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냄새 빼고 다 좋다

언제 어디서나 내 친구

by 딱좋은나

내가 기억하는 담배는 아빠의 소유물이었다.

우리 아빠는 집 안에서 담배 태우던 분이셨다.

세상이 바뀌고 어느 순간부터 집 안에 재떨이가 없어졌다.

그렇지만 아빠는 담배를 피던 사람이었고, 나는 담배에 대한 나쁜 인식이 없엇다.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어울린 무리들이 하필이면 사회에서 말하는 비행청소년이었다.

그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일을 했고 술을 먹었고 담배를 피웠다.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술이나 담배를 접하는 것은.


첫 술은 호프집에서 대낮에 마신 레몬소주인지 체리소주인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술을 잘못, 아주 나쁘게 배웠다고 남편은 늘 말한다.

술만 먹으면 사회에 대한 불만이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든

결국엔 폭력성으로 표출해버리는 그 무리들처럼 나도 술만 먹으면 좀 과격해진다.


그래서 내게 술은 빨리 먹어 없애야하는 것이고 술을 먹고나면 빨리 집에가서 자야된다.

하도 더러운 꼴을 많이 봐서 어지간하면 24살이 될 때까진 취하도록 마시지도 않았다.




처음 담배를 입에 물어본 건 순전히 멋, 아니 가오 때문이었다.

그냥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코와 입에서 뿜어져나오는 매캐한 그 연기가 로망이어서였다.

호기심은 아니었다. 냄새는 싫었으니까.


처음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입 안에만 있던 담배연기가 실수로 목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켁켁 거리길 몇 번 하고나니 나도 멋있게 연기가 나왔다.


하지만 띨빵해보일 정도로 순진하게 생긴 내 얼굴과 담배는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담배가 안어울리니 피지말고 끊으란 소리를 정말 여러사람에게 많이도 들었었다.

그런 담배를 거의 14년동안 피다 말다 피다 말다하며 반흡연자로 살았다.


담배는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있어주는 내 친구였다.

쎈 척하는 용도로도 썼지만 마음이 약해빠진 난 속이 상하면 담배 생각을 먼저 했다.

화가나고 열이 받아도 담배 한 모금이면 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관계의 진전이 필요할 때도 유용했다.

영업직에 있다보니 여자의 몸이 불편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거래처 사람들과 같이 흡연장에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업수완이 되었다.


남 앞에서 가오가 필요한 날엔 담뱃불을 손가락으로 털어서 끄고 던져버렸다.

운전을 하게되면서부터는 차에서 담배를 피는 것이 괜히 멋스럽게 느껴졌다.

그냥 이런 유치한 생각과 사소한 행위가 나에겐 소소한 만족이었다.

고작 몇 천원으로 나는 꽤 많은 순간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느꼈다.

이 행복과 만족은 담배를 제외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었다.





담배는 좋은데 담배 냄새는 참 싫다.

그 냄새 때문에 담배를 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책장 위에 올려둔 담배를 엄마한테 걸렸던 날.

속으로 잔뜩 겁을 먹고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선배꺼란 내 거짓말에 속으셨다.

물론 아빠는 니꺼인 거 다 아니까 잘 치우라고 하셨다. 앞으론 피지 말라는 말도 함께.

희한하게 큰 일에는 대범한 우리 엄마아빠다.


살다보니 담배냄새가 싫다고 아주 지랄 지랄을 하던 내 남동생도 군대가서 담배를 배워왔다.

그러자 우리집에는 엄마를 제외한 모두가 흡연자였다.

어느 날 쓰레기통엔 각기 다른 담배갑이 3개가 나왔다.

그걸 보고 놀라 숨긴 것은 내 동생이지, 나는 아니었다.

나한테 이게 뭐냐고 엄마나 아빠가 물었다면,

당연히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동생이나 동생친구 거 인가 보지. 하고 말 했을 테다.

나는 담배 덕에 참 임기응변에 강해졌고 뻔뻔해졌다.


내가 만나던 남자친구들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나때문에 자신도 금연한 이도 몇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했듯이 나는 뒤로 몰래 다 했다.


지금의 남편도 처음엔 같이 피더니,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담배를 끊으라 했다.

지도 못끊으면서 나한테는 왜 끊으라고 하지? 어이가 없었지만 또 가면을 써줬다.

나는 그 사람 앞에서만 담배를 안피웠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에 남아있는 담배를 몽땅 다 피우고 기차에 올랐으며,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편의점에 가 담배부터 샀다.


담배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내게 그다지 유혹적이진 않았다.

담배 냄새는 흡연자인 나도 싫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담배를 잠시 멈추는 게 어렵지 않았고 참 쉬었다.

딱히 참는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만큼.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 날짜가 잡힌 후부터 나는 자의로 담배를 피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터닝포인트에서 14년간 함께해온 소중한 우정을 버렸다.

역시나 나는 물건이고 사람이고 습관이고 미련이고 추억이고, 참 잘 버리는 사람이다.


아이를 셋이나 낳고 아줌마로 사는 동안 담배를 다시 핀 적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아니다.

지금의 나 역시 완전히 담배를 끊었다고 못한다.


내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들은 아낌없이 내게 담배를 내어준다.

그러면 나는 내 담배를 사는 대신 친구들의 담배를 사준다.

그렇게 나는 집을 떠나서 가끔 오랜 나의 옛친구와 찐하게 조우한다.


힘들거나 짜증나거나 우울하거나 화가 나면 떠오르는 내 친구, 담배.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기는 하는데, 늙었는지 예전처럼 독한 담배는 못피겠다.

그렇다고 전자담배를 피기엔 너무 싱겁고 맛이 없다.


이건 내가 죽어야 끊어질 우정이겠지.

담배 피는 여자는 괜찮지만 내 여자가 담배 피는 건 싫어,라고 했던 남편이

이젠 애를 다 낳았으니 괜찮다 한다.

그거라도 해서 풀고 사는 거라면 차라리 홧병 걸리는 것 보다 담배 피는 것이 낫다는 엄마.

우리 아빠는 작년 수술이후로 담배를 강제로 끊게 되었고, 아빠도 끊었는데 너도 끓으라신다.

미친 집구석, 정신병자들이 모여사는 집이라서가 아니다.

그냥 나는 그런 위로와 지지를 받는 사람이다. 담배보다 나는 소중하니까.



과연 내 아이들이 알게된다면 엄마의 흡연에 대해 뭐라고 할까?

아직은 비밀로 하고 싶구나.

아이들이 사춘기가 오면 그때 한 번 같이 피워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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