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이 남자친구 시절일 때, 그가 내게 처음으로 준 반지는 논현동 오징어 횟집에서 소주 뚜껑을 꼬아서 만든 커플링이었다. 그땐 그 반지에도 왜 설레고 그걸 만들어준 그가 멋져보였는지 모르겠다. 둘이같이 손가락에 초록색 소주 뚜껑을 끼고 그저 좋다고 헤벌쭉 웃었다. 부끄러운 그 때 그 순간은 부디 사랑이 아닌 알콜의 힘이었노라 생각하고 싶다. ㅡ그래도 차마 챙겨오진 않았던 건 선견지명일까 아이러니일까.
.
.
.
남자친구였던 그와 처음 맞이한 나의 생일에 그는 커플링을 선물로 해주고싶다했다. 조금 빠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 정도로 우리 사랑은 질주 중이었다. 커플링 소리를 듣고나자 생각없던 마음에 욕심이 생겼다. 그도 나도 꼭 같은 반지를 끼고 싶어서 부산의 귀금속상가를 꽤나 돌아다녔다. 화려한 걸 좋아하지 않는 그와, 남들이 다 하는 건 싫은 나는 꽤나 까다로운 손님이었다. 돌고 돌고 돌아 마침내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노란금과 그가 선호하는 백금이 함께인 커플링을 선택했다. 제작되는 동안의 기다림마저도 좋았던 우리는 반지가 나오자 마자 경건한 의식이라도 하듯 진지하게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나중에 생활고로 몇 번이고 금을 내다 팔았을 때에도 희한하게 이 커플링은 주머니 구석에서 나오지 않거나, 집에 놔두고 갔거나 해서 팔지 못했다.
이제는 둘 다 살이 쪄 굵어진 손가락에 다 끼워넣지도 못하는 걸 여전히 보관용으로 가지고 있다.
15년도 더 된 그 당시 순금과 백금을 결합시켜 주문 제작한 커플링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센스에 감탄했다. 또, 치수조차 절대 고칠 수 없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반지라 더 애착이 생겼었다. 내가 마치 그에게 유일무이한 여자가 된 듯 해서.
그런데 지나고보니 황금과 백금이 절대 똑같아 질 수 없듯, 우리 두 사람도 함께이지만 완전한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걸 가르쳐 준 결정적 증거이자 앞날에 대한 암시였던 것 같다.
.
.
.
암시라고 하니 불현듯 우리의 결혼 반지가 떠오른다. 중요하지만 애써 떠올려야 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어진 우리의 결혼 반지.
예물을 주문할 때만해도 안그랬는데 실물로 보는 순간 너무 너무 실망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덕에 사진도 한 장 남아 있지 않는 결혼 반지 한 쌍.
이렇게 그와 이혼을 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정말 더럽게 마음에 안들어서 그와 결혼 생활을 하며 가장 먼저 팔아버린 금 중 하나이다.
결혼 반지를 생활고로 팔아야 할 때 부터 나의 이혼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문했던 바와 전혀 달라 결혼식에서 잠시 끼고 벗어버린 결혼반지처럼,
기대했던 바와 전혀 다른 그와의 결혼생활.
결혼 반지는 아마도 우리 이혼의 복선이었던 것 같다.
.
.
.
지금 이렇게 반지에 빗대어 우리의 지난 시간을 글로 써내려 가는 건 정말 쉬운데, 사랑에 눈이 멀고 귀가 멀어 그저 미련했던 나는 이 모든 사실을 깨우치기까지 10년도 훨씬 더 남편이라는 개똥 밭에서 용을 쓰며 굴렀다.
여자친구와 반지를 껴본 적 없던 남자가 나와는 커플링을 맞추자 했고, 꽤나 오래 잘 끼고 다녔다.
장거리 연애 탓에 영상 통화나 사진 전송 따위로 불시 검문을 하곤 했는데, 열에 여덟아홉은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잃어버리지도 세안을 핑계로 빼거나 하지않고 정말 잘 끼고 다녔다.
