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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n 26. 2023

아들이 좋아요.

낳은 김에 키웁니다 2

딸만 둘을 키우며 살던 때다.


마을버스를 타고 아이들과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

고만 고만한 아이 둘과 함께 타자 뒷문 가까이 자리에 앉은 어르신 한 분이 얼른 일어나셨다.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아이들을 앉히라고 "애기 엄마, 이리 와요" 하고 콕 집어 부르시며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셔서 아무리 아이들을 위해서라지만 그 양보가 썩 편치 않았다.


"아휴 괜찮아요. 그냥 계셔요."


"나 금방 내려"


나의 거절을 사뿐히 거절하시더니 나 대신 작은아이를 가뿐히 들어다 앉히셨다. 그리곤 큰 아이를 바깥쪽에 앉히며 동생이 떨어지지 않도록 잘 살피라 당부도 해주셨다.



"감사합니다!"


딸 둘과 내가 한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이고 이뻐라. 딸이 최고야! 애기 엄마는 딸이 둘이라 200점이네! 키울 때 힘들어도 엄마 마음 알아주는 건 딸 뿐이야."


어르신의 딸이 다심한 것인지, 어르신은 딸이 없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딸 예찬을 하셨다.

남편도 같이 있을 땐 안 그런 것 같은데 나 혼자 딸 둘을 데리고 나가면 꼭 이렇게 딸이 최고라는 칭찬 아니면 아들 하나 낳아야지? 하는 당부를 꼭 한 번은 듣는다.


익숙한 어르신의 말씀에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가만히 있었건만, 할머니 말씀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큰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저희 엄마는 아들 좋아해요. 저희가 아들이 아니라서 슬프대요. 엄마는 아들만 낳고 싶었대요. 원래 태명도 원래는 장군이었는데 딸이라서 아빠가 공주로 바꿨대요. 우리 엄마는 제가 딸인 거 알고 두 시간 넘게 울었대요. 얘가 딸인 거 알고는 한 시간 울었고요."


미운 네 살도 아니고 미친 일곱 살도 아니건만 대놓고 시키지도 않은 얘기를 하는 큰 아이. Too Much Talker는 마치 방언이 터진 것처럼 할머니에게 묻지도 않은 이야길 쏟아냈다.


"아이고, 엄마가 뭘 모르네. 딸이 최고야. 진짜야. 나중에 봐봐. 내 말이 맞아. 그렇지?"


할머니께서는 다정한 목소리로 위로하듯 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말씀처럼 정말 다음 정류소에서 내리셨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문 주위에 있던 모두가 큰 아이의 말을 다 들은 참이라, 내 얼굴에 도장을 찍듯 쳐다보고 내리거나 서 계신 분이 많았다.


아들을 좋아하고 아들이 없어 아쉬운 건 진실이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아이들을 보는 척 챙기는 척하였다.







큰 아이를 낳고 6년이 더 지나서야 막내가 태어났다.

임신과 출산 계획이 없었기에 터울이 좀 졌다.


딸 둘에 나이 차 나는 아들을 낳으니 이젠 아들 낳을 때까지 낳은 거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참 대한민국 사람들은 남의 자식 구성에 까지도 관심이 많다.


남들이 뭐라 그러든 일단 나는 아들이 태어나고 정말 세상 모든 걸 다 가졌다. 내게 결핍이라곤 돈과 아들 딱 두 가지였는데 돈 빼고 다 가진 사람이 되었다.


딸만 키우다가 아들을 키우게 되니 정말 세상 전부를 가진 듯 행복했다. 기저귀 벗기면 자동반사적으로 빔을 쏘듯 오줌을 싸대도 그저 좋았다.


온 우주가 나의 아들 잉태를 바랐다 할 정도로 내 주위의 모두가 바란 아들이었다. 대가 끊긴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으니 얼마나 귀하고 소중할까! 그 집안에 대를 이었으니 나는 또 얼마나 기가 살고 의기양양할까!


아들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내게 행복이자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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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네 살 나이 차가 있다 보니 딸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고 예뻐해 줬다.


세 아이 모두 모유수유를 했기에, 막내가 젖을 먹고 나면 나머지는 누나 둘이서 알아서 척척척하였다. 기저귀나 물티슈도 잘 가져다주고 안아주거나 지켜보는 심부름도 잘해줬다.

