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보면 커다란 눈, 오똑한 버선코, 붉고 도톰한 입술, 갸름한 계란형 얼굴로, 입만 열지 않으면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완성형 미모다.
주관적으로 보나 객관적으로 보나 예쁜 우리 둘째를 앞으로 예삐라 부르겠다.
뱃속에서부터 순한 첫째와 달리 둘째 예삐는 수정과 착상이 이루어지자마자부터 입덧이 시작됐다. 그래서나는 임신을 빨리도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거지 한 번 하는데 구토를 9번 할 정도로 입덧이 심해 임신 6개월까지 나는 되려 살이 빠졌었다. 그 정도로 우리 예삐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성질 머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ㅡ나는 지금도 입덧과 아이 성격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첫 아이의 두번째 생일상을 차려주고 며칠 지나지 않은 겨울날이었다. 새벽 2시마다 진통이 걸리는 탓에 오늘도 미안하지만 남편을 흔들어 깨워야 했다.이틀째 밤잠을 설친 남편이 잠결에 버럭 짜증을 냈다.
"아! 얜 왜 새벽 두 시만 되면 이러는 건데!"
오락가락하던 가진통이 발동 걸린 지는 이미 3일 차였고, 전날 새벽 두 시에는 병원까지 다녀온 터였다. 진통이 걸린 것은 맞지만 자궁문이 아직 안 열렸대서 집으로 돌아온 지 딱 24시간이 지난, 오늘은 마침 둘째의 출산예정일이었다.
어제 새벽 병원에서는 경산부이니 유도분만을 하자 했지만, 첫 아이때 27시간 반을 고생했던 경험이있던 나는 알고는 못 당하겠다며 거부했다.이번에도 유도분만을 하라는 건 내게 군대를 두 번 가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어제는 비록 허탕치고 진료비만 쓰고 왔지만, 직감적으로 이번엔 출산이란 게 느껴졌다.
진통 시간을 기록하던 늦은 밤, 첫 아이 출산 직전처럼 온몸이 달달달달 떨려왔다.
내 골반아래로 똥이 급하게 몰리는 것 같은 느낌도 났다.
급똥, 아니 급출산이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집에서 애를 낳을 것만 같았다.
"오빠, 빨리! 이번엔 진짜 나올 것 같아!!!"
낳겠다는 것도 아니고 똥 나온다 처럼 내 입에선 나온다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급했다.
그 와중에도 자는 첫째와 출산 가방을 챙기고, 혹시나 가는 동안 분만이 진행되며 자동차 시트에 분비물이 묻을까 방수요까지 챙겼다.
2,3분 간격으로 짧아진 주기 탓에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헤드레스트를 양손에 꼭 쥐고 무릎을 세운 채 덜덜덜 떨며 병원으로 갔다.
"어머! 산모님 아침에 유도하러안오셨어요?"
어제도 오늘도 나이트 당직을 서던 간호사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물었다.
분명히 첫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서 병원에 오겠다하고 집으로 돌아갔었던게 불과 24시간 전이었다.
경험 많은 간호사는 내 상태가 출산이 임박했음을 바로 알아차렸고, 나는 환복과 동시에 분만 대기실로 들어갔다.
간호사 선생님 여분이 나타나 후다닥 출산준비를 시작하셨다.
관장이나 무통 시술 따위는 없었다.
떨리는 내 다리를 두 명이 잡아가며 겨우 제모만 마쳤다.
이미 다 벌어진 아래는 굳이 내진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곧 나올 거 같아요. 의사 선생님 부를게요."
"빨리요, 빨리"
당직이던 병원장님께서 생각보다 늦게 나타나셨고, 그의 도착을 기다리느라 간호사 두 명이 달라붙어 억지로 펴고 있던 내 다리도 그제야 굽힐 수 있었다.
"머리가 보입니다."
남들은 출산의 고통에 남편의 머리를 쥐어뜯는다는데,
나는 하마터면 의사 선생님 머리를 쥐어뜯을 뻔했다.
도대체 어디 있다 이제야 나타나신 거냐고요!!
30분째 나오려는 애를 의사가 없어서 못 낳고 있었다.
"힘주세요! 더더더더"
하는 소리와 함께 쩍 하고 갈라지는 느낌이 들며 뭔가가 훅 빠져나왔다.
우와 시원해!
쾌변보다 더 큰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렇게 나의 두 번째 딸, 예삐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똥을 싸는 건지 애를 낳는 건지 모를 정도로 힘을 잔뜩 줬다.
산부인과에 온 지 40여 분 만에 수월히 출산을 하자 자신감이 붙었다.
"셋째는 아들로 가자." 하는 내 말에 남편의 얼굴이 제가 막 출산을 마친 것 마냥 사색이 되었다.
"엄마 대단하시네!"
잘 참았다, 잘 낳았다 끊임없이 응원과 격려를 해주시던 간호사 선생님들이 칭찬까지 해주셨다.
빨간 고구마 2호 예삐는 르봐이예 분만법에 따라 곧장엄마인 내 배 위에 얹어졌다. 본능적으로 엄마를 아는지 나와 남편의 목소리에 울음을 그치고 작은 입술을 오물거렸다.마치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 또 새롭네. 첫째랑은 완전 다른 느낌이네."
딸인걸 알고 잠시 나쁜 생각도 0.1초 했었던 난데, 둘째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나는 사랑 그 자체였다.
두세 번을 썰었다던 첫 경험과 달리 남편도 이번에는 한 방에 싹둑 탯줄을 잘 잘랐다.
"고생했어."
분만실 밖에서 휴대폰 삼매경이 된 첫째를 데리고 들어 오자, 두 녀석이 경쟁이라도 하듯 내 젖을 한쪽씩 물었다.
"으아~~~ 이건 엽기다!"
이 일로 나는 산부인과에서 큰아이 작은아이 할 거 없이 나오지도 않는 젖을 양쪽으로다 물린 유명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잠시 자리를 비워서 분만실에 늦게 나타난 의사 선생님은 수간호사 선생님께 엄청 혼이 났다. 애 나오는 걸 막은 게 될 일 이냐, 엄청 큰일 날 뻔한 거라는 잔소릴 내내들으셔야 했다.그리고 나는 그 병원에서 취급하는 가장 비싼 영양제 링거를 공짜로 맞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둘째 예삐는 빠르고 쉽게 낳았다.
예정일을 한참 지나 유도분만을해27시간반동안개고생 한 끝에 만난첫째,
양수가 먼저 터지는 바람에 배 안에서 돌지를 못해 쌩고생을 하다 태변을 보고 목에탯줄까지 감고 나온 셋째에 비하면 우리 둘째 예삐는 가장 낳기 쉬웠던 효녀이다.
지금도 임신 출산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에게 훌륭한 이야깃거리이다. 다리 밑에서 너 주워온거야 라며 아빠가 놀리면 엄마는 그런다. 널 주워 온 곳은 엄마 다리 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