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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n 27. 2023

엄마 닮은 엄마 딸들

낳은 김에 키웁니다 3

 딸은 신혼여행에서 부지불식간에 잉태되었다.

그 누구도 예상도 기대도 상상도 한 적 없던 임신이었다.

남들은 날 잡고 해도 어렵다는 임신이 나는 왜 원 샷 원 킬, 아니 원 샷 원 베이비인지!


하지만 계획 없던 임신을 그저 기뻐하고 반가워하기에는 갓 결혼한 우리 처지가 그다지  녹록지 않았다. 전세자금 대출이라도 다 갚으면 가지려고 했었는데, 급하게 찾아온 아이가 아직읏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렇다고 또 지울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저 급작스레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감투, 엄마와 아빠란 보직을 받아들였다. 어쨌거나 아빠는 남편이고 엄마는 나인, 우리 둘이 함께 한 일의 결과니까.




뒤돌아보니 그때의 나는 솔직히 내 뱃속에 움튼 아이의 존재나 책임감보다는 시간이 감에 따라 불러오는 배와 뻥뻥 옆구리를 차 대는 태동을 느끼는 "경험"을 즐겼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임산부 놀이를 즐기던 그냥 철부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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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첫째가 내가 그리도 바라던 아들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맹세코 단 한 번도 바란 적 없던 딸이었다. 복중 태아가 딸이란 사실을 알고 나는 산부인과 타워 주차장에서 출차를 기다리며 울기 시작해 정확히 2시간 40분을 울었다.


가져보지도 못했건만 당연히 있을 거라 믿었던 "고추"를 잃은 상실감에 가슴에 정말 큰 구멍이난 듯했다.

사는 동안 이 날처럼 좌절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첫째의 얼굴은 또 어떤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쁘다던데 내 새끼는 누굴 닮아 못난이인지!

세상 밖에 나온 내 딸은 잘생긴 아빠 얼굴은 어찌해버렸는지, 못생긴 나만 똑 닮았다!


거기다 출산 중 한번 쉬었다 베큠까지 써서 꺼낸 탓에, 우리의 빨간 아기 고구마의 머리는 삼각뿔 모양이었다. 한 마디로 내 딸은 공주라는 태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얘 누구 닮은 거고?!" 훗배앓이를 하는 와중에도 이 고민을 하느라 내 미간은 잔뜩 좁아졌다. 지금 내 미간의 세로 주름 하나가 이때 새겨진 게 아닐까 싶다.


부산에서 손녀 얼굴 하나 보려고 날아오셨던 아빠는 나만큼 기대했다가 대 실망을 하셨다. 유리창 너머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내 딸을 보시곤, 정말 심각한 얼굴로 "죠져놨다!!!"라고 한 마디 하셨다.

하필이면 생기다가 만 내 코를 빼다 박아서 비 오면 비 들어가겠다며 혀를 쯧쯧 차셨다.


"처음이라 이쁘게 만드는 기술까진 없어서 그래. 자꾸 만들기 연습하다 보면 둘째는 좀 낫겠지."


19금의 의미가 짙지만 천연덕스레 아빠에게 대꾸하자 아빠가 나를 흘겨보셨다.

어쩌면 아빠에게 한 그 말은 내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이자 적어도 첫째보다는 예쁜 아기를 갖고 싶은 바람의 말일지도 모르겠다.


대게 아이들은 자라면서 얼굴이 몇 번씩 바뀐다고 하는데 내 딸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 얼굴 딱 그대로 자라주고 있다.


유전자가 어찌나 강력한지 지금도 큰 딸 얼굴은 나와 똑 닮았다 소리를 듣는다. 나는 절대 인정하지 않지만 남들 눈엔 나와 딸이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딸의 발이 나보다 더 크게 된 지금까지도 첫째가 나 닮았다는 말은, 내 브라봉과 내가 똑같이 생겼다는 말만큼이나 인정하지 못하겠다. 못난이들과 닮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소리가 마구마구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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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내 얼굴을 닮았니!?








남편에게 내 성격을 물으면 단 한 마디로 정리해 준다. "지랄 맞은 성격"이라고.


나는 힘들다 싫다 아프다 하는 일로 울지 않는다. 비교적 눈물이 많은 편인데도, 그 눈물은 대게 억울하고 분해서 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떤 사람이라 부르는 남편이 내 말을 안 들어줄 때. 나는 내 성질에 못 이긴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포악해져서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고 고래고래 소리도 잘 지른다.


내 성질이라 포악한지도 모르다가 유순한 첫째 와는 달리 날 때부터 불량한 성질의 둘째를 키워보니 거울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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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굴러온 복덩어리'라는 뜻으로 지은 또복이란 태명을 가진 둘째 딸.

