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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l 06. 2023

엄마 미안해 대신 듣고 싶은 말

낳은 김에 키웁니다 5

방과 후 교사 활동을 하는 친구가 그림책 한 권을 추천해주었다. 그림을 읽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남편과 함께 읽어보라 했지만, 나는 딸들과 함께 읽어 볼 생각으로 당장 책을 주문했다.


미술 전시회는 못 데려가도 이 정도 그림책은 사 줄 수 있지!

엄마가 내미는 책에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이 따라붙었다.



미대오빠의 딸들은 아빠처럼 미술에 딱히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가가 가진 고유의 성향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차이 나게 나타나고 있다. 


그중 큰 딸이 특히 개인적이고 예술적이고 창의적인데, 이 친구의 집중 애정 관심 식성은 극히 선택적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만 제 마음을 내어준다.


"엄마가 나랑 본다 그랬어. 저리 가. 내 거야."


배송되어 온 책 곁에 온 둘째를 야무지게 밀쳐버리기까지 하는 큰아이를 보며 놀라 물었다.


"첫째야, 같이 보면 되지, 그게 동생을 밀칠 일이야?"

"엄마 미안해."


"엄마가 아니라 동생한테 미안하다 해야지."

"쟤가 내 책 건들였...."

"네 책 아니고 다 같이 보려고 산 거야. 네가 언니라 먼저 보는 거야."

"히잉!! 안 봐!!!"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다.

토라져 돌아서 가면서도 다시 한번 둘째를 치고 가는 첫째.


삼 남매의 맏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우리 첫째는 이렇게 오로지 저만 생각하고 저만을 위해 행동한다. 제 동생들에게도 저런데 나중에 커서 사회에 나간다면, 과연 타인과 협업이 가능할까 하는 염려가 될 정도이다.


내 딸이지만 왜 저래 싶은 큰 아이의 개인적인 성향은 자칫 이기적으로까지 보인다. 그런데 미안하단 소리는 또 참 잘한다.


특히 이 아이가 엄마인 내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미안해"일 정도로 말이다.


어버이날 감사 카드에도 미안해,

내 생일 축하 편지에도 미안해,

하루의 대화 중 가장 유의미한 말도 미안해.



이 아이는 엄마인 내게 도대체 뭐가 그리 미안한 걸까?

나 때문에 찢어진 네 마음을 깁을 수 있다면...


원치 않았던 임신으로 내게 생긴 아이였다.

아이를 계획한 적도 기다린 적도 기대한 적도 없었기에 성취감 행복보다 부담 얼떨떨함이 먼저였다.


임신 기간도 유세는커녕 일하는 워킹맘에 주말부부여서 남편의 그 어떤 애정도 받지 못했다. 꽃게랑이 먹고 싶다니까 집 앞 슈퍼에서 산 새우깡을 던져주던 사람이었다

모형제 다 떠나도록 믿었던 남편마저 이렇게 살아보니, 세상 둘도 없을 무개념의 개새끼였다. 내 곁엔 믿을 놈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단절되고 고립된 채 힘든 결혼 생활을 시작했고, 잘 살아볼 거란 정신력 하나로 육아 초기를 버텼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차리지 못했고, 다시는 이 순간이 되돌아오지 못한단 걸 모르는 채 아이와의 시간을 아깝게 보냈다.


흐르는 시간 동안 나는 사랑보다는 의무감으로 아이를 대했고 애정 아닌 책임감으로 아이를 키웠었다.


모정은 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키우며 만들어지는 것이라 믿었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절로 자라지는 않던 내 애정을 그저 노력으로 커버하려 했다.


순했던 아이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는 아이였다. 매 순간 엄마가 처음인지라 힘들었다. 그 힘든 와중에도 가끔이지만 내 아이가 이뻤다. 아이는 변함없이 언제나 늘 항상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엄마 라고 한 없이 다정하게 부르며.


화를 내도 짜증을 내고 때론 울고 한탄까지 해도 나는 그 아이에게 언제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엄마였다.

그때 내 아이의 세상에서는 내가 전부였었다. 나는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아이가 내게 미안하다고 한다.


하라고 한 거 안 해서 미안해,

하지 마라 한 거 해서 미안해,

미안하다고 해서 그거도 미안해.



도대체 나란 엄마는 무슨 짓을 어떻게 했길래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해가 더 먼저이고 더 많이 나오는 걸까.


아이가 자라며 엄마에게 사랑보다 죄책감을 더 느끼게 만든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


네게 미안해야 할 사람이 나이지,

네가 미안해야 할 사람이 나는 아니야.


첫째야,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해줄래?

미안함 대신 네게 못다 주었던 과거의 애정까지 다 끌어와 네게 사랑을 퍼부어 줄게.

먼저 엄마도 네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말할게.


사랑해

사랑한다, 내 아가!

부르기만 해도 울컥하는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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