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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l 07. 2023

엄마도 드세요 라고 말해 줘.

낳은 김에 키웁니다 6

우리집에는 통닭을 시켜도 닭다리만 찾아먹는 사람이 넷이 있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우리는 비싸고 양이 적어도 닭다리만 있는 통닭을 시켜먹게 되었다.


아빠 : 아빠의 권위는 닭다리부터지!

큰딸 : 편식 심한 나는 닭다리만 먹을 수 있거든!

작은 딸 : 언니도 먹고 아빠도 먹는데, 난 왜 안 줘!

막내 : 나도 닭다리가 제일 맛있거든! 나는 아직 아기라 다른 건 질겨서 못 씹어!


각자 다리를 먹어야 되는 이유가 분명히들 있다.




문제는 이 싸가지 없는 종자들 중에 엄마의 닭다리를 챙기는 놈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 이렇게 정 없이 개념 없이 예의 없이 키우지 않았다.

내 의도와 내 교육관과는 전혀 다르게 내가 키우는대로 안 크고 잘못 크고 있는 나쁜 것들!

그 나쁜 것들의 중심에는 "장모님 식사하세요" 소리를 아니 하고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가, 일 년 열두 달을 들볶인 내 남편이 있다!


내 새끼라서, 내 남편이라서!

그저 좋다고 물고 빨고 이쁘다가도, 가끔은 이렇게 서운하다.

특히 먹는 것 앞에서.

나도 한 때는 당연하게 닭다리부터 들던 귀한 딸이었단 말이다!




요 며칠 우리집에 잠시 하숙생 K가 와 있다.

육식공룡인 그를 위해 소고기며 돼지고기며 다 사두었는데, 그는 요즘 다래끼 때문에 닭고기만 먹을 수 있다한다.


이런 이런, 돈 쓰고 시간 쓰고 했건만 모든 게 무용지물이다.


모두를 출근 시키고난 바쁜 아침, 급하게 마트로 달려갔다.

맨날 아이들 먹이느라 만들던 능이삼계탕 대신,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닭볶음탕을 만들어야지!

오늘만은 나를 위한 메뉴를 만들 거라 다짐까지 하며 정육코너로 갔다.


닭볶음탕을 위해서 통으로 한 마리인 닭이나 잘려진 볶음탕용 절단 닭을 사야하건만.

나는 결국 사랑하는 내 사람들 때문에 북채(닭다리)만 들어있는 팩을 두 개 쥐었다.


"훨씬 더 비싸네! 고급진 입들... 으이구."

어차피 살거면서 구시렁 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빼꼼히 날 보며 핑크빛 자태를 뽐내고있는 닭근위(닭똥집)가 눈에 들어왔다.

오오오!!! 하며 한 팩을 들어 닭다리와 함께 계산하였다.


닭똥집을 오랜만에 산 지라, 안주처럼 볶아 먹을까 했다.

하지만 오늘은 계획에 없던 장보기까지 더해져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은 날이다.

메인 음식을 두 가지나 준비 할 시간이 안될 듯 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해야지.

자! 그렇다면 오늘은 닭똥집을 넣은 닭볶음탕이다!!!




닭과 똥집은 소주를 넣어 한 번 데친 후 미리 만들어둔 양념장에 버무렸다.
원래라면 압력밥솥으로 빠르게 했을테지만, 오늘은 어쩐지 푹 끓여내고 싶어 뚜껑을 쓰지 않았다.


집에 와서 포장을 뜯었는데, 아!! 이제 닭다리까지도 나를 슬프게 한다.


주부 10년 차가 지난지도 오래되었건만, 오늘도 어리숙한 나는 포장에 완벽히 속았다. 두 팩을 합해도 닭다리가 겨우 10개 뿐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온전한 닭 한 마리에 닭다리 한 팩을 추가했을 텐데!

양이 적지만 다시 마트를 가기엔 시간도 빠듯하고 더운 날씨에 불 앞에 서서 음식을 하고 있는 나도 정말 귀찮다.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우리집 하숙생 육식공룡까지 다섯 명.

그들에게 닭다리를 두 개씩 먹이면 되겠다 하는 계산이 나왔다.

남는 닭다리가 없으니 똥집만이 내 몫이 될 듯하다.


아, 어쩐지 서글프네.


"아휴, 난 닭다리도 하나 못 뜯는데, 도대체 뭘 먹고 이렇게 살이 찐 거야.

치... 뭘 먹긴 뭘 먹어. 남은 야채와 양념에 밥 비벼 먹으며 찌웠지."


혼자 묻고 혼자 답하면서 뚝딱 뚝딱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친정엄마를 닮은 건 손맛이 아니라 손의 속도다.

