한 달에 5인가족이 보험료로만 100여만원 정도 내고 있다.

경기가 워낙 안좋고 힘들다보니 아무래도 버는 돈에 비해 나가는 돈이 많아 부담스러운 요즘이다.


게다가 보험료는 매달 나가는 고정비이지 않나!

일단 내 것부터 먼저 어떻게든 손을 써 좀 줄여보자 싶어 보험 점검을 요청했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 내 앞으로된 보험료만 매월 40만원이 넘었다.

나라는 사람 하나에 우리집 보험료의 거의 절반이 나가고 있다니!


후우!!!!







보험 점검을 마친 FC가 이것 저것 분석표를 보내주며 내게 물었다.


"보험은 골고루 아주 잘 들어놓으셨어요. 아는 분이 보험사에 계신가요?"


"아니요. 제가 대충."


그렇다, 나는 상대 나온 여자라서 보험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얼추 내가 혼자 때려잡을 정도로는 알아서 자그만 자그만하게 몇 개를 가입했다.

불필요한 것은 중복되지 않게, 중복되도 다 나오는 건 조금씩 넣어서.


"근데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네, 편하게 물어보세요."


"저... 혹시라도 계약자님이 죽고 나서 나오는 사망 보험금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네?"


"아, 보통은 남자분들 보험에 사망보험금이 높은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이걸 줄이면."


"아!!! 사망 보험금을 줄일 생각은 없어요."


여자치고 적지 않은 사망보험금에 유족에게 지급되는 생활비 보험까지 있으니 

당연히 그 까닭을 FC가 물어볼만 했다.


FC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이번에 내 보험 점검을 해주신 분은 

죽어서 타는 보험금보다 살아서 혜택을 보는 쪽으로 많이 정리를 해주신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도 보험 분석을 앱이나 보험사로 의뢰를 한 것이 아니라, 

잘하는 분이라고 지인 소개를 받아 이 분께 점검을 요청했었다.


"제가 실은 법적으로 애 셋 딸린 이혼녀거든요.

그래서  혹시라도 제가 죽으면 아이들은 제 보험금으로라도 살아야해서요."


그렇다.

보험 문제에서도 나는 내가 이혼녀라 우리집의 가장이고 세대주이자, 

죽어서도 아이 셋을 책임져야하는 양육자인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애들 아빠이자, 내 전 남편이며 현 동거남인 사람은 

내가 죽어도 내 보험금에 손도 댈 수 없지만, 내가 없으면 역시 아무것도 수 있는 게 없다.

그는 사업을 하며 받지 못해 갚지 못한 돈 때문에 아직도 여전히 신용불량자 신세이니까.

(-빨리 정리를 하고 싶은데, 이게 정리가 되고나면 그까지 정리해버릴까봐 솔직히 나도 내가 겁이 난다.)



"아아, 그러시군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긴 여운과 함께 수화기 너머의 FC가 대답했다.


이 FC는 내게 간병비 보험을 추가 할 것과, 

치아 치료 전에 보장이 큰 치아보험을 들었다가 해지하는 편법을 알려주었다.


간병비 보험이 딜레마가 되었다.

보험료를 줄이려고 알아본 것인데 막상 내 보험에서는 당장 줄이고 뺄 게 없었다.

빼면 갈아타기를 해야하니까 매월 내야하는 금액이 더 올라갔다.


"생각 좀 해보고 연락 드릴게요."


소득 없이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내게 남은 것은 내가 죽으면 꽤 많은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씁쓸한 사실 하나 뿐이었다.




"나 오늘 보험 점검 받았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하며 자신의 분야와 전혀 다른 것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남편이 내 말에 건성으로 대꾸했다.


"어."


"나, 60전에 죽으면 집 한 채 정도는 보험금으로 나오던데?!"


"너 죽고 집 한 채 생겨봐야 뭐 해. 그냥 살아."


단박에 나온 그의 말이 고맙고 기꺼웠다.

집 한 채보다 내가 더 가치있고 소중한 사람인 것 같아 기뻤다.

적어도 보험금 때문에 내가 죽임을 당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그는 무심하고 시크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내 한 끝을 잡아준다.


"근데 당신은 보험이 얼마 없어서 죽어도 보험료가 얼마 안 나와. 아파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당신은 오래 오래 아프지마라고 돈 벌면서 살아야 돼!"


나는 그가 아프지도 말고 오래 오래 살아야할 이유를 보험금에 빗대어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웃었다.


"아이고, 다행이네. 보험금이 적어서라도 난 악착같이 살아야겠네."






보험금이 얼마 나오든지 안죽고싶고 안아프고 싶다.


정말 돈이 궁할 때엔 남들은 잘만 걸리는 암이 나는 왜 안걸리나 하는 못난 생각도 들었다.

언니한테 이 얘기를 했다가 철썩! 하고 등짝을 맞기도 했다.


막상 암에 걸린다 생각하니 죽음보다 더한 공포와 싸울 것에 자신이 없었다.

살고 싶을 때 못살까봐 앞으로는 그런 못난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겨진 내 가족들을 위해 가입한 보험금이다.

힘들어도 꾸역 꾸역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점검표를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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