서로는 견원지간이 따로 없는 딸들 이건만 막내 동생만은 이유 없이 조건 없이 귀여워해 줬다. 늙기도 전에 몸조리하는 기간 동안 엄마를 곁에서 잘 도와준 고마운 두 딸덕을 많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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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 딸들을 부를 땐 이름을 부르는데, 막내는 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이름 대신  "아들~" 하는 소리가 먼저 나온다.


그리고 나는 "아들!" 하는 소리가 참 좋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꿈에서도 한 번 시도하지 못한 부름이었다.


그렇게 온 집안 여자 셋이 업고 안아 키운 막내가 어느덧 여섯 살이 되었다.


이만큼 자라는 동안 드센 누나들로부터 보고 배운 게 많은 탓인지, 이 녀석이 덩치는 작아도 세상에서 으뜸가고 버금가라면 서러운 장난꾸러기에 악바리로 자랐다.


이제는 누나들에게 겁 없이 덤비기도 하고, 힘으로 덩치로 안되면 누나들의 머리카락까지 쥐어뜯어버릴 정도로 영악해졌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으니 누나들도 아쭈! 하며 덩달아 과격해진다.


이렇게 몸으로 장난치고 싸우긴 둘이서 셋이서 같이 했는데, 늘 혼이 나는 건 딸들이다.


어느 날, 티브이를 보느라 막내에게 물을 챙겨주란 사소한 심부름을 듣지 않았다. 그러니 막내가 왜 안 해주냐며 머리로 누나를 냅다 들이받아버렸다.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예고 없이 당한 탓에 놀라기도 많이 놀라 큰딸이 엉엉 울며 난리가 났다. 언니가 우는 걸 보자 둘째가 막내의 머리채를 또 잡고 흔들었다. 잠시 당하던 막내는 얼른 내 뒤로 숨는다.


"이리 와! 이리 오라고! 너 죽었어!"


분노에 찬 딸들이 내 뒤에 선 아들을 끌어내려해 내가 저지를 했다.


"엄마는 맨날 막내만 이뻐하고! 우리는 안 이뻐하고. 맨날 우리한테 화만 내고! 쟤가 잘못했는데.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동생이잖아. 천지 분간도 못하는 애한테 뭘 바라니. 그리고 너네 지금 이대 일이야. 공평하지가 않아!"


내 말에 더 서러워진 첫째가 소리를 높여 울자 분이 안 풀린 둘째도 덩달아 악을 쓰고 운다.


그동안 얼마나 서운했던지 쉬이 그치지도 않고 꺼이꺼이 소리까지 났다.

(첫째로 누릴 것도 많았고 언제나 모든 것이 내 위주로 돌아갔던 맏딸인 나는 절대 이해 못 할 서운함과 상실감이다. 게다가 난 운다고 달래주는 성격이 못된다.)


딸 둘은 아들과 차별대우를 견디고 사는 자신들의 처지가 서러웠는지 코와 눈이 벌게진 채 한참을 울었다.

눈물을 흘릴 때만큼은 원수 같던 서로가 공공의 적을 가진 동지가 되었다.


나와 함께 딸들을 지켜보더니 눈치 백 단인 아들이 살포시 다가가 누나들을 안아준다.


"저리 가! 저리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우리 엄마 다 뺏어갔잖아. 맨날 같이 싸워도 우리만 혼나니까 이제 저리 가! 오지 마! 너랑 안 놀아!"


두 누나는 작정하고 막내가 뻗은 손을 쳐낸다.


지금 우리 아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나와 버렸다.


같이 안 놀겠단 그 이 서러웠는지 나에게로 오는 막내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이다.


"누나한테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지. 너도 누나랑 똑같이 싸웠잖아!"


나 역시 편을 들어주지 않자 막내의 얼굴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얼른"


한번 더 채근하자 누나들에게로 다.


"언니 내가 미안해."


"언니 아니고 누나야."


"누나 내가 미안해."


얼른 건넨 사과였지만 눈물에 마음이 편치 않게 되자 결국 아이들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아! 짜증 나!"


"뭐가 짜증 나!"


"아우, 막내! 진짜 화도 못 내게 귀엽잖아. 쪼꼬만 해가지고."


"막내가 진짜 귀엽긴 하지. 나도 그래서 화를 못 낸다니까."


울다 말고 딸들은 막냇동생을 이뻐했다. 나던 눈물도 그치게 하는 작고 소중한 동생이다.


"내 동생이라 이쁜 거야!"


"맞아. 남의 동생이면 넌 죽었어!"




이렇게 우리 집에는 아들 좋아하는 여자가 셋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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