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좋은나 Jun 23. 2023

나의 MBTI : ESTJ-A

시간에 글자 더하기1.

어느 날, 친하게 가까이 지내는 상그니 언니가 물었다.(상그니 씨스터즈는 상그니 중그니 하그니 셋으로 구성되어있고 나는 그중에서 막내 하그니이다.)


"도대체 너 MBTI가 뭐냐? 한번 해 봐라! 아무리 오래 봤어도 쉽지 않다, 너."


내가 쉽지 않은 성격인건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세상 사람 다 아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언니의 물음에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 같은 질문에 답을 내놓고 받아든 내 MBTI는 ESTJ-A(엄격한 관리자형)이다.


MBTI를 다 믿을 수 없는 게, 엄격하다 하기에 나는 너무 위트가 넘치고 관리자라 하기에 나는 빈틈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하고 변명했지만. 상그니 언니는 이럴 줄 알았다며 내 MBTI를 곧장 수긍했다.




"이게 맞나? 맞는 건가?"


결과분석도 그걸 단박에 인정해주는 언니의 말도 인정하지 못하겠어서 억울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미대오빠가 다가와 내 MBTI 분석을 슥슥 읽어내렸다.


"맞는 거 같은데?"


도대체 뭘 보며 맞다는 생각을 하는 건지?


"내가 융통성이 없다고? 내가 얼마나 유도리 있는 사람인데! 그리고 오빠, 나 공감 못해? 나 공감능력 떨어져?"


  딱 한 줄 밖에 트집 잡을 것이 없는 것은 사실 다른 말은 다 맞는 것도 같아서이다.


나는 뒷담화 대신 앞담화를 하는 사람이다. 돌려까기 보다는 직구를 던지고 늘 마지막이나 최악을 준비하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종갓집에서 장녀로 태어나 평생을 살다보니 책임감 강한 것도 맞다. 또 나는 무엇이든 일단 꽂히면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치타처럼 빠르게 앞으로를 향해 달린다.(치타처럼 지구력이 없어 문제지만)


"글쎄."


일단 불리해지면 대답을 회피하는 그는 MBTI 마저 자유로운 영혼 ESFP 이다.







내가 나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나?


남편의 아내로, 아이 셋의 엄마로 사는 동안 나는 내 이름을 잃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싶은 것 내가 가고 싶은 것 나에게 필요한 것 나를 위한 것은 언제나 뒤로 미루고 미루었다.

엄마라면 아내라면 응당 그래야한다고 내 안의 욕심을 터부시하며 외면해왔다.


고작 MBTI 하나가 뭐라고 깊은 곳으로부터 나를 돌아보게 다.




  

어려서부터 나는 수학을 잘했지만 글쓰기도 잘 했다. 그림도 잘 그려서 상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다. 시조 외우기도 잘 했지만, 과학상자조립대회나 과학실험경영대회도 나가 상을 받았다. 학급신문을 제작하는 일도 내 일이었지만, 방과후 발명부 활동열심히던 나였다. 통기타 동아리를 할 정도로 음악도 좋아했고, 초중 기간동안에는 학교 대표로서 나가는 걸스카우트 활동도 했다.


  이런 내 과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는 (남의 눈에는 자랑 같이 보일수도 있겠지만) 좌뇌 우뇌 구분 할 것없이 적당한 수준만큼은 다 잘하는 아이였다. 다만 깊이가 깊지 못햐서 1등을 했던건 아닌데다. 뭐라도 진득하게 하는 것 없어 끝을 본 게 없다는게 약점이지만 해보까 싶은 건 일단 하고보는 하고잡이였다.

.

.

.

.

자라는 동안 내 부모님은 주6일동안 평생을 일하셨음에도 내 집 한 칸 지니지 못하셨다. 딱 먹고 살 수준으로만 버시다보니 당신들의 자식인 나도 그다지 많이 누리고 살지 못했다. 그래서 경험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며 넓혀진 견문 같은 것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뭐라도 더 내어주지 못해 미안해하셨던 내 부모님이 만약 조금 더 배웠고, 조금 더 가졌어서 내게 알려주고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 더 넓고 깊었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처럼 크지 못했을 것이다.


늘 결핍은 존재했고, 그 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은 사는 동안 내가 터득한 생존법이며 그것들이 응집하여 리더쉽, 책임감, 고집이 된 것이다.


두번째 스무살도 훨씬 지난 지금의 내가 이제야 나를 돌아본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따위의 과거는 이제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의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 시기이기에 수긍이 되는 근거는 된다.


가만히 뒤돌아본 나의 과거가 기특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어른의 머리로 키우느라 공부를 해야하는 거라고 잔소리하는 나이가 된 '나'이다.


머리와 생각이 자라는 내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이제 머리가 늙어가는 것 같다. 깜빡 깜빡 하는 게 늘었고, 습관처럼 항상 기억하던 것들도 가물 가물할 때가 있다.


이미 다 자라다 못해 기억력이 조금씩 감퇴하고있는 나이가 되어 나도 늙고 있다는 게 몸소 느껴지니까 괜히 더 욕심히 난다. 내가 조금 천천히 늙었으면 좋겠다고. 내 과거와 내 추억이 서서히 바래가면 좋겠다고.


별 것 없는 보통 평범한 날을 보낸 시간에 더해진 경험과 생각으로 만들어진 나. 나의 생각과 삶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다.


나를 반성도 하고 칭찬도 하며,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시작!


지하철 노선도처럼 내 인생도 노선도가 있다면 이렇게 흔들리지 않았을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