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노력을 했어도 이혼이란 걸 하네요.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10
행복이 꽃피던 목3동 우리집은 목동깨비시장과 걸어서 1분 거리에 있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둘째가 겨우 어린이집에 적응하여 잘 다닌다 싶을 무렵이었다.
아침부터 출근 하는 남편을 붙잡고 또 한바탕 퍼부었다.
퍼붓고 나면 속이 후련하고 시원한 게 아니라 답이 없고 변화가 없기 때문에 솔직히 더 답답해진다.
굳이 퍼붓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싶을땐 죄책감까지 든다. 아무 생각없이 멀쩡한 사람의 기분과 하루를 망친 것 같아서.
어차피 할 거면서 꼭 말을 얹는 바람에 이렇게 나는 해주고도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한다.
참을성 없는 내 입이 참 문제다, 문제. 알면서 못고치는 건 더 문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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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출근 후 두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나니 괜히 미안해졌다.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걸 해줘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무언가 살게 없을까 하며 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내 앞을 가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할머니 허리를, 할머니는 할아버지 목덜미를.
그렇게 두 분은 서로의 옷깃을 동앗줄 마냥 부여잡고 서로에게 의지해서 걸어가고 계셨다.
가까이에서 보니 할아버지 몸이 조금 불편하신지 지팡이도 모자라 할머니께 의지를 하고 계신 듯 했다.
몸이 불편하시면 외출이 쉽지 않을텐데,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하하호호 웃음소리까지 났다.
그 웃음 소리에 이끌려 내 발걸음이 빨라졌다.
두 노부부의 바로 뒤까지 다다르자 그 분들의 대화도 조금 내 귀에 들어왔다.
얼마 전 시장에 온 신발장수가 오늘은 날이 더워져 그런가 가격을 많이 낮추었더라, 그런데도 내 신발 가격은 그대로더라며 할아버지께서 흡족해하며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신발은 아마도 할머니가 골라주신 거인 듯, 마누라가 어련히 잘 골라주었겠냐며 대꾸 하셨다.
그제야 문수표도 떼지 않은 신발을 신고 계신 할아버지의 발이 보였다.
그에 비해 더운 날에는 좀 갑갑하겠다 싶은 할머니 신발에 마음이 찡했다.
벌겋게 피가 쏠린 할머니 팔에는 나처럼 까만 봉지가 들려있었다.
"아!"
내겐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양 손 가득 주렁주렁 달린 까만 봉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급히 꺼내들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뒷모습을 한 컷 찍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몰카를 당하셔서 정말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시겠지만 일단 찍었다.
딱 한 장 이 사진을 급히 찍은 후 나보다 훨씬 느린 걸음이라 겨우 몇 발짝 앞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쫓아갔다.
뒤에서 보는데 두 분이 너무 보기 좋은 모습이라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사진을 찍었다, 허락없이 찍어 정말 죄송하다. 그리고 두 분께 이 사진을 전송해드리고 싶다했다.
처음보는 낯선 이가 쫒아오자 두 분은 의아하게 나를 보셨지만, 빠른 속도로 내뱉는 내 말을 차분하게 끝까지 다 들어주셨다. 그 때에도 서로를 잡은 손은 풀지 않으셨었다.
할아버지께선 다 늙은 사람 뭐가 이뻐서 찍냐고 허허 웃으시며 사진은 필요없다고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할머니는 몇 마디 궁시렁 대셨다.
하지만 내게는 사진을 받아봐야 휴대전화는 전화만 받을 줄 알아 볼 줄도 모른다, 늙은 노인들 예쁘게 봐준 새댁이 고맙다고 해주셨다.
두 분 모두 다행히 흔쾌히 내가 찍은 이 사진을 기꺼워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부부 관계가 좋지 않을 때면 종종 이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 잡았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야만 함께 걷는게 아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더라도 서로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당겨주고.
그마저도 안되면 힘 있는 이가 업든 안고 가면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놓지 않는 마음. 사랑. 인내. 헌신. 희생이다.
왜 안아주지 않냐고, 왜 업어주지 않냐고, 왜 날 이렇게 만들었냐고 나는 남편의 탓만을 해왔다.
애 쓰고 있는 남편을 아침 출근길부터 한계로 몰아붙이며 앵앵 거렸던 나를 또다시 반성했다.
결혼도 둘이 같이 했고 애들도 둘이 함께 낳았는데,
왜 나 혼자만 힘들게 동동거리고 바람 잘날 없이 아이를 홀로 키우는 것 같냐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 마음에 너무나도 지쳤던 날이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집을 나서기 전 그가 그랬었다.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잘 안된다고.
자신은 네가 백만원 하면 백만원 하고 뚝딱 만들어내 가져다 줄 수 있는 요술 지팡이도 도깨비 방망이도 아니라고.
"그래, 당신 그릇이 그 정도 밖에 안되 거지. 내가 뭘 더 기대하겠어!" 하고 마지막 자존심까지 짓밟았었다.
말로만 사랑한다면서 나는 힘들고 지친 그 사람을 한번도 알아주지도 품어주지 못한 것 같다.
할머니는 끝까지 할아버지의 허리가 고개가 숙여지지 않도록 뒤에서 온 힘을 다해 잡아주고 계시는데.
나는 되려 내가 내 남자의 고개를 숙이게 하고 허리를 낮추게 했다.
10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도 두 분이 건강히 잘 계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나 작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반성하고 사랑만하며 잘 해주려 애를 쓰고 살았어도 결국 우리는 이혼을 했다.
이혼을 했음에도 전남편이자 동거남을 붙들고 아직까지 놓지 못하는 전부인인 나.
놓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나는 솔직히 혹시라도 지금 전남편이 아프게 된다면 그를 품어줄 자신이 없다.
그와 사는 동안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해서 더이상 그를 위해 내어 줄 만큼 남은 인내심이 없어서다.
내 감정을 몰아서 써버린 탓에 너무나도 지쳐서 아픈 그를 감당할 여력이 이제는 없어졌다.
그리고 더 솔직하자면 이제 법적으로는 남이 되어버린 우리사이에서.
만약 내가 병이 들거나 아파서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고 기대야 한다면 기꺼이 곁에서 감당해줄 이가 과연 전남편일지 확신이 없다.
아프고, 더이상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나를 그가 과연 보듬어 줄까?
그는 내 남편이었을 때 조차 내가 아프고 힘들 때마다 한 걸음 비켜나 있던 사람이었다.
이혼 후에도 같이 지내다보니 좋았던 기억보다 안좋았던 기억이 자꾸만 더 강하게 기억의 수면 위로 떠 오른다.
맥락도 없이 뜬금 없이.
매 순간 나를 시험에 드는 것 같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내가 저 사진을 찍었던 날의 감정, 저 사진을 보면서 추스렸왔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이혼녀나 되려고 그렇게 참고 마음을 다잡고 반성하고 살았나 싶다.
억울하다. 어차피 이혼녀가 될 거 였으면 진즉 때려치워버렸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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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는 이렇게 '과거와 만약'에서 매번 매 순간 흔들린다.
서로의 끝을 지켜줄 의무도 책임도 자신도 없는 관계이니까.
이혼은 했지만 재혼을 망설이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흔들리며 나아가고 있다.
그 끝이 이별이 될지 새로운 시작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기에 그저 지금은 조금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