이번에는 연습을 제대로 하고 만든 것인지 조합이 좋다. 아빠와 엄마의 예쁜 곳만 닮아 얼굴만 보면 참 어여쁘다. 왜 부라리고 있냐 했던 눈도 커서 그런 거였고 코도 오뚝하고 입술도 빨갛고 도톰하다.


도치맘이라서가 아니라 나를 아는 모두가 우리 집 둘째는 나를 안 닮아서 이쁘다고 한다. 무리에서 대번에 눈에 확 띌 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보면 손에 꼽을 정도는 된다.

 객관적으로 둘째는 완성형 미모로 진짜 얼굴은 예쁘게 생겼다.


ㅡ언니가 워낙 못나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지도. 하지만 큰딸은 못난 얼굴대신 길쭉한 팔다리를 가졌고 둘째는 얼굴만 예쁘지 몸매는 허리가 길고 팔다리가 짧다. 이럴 때 보면 신은 또 제법 공평하다.


"엄마, 사람들이 왜 자꾸 나만 보면 이쁘다고 해?"


누구처럼 성격도 급해서 8개월 만에 쌀밥에 장조림 고기를 얹어 먹고, 하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 말 문도 돌이 되기 전에 트여버린 아이가 두세 살쯤이던 어느 날 내게 물었다.


"네가  예쁘니까 예쁘다고 하지."


예뻐서 예쁘다는 건데 그런 내 대답마저도 상한 지 둘째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사람들이 저를 보며 이쁘다고 말하는 것이 감흥이 없어질 정도로 우리 둘째는 정말 이쁘게 태어났다.

딱 거기까지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예쁜 둘째가 하필이면 내 지랄 맞은 성격을 닮아버렸다.


뭔가 제 맘과 뜻 대로 되지 않으면 일단 다. 흐느끼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고 온갖 행패를 부리는 악녀처럼 운다. 바닥에 주저앉거나 발을 동동 거리거나 제 분에 못 이겨 방방 뛴다.

딱 한 가지, 공부하자고 책이라도 펼칠 치면 그때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슬픔을 겪는 사람처럼 흐느낀다. 제 부모가 죽어도 저리 울까 싶을 정도로 처연하다.


어디 나가자 하면 행동이 느려지고 집 앞이나 방 안, 또는 차 앞에서 울기 시작한다. 두고 가면 주윗사람들에게 부끄럽도록 엄마 엄마 목청껏 소리 지르며 아주 천천히 따라오며 운다. 그럴 때면 아무리 내 딸이라지만 정말 모른 척하고 싶다.


관심 사병도 아니건만 매 순간 저부터 꼬박꼬박 챙겨주길 바라는 질투쟁이이다.


언니나 동생과는 잘 지내면서도 싸울 땐 피도 눈물도 다. 

마음은 약해서 조금만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해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센 척은 혼자 다 한다.

평소에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소아과 선생님께서 푹 쉬어버린 목소리를 듣곤 성대결절이 의심된다고 하실 정도이다.


"얼굴은 아빠 닮았는데, 성질머리는 엄마를 똑 닮았지."


나를 알고 남편을 아는 모두가 말한다.


"아니거든요! 얼굴을 엄마 닮고 성질머리를 아빠 닮았거든요!"

어디다 줄을 서야 삶이 편한지 아는 영악함도 가졌다.


말이나 못 하면 밉지라도 않지,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나보다도 훨씬 더 입심도 세다. 우리 엄마는 우리 둘째가 어지간한 새댁 뺨친다고 하실 정도로 어른스럽다 하셨다. 이런 아이는 자꾸만 칭찬하고 보듬고 달래서 키워야 한다고 경험담 같은 조언도 해주셨다.


지랄 맞은 성격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고집이 강해서 한 번 하고자 마음먹은 건 정말 끝까지 해낸다. 이런 점은 포기가 빠른 나보다 훨씬 좋은 성격이다.


성질 머리는 득이 될 곳에만 부리렴.





아롱이다롱이 밭에서 똑같은 씨로 만들어졌건만 두 딸들은 생긴 것부터 성격까지 서로 다르다. 마치 나와 남편의 모든 것이 다르듯.


큰 딸은 엄마 닮은 외모를 가졌고, 작은 딸은 엄마 닮은 성격을 가졌다. 아무리 내가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고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딸이 둘이라 200점이라 하신 할머니 말씀처럼 분노게이지도 200%로 만드는 딸들이지만 덕분에 살아가는 보람을 얻는다.



엄마 닮은 엄마 딸이 둘이라서 나는 참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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