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바라지 말고 다이어트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12

by 딱좋은나

남편의 학바라지나 옥바라지 까지는 아니지만, 전남편의 뒷바라지를 이만큼이나 하고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내 직원으로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그를 위해 나는 월세 내는 게 싫다는 핑계를 대어 아주 작은 신축 상가를 매입했다. 물론 자기 자본금 없이 100% 대출로 대차게 질렀다.


부동산 침체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덕에 필요한 만큼 대출이 나온 것이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상가 매입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부린이인데, 우연치 않은 계기로 매수를 했다. 그 타이밍이 상황과 찰떡 같이 잘 맞아떨어졌단 것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하늘이 준 기회같다.


2년 전 매입하고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상가 코앞에 곧 지하철 역이 개통된다. 모르고 샀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던 탓에 적어도 내가 지불한 금액보다는 비싼 금액으로 거래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사무실을 정하고나니 안을 채워 넣어야 했다. 명목 상은 대표인 나의 업무 책상이지만 그가 사용하게 될 데스크도 거의 경차 한 대 값이 드는 중역 책상 세트로 사주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비싼 걸 살 생각은 아니었건만, 이미 중역세트를 봐버린 눈은 낮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인테리어 비용 대신 책상세트를 선택하고 집중 투자했다.

책상을 사고 보니 의자도 구색을 맞춰야겠어서 사무의자 학생의자의 대표 브랜드 매장에 가 책상과 컬러까지 깔맞춤 하여 백만 원이 넘는 의자를 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가끔 가는 사무실의 책상을 볼 때마다 최고의 선택이었다며 매우 만족하고 있다.


내 선택은 늘 최선이었고 최고이다. 전남편과 결혼한 것 조차도.


중역 책상 앞에는 언젠가 그를 보조할 누군가가 사용할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모션 데스크도 하나 넣었다. 매쉬소재의 틸팅이 좋은 의자도 세트처럼 갖추어 두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이 아니라 내 능력 안에서 최대한 고급지게 사무실을 꾸몄다.


그리고 사무실은 그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하고 자긍심을 느끼는 그의 공간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 더 큰 업무용 차량이 필요하다고 하는 그의 말을 듣고 바로 차도 주문했다. 내가 이전에 근무하던 곳과 연관된 회사에서 나온 SUV였는데, 수입 차량임에도 계약 일주일 만에 출고가 되었다. 선박 입항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잘 맞은 덕이라 했다. 이때부터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온 우주가 돕는 자"가 되었다.


연애 시절부터 타온 5인승 중형 승용차를 바꾸지 않고 10년이 훨씬 넘게 5인 가족을 태우고도 고집스레 몰았다. 그러다 구입한 새 차는 7인승으로 넉넉한 SUV다 보니 안 먹어고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아이 셋과 짐을 실을 땐 너무 좋은데, 좁은 대한민국 땅에서 주차가 늘 문제가 되었다. 주차가 편한 곳이 아닌 이상 그는 정말 필요할 때만 새 차를 타고 업무를 본다. 그리고 새 차만 타면 없던 자신감이 생기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그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매번 기꺼이 그의 어깨뽕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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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를 하는 나는 겉모습 꾸미기에는 소질도 취미도 없다 보니 그저 세탁만 잘해서 입는다. 몸이 크다 보니 버겁지 않을 정도로만 입는 것이 내가 봐도 덜 부담스럽다. 하지만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는 그는 아무리 싸더라도 적어도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의 옷만 입혔다. 명품도 아니고 무지 비싸고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나는 그를 위해 늘 최선의 선택을 했다. 다행히 그는 투정 한 번 없이 내가 사주는 대로 코디해 주는 대로 잘 입고 다녔다.


그가 살갗만 잠시 닿아도 벗어버리는 옷들이 하루에 몇 벌씩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군말 없이 깨끗하게 그의 옷을 세탁을 하고 건조기에도 넣지 않고 널어 말리는 정성을 들인다. - 나는 집안일 중에서 다림질을 가장 못하기에 다림질을 피하고자 링클프리 제품을 사고 반드시 구김이 가지 않을 만큼 탈탈 탁탁 힘주어 털어 넌다.

집에서 대접받아야 밖에서도 대접받는 법이라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내가 사서 하는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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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나는 그에게 물심양면 내 모든 걸 갖다 쏟아붓고 살았다. 이혼 여부와 상관없이.


그도 그런다.

"엄마 아빠 보다 네가 나한테 더 많은 걸 해줬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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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이렇게까지 대우하고 위하는 것은, 이제는 전남편이 된 그에게 아직도 감정을 한 발짝 걸쳐 두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적어도 그가 바뀐 자신의 환경을 이유로 기죽지 않길 바란다.


그에 대한 나의 주제넘은 뒷바라지는 단순하고 사소한 감정적 이유에서이다. 또 모든 것을 마치 그를 위한 척하고 있지만 실상은 모두 내 것이고 내 취향 내 욕심인 데다 그의 덕을 보길 바라는 기대심리로 가능한 것이었다.





