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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l 10. 2023

우리 집이 1층이라 다행이야

낳은 김에 키웁니다 8

아무것도 모르고 서투르게 지나간 첫 육아와 달리 둘째는 우는 것도 예쁘고, 울어도 왜 그런지 알 것 같고, 조금은 울려도 여유롭게 대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질투의 화신이 된 첫째였다.

뱃속 동생에게는 세상 둘도 없이 친절하고 다정하더니, 둘째의 탄생과 함께 패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신생아 침대 뺏기, 엄마 젖 먹는 거 불허 하기, 기저귀나 바닥에 있는 모든 물건을 동생 얼굴에 갖다 쏟아 붓기, 뽀뽀하는 척 하며 할퀴거나 깨물기. 접근 금지하면 작대기 가져와서 동생 얼굴 때리기.


특히 문제가 되는 짓은 손톱을 세워 꼬집는 것인데, 아무리 막아도 눈 깜짝할 사이 눈에 까지 손이 가니 신생아의 여린 눈에 실핏줄이 몇 번이나 터졌다.


너무 속이 상해 울면서 부탁해보고, 화도 내보고, 때려도 봤지만 제 세상의 전부인 엄마를 일순간에 빼앗긴 첫째의 마음은 절대 풀리지 않았다.



가뜩이나 예삐가 선천척 장애 의심 소견으로 대학병원  두 곳에서 검사를 줄줄이 하고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던 때라 나는 더더욱 누워서 당하고만 있어야 되는 예삐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아마 그 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가뜩이나 예민하던 신생아인 예삐가 계속되는 불시의 공격을 받고 놀라길 반복하게 되며 울음의 소리를 바꾸었다.  이전엔 칭얼임으로 시작하던 것이 이젠 처음부터 악을 지르며 울었다.


그 소리가 엄마인 내게조차  시끄럽고 고통스러웠다.




안타깝게도 나라는 사람은 태초부터 상대의 울음에 공감이나 대처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우는 친구가 있어도 곁에서 기다릴 줄이나 알지, 다독이고 위로해서  울음을 그치게 하는 법을 모른다.

말주변이 없는 편도 아닌데 이상하게 눈물 앞에서 만큼은 말문이 막혀버린다.


그런 내게 갈수록 격해지는 둘째의 울음은 해가 더해 갈수록 기민해지는 분노의 트리거가 되어 갔다.


왜 우는지도 모르겠다.

무엇 때문에 우는지 진짜 모르겠다.

물어봐도 우느라 대답을 안한다.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운다.

어디 가자 하면 차에 오르기 전부터 울고,

집에 가자 하면 차를 타지 않고 운다.

매 번 언니가! 막내가! 엄마가! 아빠가! 하며 남 핑계만을 대니 혼이 나는 건 둘째 예삐가 대부분이다.

남이 보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억울한 이가 내 둘째 예삐다.

우는 소리만 큰 가, 발을 쿵쿵 다리를 동동거리며 우는 꼴은! 정말 볼 때마다 가관이다.

길에서 이런 행동을 보이면 딸이고 뭐고 나는 정말 모르는 척을 하고만 싶다.

정말 이렇게 욕이 절로 나올만큼, 우는 순간만큼의 예삐는 내 딸이 아니라면 좋겠다 싶다.

근데 우리 예삐는 이런 내 생각을 이미 알기라도 하듯 "엄마!  엄마!"하고 나를 찾으며 더 크게 운다.

달래면 달래는 김에 보란 듯이 더 울고,

안달래면 안 달랜다고 더 서러워져 운다.


휴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이 아이의 울음은 시간도 장소도 정해지지 않은 채 오로지 제 감정으로만 반응하니 주윗 사람들은 그저 시끄러운 이 폭격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생긴건 셋 중에 젤 이쁜 예삐이고 낳을 때도 제일 수월했던 나의 효녀 예삐인데, 키우기는 셋 중 가장 힘들다.

혼자 힘으로선 도저히 안되어 내 발로 찾아간 아동청소년 심리상담 센터에서는 예삐가 기질적으로 나랑 맞지 않은 아이라 했다.

그래,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저 예삐를 예삐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이 아이를 키우지 못할 것 같다.


하아......

그  때부터 나는 예삐가 울면 우는대로 둬버렸다.

무시도 아니고 외면도 아니고 그저 예삐가 제 맘대로 제 분대로 다 하길 기다렸다.






"엄마가 뭘 알아! 엄만 내가 없어도 상관없지?

이 집엔 내가 죽어서 없어져버리는게 더 좋잖아!!

나 빼고 네 식구가 아주 신이 났더구만!

아악! 나 진짜 죽어버리고 싶어!"


울분에 찬 10살 예삐가 소리친다.


10살 소녀 입에서 죽고싶다는 말이 나왔다.

자살이 하고 싶다 한다.

그런데 이유도 모를 그 죽고싶다는 소리가 마치 내게는 살려달라소리 같다. 저 좀 봐달라고 알아달라는 소리 같다.


"뭐가 문젠데.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데!"


짜증은 너만 나니? 화는 너만 낼 수 있어? 하고 따져묻고 싶은 마음을 삭히고 물었다.


"몰라."


"몰라?"


"엄마는 언니랑 막내만 이뻐하고! 나는 봐주지도 않고. 안중에도 없고.

맨날 나만 혼내고. 나만 뭐라 그러고! 내가 없어도 안보여도 상관도 안하고!"


"니가 안 온 거잖아. 근데 그게 죽고싶다 생각을 할 정도야?"


