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저 좋다는 놈 보고 꼬리 흔든다.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13
어렸을 때 살았던 우리 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비록 자가가 아닌 셋집이긴 했지만, 방도 네 칸이나 있었던 꽤 큰 집이었다. 오래된 집이라 낡은 맛은 있지만 너른 맛이 있어 아줌마들의 아지트이자 동네 사랑방 같은 집이었다.
내 집은 아니라도 가제트만큼 손재주가 좋은 아빠의 손길이 이곳저곳 전기며 수도며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부모님의 그 당시 현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기억에서의 우리 가족 모두는 그 집에서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았다.
초록색 대문을 가졌던 그 집에서 나는 친구들을 불러다가 생일 파티도 하고 마당에 아주 큰 빨간 고무 다라이를 두고 동생과 물놀이를 하는 등 정말 구김 하나 없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자랐다. 그 누구도, 그 어느 것도 부러울 게 없었던 호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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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나에게 내 방이란 것이 처음 생겼다. 책상도 생겼고 박스에 담아두던 책들을 꽂아서 보관할 책장도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는데 비밀의 쪽방 덕에 나는 더 신이 났다. 내 방의 안쪽으로 방문도 없는, 큰 이부자리만 겨우 깔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의 쪽방이 있었다.
나의 작은 쪽방에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벽지가 도배되어 있었는데, 캐릭터 벽지를 처음 본지라 매우 신기해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잠을 자라는 엄마의 말씀은 따라 줄 수가 없었다. 침대도 없이 이부자리만 겨우 깔린 그 방에 누우면 그 이쁘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들이 여러 수십 수백 개의 인영이 되어 날 보는 것 같아 무서웠다. 벽지에서 나온 그들이 내게 무슨 짓이라도 할까 그 쪽방에 혼자 누워있는 어린 마음은 불안했고 이유 없이 두려웠다.
비록 나는 진짜 공주는 아니지만 종갓집 맏딸의 권위와 권세를 누리며 공주 벽지에 둘러싸여 공주인 듯 자랐다.
-나중에 들으니 엄마는 내가 동네 말괄량이 치고도 너무 별난 성격이라 조금 얌전해지고 여성스러워지란 바람으로 일부러 공주 벽지로 도배하셨다 했다. 그리 좋다 하다가도 잠은 안 잔다고 하던 나의 타고 난 고집과 별난 성정은 어쩔 수 없나 보다란 말을 덧붙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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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대문을 지나 집안에 이르기까지 그 집은 마당이 꽤 넓었다. 오래된 집이었지만 집주인의 뜻에 따라 바닥은 흙이 아니라 시멘트였다.
비가 오는 날 흙탕물이 튀지 않아 좋긴 했지만, 장난치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무릎이 작살이 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했다.
만약 그 마당이 흙바닥이었다면, 우리 집 마당은 아마 마당이 아닌 텃밭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그 집 바닥이 시멘트였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농촌 출신임에도 식물 키우기엔 그다지 재능이 없던 우리 엄마 때문에.
엄마는 매번 식물을 죽이면서도 초록초록하고 파릇파릇한 것들, 그중에서도 꽃이 피는 것들을 매우 좋아하셨다. 시장만 가셨다 하면 화분이나 모종 하나씩은 사들고 오셔서 마당 한편은 이름 모를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치 정글 같았다.
알로에도 키워서 여름에 피부가 발갛게 타면 한 가닥 툭 베어다가 갖다 대어 주시고, 가끔 키우던 알로에를 드시기도 했다. 게발인지 가재발인지 모를 것들은 그렇게나 죽여대면서도 사고 또 사고하셨다. 어떤 화분은 끈을 걸어 매달아 두셨으나, 엄마의 화분은 그다지 늘어뜨려지지 않았고 공중에서 시들어 갔다.
그때의 어렸던 나는 왜 그리 엄마가 식물에 집착하듯 화분을 늘리는지 전혀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절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엄마, 엄마는 왜 식물들을 키워? 또 사 왔네?"
발코니 창 앞에 새로 사온 화분의 자리를 잡고 다른 식물들과 함께 물을 주고 선 나에게 딸이 물었다.
"음........... 외로워서?"
외롭다는 말은 나의 무의식에서 나온 말이었다. 외롭다는 게 뭔지도 알지 못할 초등학생 딸에게 너무 심오한 대답을 해버렸다.
"뭐가 외로워? 아빠도 있고 우리도 있는데."
엄마의 외로운 마음에 정곡을 찌르는 우문현답 같은 질문을 주었다. 어리게만 봐온 내 딸은 외롭다의 의미 정도는 알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받아치는 답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인 걸 보니.
"그러게. 우리 강아지들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엄마는 왜 외로울까?
너네가 엄마 말을 안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아빠가 엄마 말을 안 들어서 그런가?
엄마가 마음 주는 대로 되는 건 얘네들 밖에 없네.
너네는 엄마가 말하는 거 잘 안 들어주잖아."