그러던 사람이 결혼을 하고나서부터는 걸리적거린단 이유로 반지를 끼고 다니지 않았다.
결혼 반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래 끼던 커플링이라도 껴라 했건만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연애 때만 하더라도 나의 극성 맞은 성화에 그저 못 이기는 척 내 말은 다 들어주더니!
결혼하고 잡힌 물고기가 되자 내 말은 청개구리 마냥 반대로 하고 지랄 맞은 난리도 그저 먼 산 보듯 했다.
이 남자가 내 말을 정말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내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더니 변해버렸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말을해도 듣지 않길 수 백 수 천 번. 비로소 그가 변했다고 인정하고나자 결혼 후 하나 둘 달라진 그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도 전화를 자주 하지 않았지만, 결혼 후 부턴 집 밖에 나가면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 그는 정말 내 남자가 아닌 듯 함흥 차사 였다.
적어도 연애 때는 바쁘다는 한마디로 바로 끊더라도, 내가 건 전화를 받기는 잘 받던 사람이 수십 통을 해도 안 받았다. 그러곤 주머니나 외투에 넣어둬서 몰랐다는 핑계를 대었다.
연애할 땐 만나면 그리 물고빨고 보낼 땐 애틋하게 나를 보내며 아쉬워하더니 나나 아이가 친정에 간다하면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다.
연애 때 만큼 내게 깊은 정을 주거나 요구 하기 전에는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았다.
바람이 났나? 합리적인 의심을 했지만 그의 휴대전화, 카드내역 모든 것이 깨끗했다. 그가 내게서 타 가는 용돈 조차도 연애 아니 불륜에는 적합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태생이 한 번에 두 가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혼자서 마음앓이를 하기도 전에 왜 결혼하고 이리 바뀌었냐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돌아온 그의 대답, 본인은 원래 그런 성향이란다. 그러면서 억울해 마란다. 다른 여자와는 이보다 더 시크한 연애를 했었단다.
이 잘 난 걸 남들이 채가기 전에 내가 먼저 채 간 것이 아니라, 남들이 먹으려다 버린 걸 내가 주운 것이다!
하아...........
그제야 뒤돌아보니 2년 반 동안의 연애에도 그는 얄팍하게 나에게 맞추어 주는 척만 했었다.
나와 다른 방식의 연애를 하는 그 때문에 울화통이 터질 때가 많았던게 봇물 터지듯 여러 수십 개의 이벤트가 떠올랐다.
아, 그래서 내 연애를 지켜보던 모두가 그건 사랑이 아니고 오기라며 그와의 결혼을 말렸었나보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진실이 이제야 보였다.
우리는 정말 같은 점 보다 다른 점이 훨씬 더 많구나.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연애를 하던 사람이라 나의 연애 방식을 그냥 맞추어준 척 했지, 내 방식을 이해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결혼 생활을 하며 더이상 맞춰주는 척을 하지 않았을 뿐.
다행스럽게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한가지가 있다.
적어도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늘 잔잔하고 묵묵하긴 하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끓어올랐다 식었다 하는 나와는 젼혀 다르게, 이건 그가 가진 정말 큰 장점이다.
2년 반을 연애를 하고 10년간 결혼 생활을 했고 이혼을 하고서도 3년 째 같이 살고 있는 그와 나.
나는 아직도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꽤나 고집불통 성격인 탓에 평생이 걸려도 가능할 지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 이혼과 재혼 사이에 있다 보니 그와의 재혼을 위한 조건을 떠올려본다.
나 스스로에게 바라건데, 부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인내심을 한결같은 그로 부터 배워야 한다.
아마도 이혼을 하고 난 지금까지도 그다지 변화가 없는 그의 마음, 그의 사랑이 계속된다면 충분히 가능 할 것 같다.
그 어떤 귀한 반지보다 더 튼튼하게 그의 사랑은 내 마음에 단단히 끼워져 있을 것이다.
한 때 나는 당신의 여자라 행복했는데 당신도 나의 남자라 행복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완전한 함께'가 아니라 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더 애틋해지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