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좋은나 Jul 10. 2023

벙어리 장갑 아니고 손모아 장갑

낳은 김에 키웁니다 9

벙어리 장갑 아니고 손모아 장갑



딸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있는 요즘이다.

건성 건성으로  다들 각자1번씩은 완독을 하였고, 2번째로 다시 읽는 요즘은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본다.


그림을 보고 서로 생각하는 바, 느끼는 바, 관찰한 바를 이야기를 나누는데 책 이외의 내용도 많이 말하게 된다.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도 아니고, 단 몇 장만 하루 5-10분 정도만 하는 활동이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엄마인 내겐 아주 의미있고 뜻 깊은 시간이다.



"여기 손등 부분은 뭘까? 뭘 나타내는 거지?지지가 묻은 걸까 아니면 실이 짜인 무늬인 걸까"


이 페이지의 내용 중에서 장갑이 사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던져보았다.


"엄마 손으로 이렇게 눈을 쓸어 모으면 이렇게 뭍는거 아니야?"


큰딸이 직접 시연해보이기까지 했다.


"눈 쓸어 모으는데 손등을 쓰나? 벙어리 장갑 끼고 눈을 긁어 모으면 손바닥 쪽에..."



말 하는 중에 눈빛을 바꾼 큰 딸이 매서운 눈으로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왜에? 갑자기 왜 그렇게 무섭게 보는데?"


무쌍의 큰딸 눈은 크지도 않으면서, 저렇게 감정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난다.


"엄마! 장애가 있어서 말을 못하는 분들에게

벙어리 장갑은 상처가 되는 말인 거 몰라?

장애인 비하 표현이라 벙어리 장갑이란 말 쓰면 안돼!

손모아 장갑이라고 해야지! "


"손모아 장갑?"



난생 처음 듣는 단어인지라 당장에 찾아보았다.








2016년부터 벙어리장갑 이라는 말 대신 손모아장갑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하는 캠페인이 시작되었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이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였다.


"우와! 딸! 엄마 진짜 몰랐다!!!!"


부끄럽지만 이런 것은 반드시 무지에 의한 것임을 알려야 한다. 세상을 다 아는 것 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시하고 요구하는 엄마라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 보다 무식한 편이 더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배워야만 잘못은 고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무지를 없애는 배움을 그 누구에게도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


"이제 벙어리 장갑이라고 하지 마. 나는 이거 4학년 때 배웠어."


"이야~ 딸! 학교에 출석 도장 찍으러 다니는 것만은 아니구나!

배워오는 게 있었네! 이런 거  있으면 엄마 또 가르쳐 쥐!"


"엄마도 다 아는 게 아니네."


둘째 예삐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턱까지 괴고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다만 어쩔  수 없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당연하지. 세상은 계속 바뀌고 새로운  게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엄마라고 어떻게 다 알아.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배워야 되는 거야."


늘 배워야한다는 말에 아이들은 어른이되면 공부가 끝난다 생각했는지 조금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이자 나와 내 딸들이 매번 마주할 현실이니까.


"근데 부산 할아버지도 작년에 장애인이 되셨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더더욱 장애인 비하표현 쓰면 안되겠다. 그치?"


"근데 엄마, 생각보다 엄청 많아. 외눈, 반팔 이런 거도 전부 장애인 비하 표현이래."


"와.... 진짜?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이거 저거 다 따지니까 뭐 말을 못하겠네!"


"욕에도 장애인 비하 표현 엄청 많대!"


"히히히 그러네. 그러고 보니 부산할아버지 이제 병신이란 욕은 못하겠다. 부산할아버지가 다리 병신이 돼서!"


"아니 이 엄마.... 자기 아빠한테! 그거, 팩폭이야!"


"나중에 부산할아버지하고 이 얘기 또 하자.

부산 할아버지도 가르쳐드리자!

욕쟁이 할아버지 이제 이런 욕하면 자기비하인데, 욕을 못해 어쩌나~!"



우스개 소리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지만, 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작년, 심장수술을 받으셨는데 다리에 장애가 생긴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 평생을 보통 평범한 일반인으로 사시다가 심장 대동맥류가 터지시며 수술을 받던 중 다리 신경을 잘못 건드려 장애가 생기셨다. 그렇게 우리 아빠는 생물학적 수명과 사회적 수명을 맞바꾼 장애인이 되셨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할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딸아이들은 장애인 비하표현을 찾아보고 적어두기까지 했다.


이것은 리얼 살아있는 교육이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이 이다지도 씁쓸한 것은.

아빠 다리는 병신이라 팩폭을 날려도 마음이 아픈, 딸의 효심이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이 1층이라 다행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