"그럼! 진짜 나는 죽고 싶은데....

차에 뛰어들면 아플 거 같아서 무서워서 못하겠고.

우리집은 1층이라 떨어져 죽지도 못하고.... 엉엉"


말을 채 다 하지 못한 나의 딸 예삐가 내게 안기며 울었다.


이 아이는 도대체 뭐가 문제이길래, 자살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생각을 했을까?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실이지만, 내 아이가 이렇게 스스로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는 사실은 인정을 해야만 했다.


"예삐야, 도대체. 왜. 뭐가. 뭐가 문제라서."


"엄마 미안해. 나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어. 근데 나 없이 언니랑 막내랑 엄마아빠가 있는 것만 봐도 나는 내가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엄마도 가끔 힘들면 그냥 죽어서 눈을 안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걸?"


"엄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럼. 엄마도 얼마나 힘든데. 집안일에 애도 셋이나 키우지, 일도 하지.

아빠랑 너희는 말도 죽어라 안 듣지. 그러니까 엄마는 너무너무 힘들지. 엄마가 뭐 맨날 행복만 하겠어?"


"엄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구나..."


나도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자 우리 예삐는 그제서야 나를 이해한다는 듯 다시 한 번 나를 꽈악 힘주어 안았다.


작고 여린 예삐의 등을 토닥이며 내가 그랬다.


"죽고 싶다는 얘기..... 엄마한테 해줘서 고마워. 엄마는 예삐가 그런 생각까지 하는 줄 몰랐어.

그리고 예삐야, 이건 알고 가자. 우리 가족은 5명이잖아. 누군가 빠지면 너무 재미없고 슬프지 않을까?

너 언니나 막내가 없다고 생각해 봐. 어떨 것 같아?"


"안 돼! 언니도 막내도 다 있어야 해!"


"그런데 예삐가 없으면 엄마랑 아빠, 언니랑 막내가 어떤 생각을 할까?"


"슬플 거야. 마음이 아플 거야."


"그래... 예삐야. 너도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야.

엄마가 너한테 뭐라 그랬었어?

너는 딤플이 아닌 것만도 엄마한테 평생 할 효도는 다 한 거랬지?

공부 못해도 좋고, 공부 안해도 좋아. 하기 싫은 공부 하면서 스트레스 받지마.

머리 대신 몸 쓰는게 행복하다면 그렇게 살아도 돼! 어차피 니 인생이니까.

근데 엄마는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너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잘 살았으면 해.

엄마 아빠 밑에 있는 동안은 무조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돼.

엄마는 진짜 딴 거 안 바라. 너만 건강하면 돼.

아! 근데 우리 약속에서 하나 더, 추가 해야겠다.

절대로 우리 예삐는 엄마보다 먼저 죽지 않기!!!"


나의 말에 내 품에 안겨만 있던 예삐는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꺼내 들었다.


"응. 엄마. 엄마보다 먼저 죽지 않기 약속!"


"앞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는데 말을 못하겠으면.

차라리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해줄래?

엄마가 우리 예삐 힘 내도록 꼬옥 안아 줄게."


"응, 엄마. 고마워."


죽고 싶다는 딸 아이의 말을 다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이 1층인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안그랬으면 충동적으로 우리 예삐는 아파트 밖으로 몸을 던졌을 것이다. 이 지랄 맞은 성격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수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이 나의 둘쪠 딸 예삐가 엄마의 죄책감을 건드리고자 하는 영악함에 기인한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자신의 처지를 더욱 불쌍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펼친 건지도.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든 열 살 아이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은 정상이 아니기에, 나는 무한한 반성을 했다.


무슨 생각을 하든 제 생각을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엄마에게 안아달라는 말을 하라고 한 순간부터, 이녀석은 내게 혼나기만 하면 "엄마 안아주세요." 하며 다가온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나는 미워죽겠는 예삐를 말 없이 안아준다.


세상에 태어나 나의 예쁨과 나의 동정을 가장 많이 받았던 아이이기에,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그 아이의 행동들이 배로 더 밉고 싫기도 했지만 꾸욱 참는다.





"예삐야. 요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일년에 한 두 번쯤은?"


오랫만에 묻는 나의 물음에 만화책을 보고 있던 예삐가 내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대답했다.


"평소엔 괜찮아?"


"응, 엄마. 보통은 괜찮아. 죽는거보다 사는 게 더 나은 거 같아. 걱정 하지마."


" 하아......................................"



딸 아이의 대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아이의 심리나 정서가 정상이 아니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라고 본다.


요즘 내가 겪는 아이들 대부분이 인내심이 없다.

또한 자신이 한 양보와 배려를 패배나 희생이라 생각할 만큼 이기적이기도 하다.


이런 작금의 상황에서 내 아이는 스스로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터다.


엄마는 늘 언니가 우선이고, 막내만 이뻐한다.

예전에는 세상 둘도 없는 아기인냥 그리 이뻐했던 자신은, 이제는 비참함을 느낄 정도로 화를 내고 혼을 내니  

이렇게 사는 게 무어냐, 죽고 싶다 생각할 만도 하다..


여전히 우리 예삐는 죽음을 한 켠에 안고 사는 것 같다.

얼굴이 예쁜 아이이기에 가인박명이 되지는 말아라며 빈다.


나의 예삐가 오롯이 삶에 대한 의지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채울 날을 기다리며

엄마인 나는 최선을 다해 이 아이를 품고 안아줘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성장통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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