맛이야 어떻든 일단 내 손은 빨라서 참 좋다.

셀프 칭찬을 해가며 내려간 기분을 끌어올려본다.


음식을 직접 하게 되면서 남은 음식이 참 아깝다.

아깝다 아깝다 하고보니 어느새 나는 잔반처리반이 되어있었다.

우리 엄마가 왜 살을 못 빼나 했는데, 내가 엄마랑 똑같은 뚱순이가 되고 나니 그 이유를 아주 잘 알겠다.

에잇....

잠시 멈칫했지만 오늘은 양념에 밥 비비는 건 조금만 해야지 마음 먹고 다시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정성스럽게 몇 번이고 간을 보며 만들어 둔 다대기를 넣었다.

한참 뒤에 보니 보글 보글 벌건 국물이 끓다 못해 이젠 졸여지고 있다.

이깟 닭다리 하나 사수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내 한탄도 같이 졸여본다.

그리고 맛있게 양념이 배여가는 닭다리를 눈으로 먹었다.


자린고비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지.

원래 고기보다 양념에 비빈 밥이 더 맛있어. 하고 최면을 건다. 아무래도 오늘도 내가 아까 마음 먹은 건 이 매력적인 국물에 섞인 밥과 함께 내 속으로 사라질 듯 하다.





저녁 시간.

역시나 저녁식사 준비느라 나는 아직 식탁 앞에 앉지도 못했건만, 남편과 4인의 똘마니들은 제 그릇 챙기기에만 바쁘다.


고기 양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더 먹을 수가 없다. 배식 된 것만 맛나게 먹으라며 닭다리를 제일 먼저 내주었다.


다섯개의 접시에 똑같이 나눠준 닭다리가 각각 두 개씩이 맞는지 수 부터 확인 한다.

그러더니 이젠 닭다리의 크기를 비교하며 내 접시 네 접시를 따진다.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지겨운 것들, 하다 하다 안되니 이젠 별 걸로 다 싸운다.


"없이 사는 티 내지 말라니까! 그냥 하나 씩 들고 먹어! 확 뺏어버리기 전에!"


국을 퍼고 밥을 퍼며 꽥!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밥 먹자, 잘 먹겠습니다 소리가 줄줄이 나온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 누구도 "엄마도 같이 드세요." "엄마도 와서 드세요.","엄마 먼저 드세요." 소리는 없다.


대신 다리 한 입, 또 한 개, 또 한 입, 다리 두 개 먹을 때 마다

"오오오~ 여기가 닭볶음탕 맛집이네."

"똥집을 넣었네! 근데 맛있다!"

"엄마, 진짜 맛있어요."

"사 먹는 거 보다 더 맛있어요."

"엄마 음식이 최고에요."

"아줌마, 고기 더 없어요? 진짜 더 없어? 먹다 마네. 아...."

하는 소리가 나온다.


괜히 멋쩍은 나는 커다란 냉면기에 퍼담은 밥을 들고 앉으며 쉰소리나 내뱉는다.


"실수로 설탕이 많이 들어갔는데, 역시나. 니들 입은 설탕맛이면 다 맛있지."


니들은 아쉽도록 먹은 고기, 나는 입에도 대지 못하고 전부를 내어주었지만. 이렇게나 잘 먹어주기만 한다면 나는 서운함도 씁쓸함도 잊고 그저 행복하다.


"잘 먹어서 이쁘네들."


닭똥집은 몇 개 남아있어 부지런히 찾아 내 밥그릇에 올렸다.

그리고 밥 위로 국물과 감자대신 넣은 고구마, 당근, 양파와 함께 꾸덕해진 양념을 뿌리고 비벼 먹었다.


"역시 밥이 젤 맛있네!"






이제는 지키지 않는 식사예절 중에서 꼭 하나 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게 있다.

서로 바쁘니 밥상 차리는 엄마를 기다렸다 함께 먹지 못하는 사정은 다 이해하기에, 숟가락까지 들지 라고는 못한다.

(그리고 나는 늦게 먹기 시작해도 아이들보다 더 빨리 식사를 끝낼 수 있는 스피디한 엄마다.)


대신 얘들아, 수저를 들 때 딱 한 번만 나에게도 말해 줘.


"엄마 식사 하세요!", "엄마 같이 먹어요!", "엄마도 드세요!" 라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음식과 사람 이야기에 쓰고 싶었던 거지만, 시어머니가 잘못 키운 시어머니 아들까진 내가 가르치고 싶지 않아서 육아기록으로 남깁니다. 내 자식들은 되든 안되든 일단 한번 가르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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