"아.........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아니라고 못하겠네. 다 맞는 말이라서."
시답잖은 대답에 진지하게 수긍을 하는 둘째를 보니 참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또 조금은 슬퍼졌다.
화분을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이 내 아이에게 어떻게 보였길래 저런 물음과 저런 답을 내어놓을까?
하지만 솔직하게 대답한 사실인 걸.
이 화분들만 유일하게 내가 닦아주고 내가 물을 주고 내가 햇볕을 쬐어주는 대로 자라 준다.
물이 많다 싶으면 잎 끝에 물이 맺히기도 하고, 물이 적으면 퍼석한 흙과 시들어진 모습으로 나의 눈과 손을 기다린다.
요즘 내가 하는 모든 것에 바로바로 호응을 해주는 건 오로지 이 식물들 밖에 없다. 나는 지금 외로우니까 나에게 반응하는 화분들을 붙잡고 시간을 쓰고 애를 쓰며 버티고 있었다. 그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개도 저 좋다는 사람보고 꼬리 흔든다
누가 나를 좀 좋다고 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고 말도 해주고 고맙다 미안하다 인사도 해주면 좋겠다.
해도 티 안나는 청소,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한 집안일 등. 내가 익숙하게 해내는 모든 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인정받고 싶다.
"너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엄마한테 사랑한다 말한 적 있어?"라고 물으면 "이 엄마 왜 이래? 그런 말은 아빠한테 해 달라고 해" 하고 도망가기 바쁜 딸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두 딸이 자라 어느새 사춘기 소녀들이 되었다. 딸들의 반응을 보며 그들이 이만큼 자라는 동안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또 자주 해주지 않았어서 익숙지 않은 탓에 내게 표현하지 못하나 싶다.
나는 자식보다 남편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던 여자였다. 이렇게 이혼녀가 될 줄도 모르고.
그래, 너희들도 너네 좋다는 사람이 좋겠지. 맨날 화내고 잔소리하는 엄마가 뭐가 좋겠어. 하고 나를 탓해 본다.
그러다가 자식보다 더 큰 사랑을 몸소 받았던, 전남편이자 동거남이 떠오른다.
'그럼 도대체 닌 뭔데!' 하고.
한때는 딸들보다 훨씬 더 사랑해 마지않았던 나의 님이었다. 그러다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그.
아이들은 알까? 이혼녀가 된 이후 전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고깝게 들린다는 걸?
그의 마음에서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내가 마치 그 옛날 초록 대문집의 방에 딸린 문도 없는 쪽방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그 방에 누웠을 때 느낀 감정처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 무섭고 두렵고 불안하다.
달랑 두 글자 이혼에 내 마음이 이러하다 보니 전남편이 된 그의 사랑도 바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다지 변화가 없는 것 같다가도 그가 사랑한다 말하면 '또 무슨... 또 무얼'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니 전부인이 된 내게 주는 그의 사랑이 조건부 같기만 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깔아 두는 BGM 같은 사랑, 하고 싶은 것을 쟁취하기 위해 깔아 두는 밑밥 같은 사랑.
그가 가 버릴까 그가 변할까 전남편인 그를 놓지 못하고 매번 의심하고 아파하고 바보 같이 구는 나는 이혼녀가 되며 사랑에 굶주린 상태가 되었다.
이혼이란 것이 나에 대한 그의 감정까지도 색안경을 쓰고 보게 만들다. 그의 마음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게 한다. 그러니 곁에 있는 그는 또 나를 견디느라 얼마나 힘들까.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관계에서 과연 '사랑'이란 말을 기대하고 나누는 게 맞는 말이긴 할까?
나도 나를 진짜 좋다고 해주는 사람과 살고 싶다.
사실 그는 애정 표현에 그리 인색하지 않다 다만 내 욕심이 과할 뿐.
나도 나 사랑한다는 사람한테 이쁨 받고 싶다.
의심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도 되는 사랑을 느끼고 싶다. 이 역시 나의 불안에 기인한 것이란 걸 안다.
개도 저 좋다는 사람보고 꼬리 흔든다는데, 맨날 욕받이 신세인 그가 나에게 여전히 꼬리 흔들어 주는 게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것도 부족한 것도 같다.
누가 나 좀 안 이뻐하고 안 좋아하고 안 사랑해 주나? 전남편이 말하고 보여주는 그 사랑을 다 믿어도 될까? 내 안의 불안이 자꾸만 커진다.
이렇게 누군가를 곁에 두고도 외로운 것은 이혼 탓일까?
아니면 두 번째 스무 살을 지나고도 여전히 위태롭게 흔들리는 현실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공허감일까.
이혼녀가 되니 더 갈증이 난다. 정서가 불안에 흔들리고 메말라 간다.
나도 마음껏 사랑하고 싶고 당당하게 사랑받고 싶다.
어쩐지 전남편이란 건 완전하지 못한 상대이고, 전남편과는 뭔가 떳떳하지 못하다.
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나는 다시 충만해질 사랑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