한때의 전남편이자 현 동거남은 나와 법적으로 묶인 관계가 아니다 보니 당연히 모든 면에서 구속력이 떨어진다. 아니 어쩌면 구속력 따윈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현재 내 명의로 된 사업체를 함께 꾸리고 생활마저 아이들 핑계로 같이 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동거인이 생활비를 내지 않아도 같이 살고 있기에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달리 방도가 없다.


그렇게 모든 걸 다 퍼부어주고 뒷감당을 하고 살던 어느 날, 현타 아닌 현타가 왔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밀어주는데,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야?"


운이 없는 것인지 실력이 없는 것인지 노력이 부족한 것인지 열정이 부족한 것인지. 그의 업무 성과가 내 기준에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참......... O서방도 지지리도 안 풀린다."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한다. 이만하면 한 번은 잘 풀릴 만도 한데 그렇지가 못하다며.


"대기만성이야. 기다려 봐."


들으랍시고 남들에겐 이야기하지만 내 속은 까맣게 타다 못해 조각조각 흩뿌려지고 흔적도 없이 날려가는 듯하다.




이혼을 하고도 퍼붓듯 그에게 투자를 했다. 마치 내가 그에게 뭐라도 된 냥. 그러다 마음 감기가 오기 직전의 상태가 된 그제야 내 눈에도 현실시바로 보였다.


아무것도 나아진 것 없이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매일을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나 싶었다. 차라리 하고 튀어나오는 속마음은 너무나도 나를 괴롭게 했다.


이혼을 하기 전의 나는 여태껏 나를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생각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바보천치가 되어버렸다. 나의 시간은 그렇게 의미없이 가치없이 흘러 나란 사람은 과거의 어느 한 점에 멈추어 있는것 같았다. 멈추지 않고 달린 건 우상향 한 내 몸무게만이었다.


우울하다고 울고 불고 제 성질에 못 이겨 한탄을 늘어놓고 엉엉 우는 나를 걱정한 상그니 언니가 우리 집으로 당장에 날아왔다. 안그러던 사람이 그러니 정말 걱정스러운 얼굴로 와서 나를 찾았다. 그러나 우울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강한 자기애를 가진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평소 부리던 패악을 다른 방법으로 부린 것일 뿐인 내게 언니는 박스를 하나 던져주었다.


"네 인생은 네 맘대로 안 되어도, 네 몸뚱이 하나는 네 맘대로 돼, 이년아!"


배부르게 욕까지 먹고 받아 든 상자엔 한의원에서 만든 다이어트 환이 있었다.


"먹고 살이나 좀 빼."


"얼마나 더 이뻐지라고 살을 빼! 살 빼서 새로 시집이나 갈까 봐."


"미친년. 네 알아서 해라!"


상그니 언니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듣지도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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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다이어트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을 먹다 보니 '약까지 처먹는 주제에 밥을 또 처먹어?' 하는 생각으로 점심을 굶었다.

매일 아침을 든든히 먹고 꾸준히 약을 챙겨 먹었다.

그랬더니 정확히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남들은 하루 3포 먹는 약을 하루 1포만 먹고도 10킬로그램 정도가 빠졌다.(느릿느릿 빠져서 몸이나 마음에 무리가 전혀 가지 않은 듯하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빛이 바래있는 내 모습이 아직은 기억에 익숙한데, 어느새 턱 선이 제법 살아난 예전의 모습을 한 내가 거울에 비추어졌다. 훨씬 덜 둔해 보이고 어쩐지 생기도 있어 보였다.


약을 가져다주며 언니가 '애 낳고 하는 첫 다이어트니 잘 빠질 거야'라는 말은 했었지만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다. 약을 준 언니 역시, 볼 때마다 몸무게가 줄어든 나를 보고 약의 효과에 엄지를 들었다.


물론 20킬로나 찌웠던 살이 10킬로만 빠졌기에 지금도 날씬한 몸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전처럼 뚱뚱해서 옷을 입고도 살을 가리느라 움츠러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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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나는 전남편의 뒷바라지를 그만하겠다 선언했고, 나를 위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살을 빼면 금 바를 사주겠다고 허풍을 떨던 전 남편은 나의 몸무게 끝자리를 트집 잡으며 모르쇠이다.

구속력도 없고 강제력도 없는 관계에 던진 한낱 말장난에 나만 또 진지모드였다.

말이라도 꺼내지나 말 것이지, 이혼과 재혼 사이에 있다는 것은 이렇게 억울해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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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바는 못얻었어도 일단 다이어트 덕에 몸무게의 앞자리가 5로 바뀌어서 가장 좋은 건 나다.


아무것도 나를 위해서 할 수 없던 시간을 살아온 내가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니! 약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나도 뭔가를 혼자 마음먹고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얼떨결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가 성공적으로 유지어터가 되었다. 하나를 성공하고 나니 모든 게 하지 않았을 뿐,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다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이혼녀가 된 후에야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이혼으로 남편은 잃었지만 이혼 후 다이어트로 자신감은 얻었다.


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드디어 나는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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