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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l 24. 2023

비 오는 날 차에서 음악 듣기

나는 좋은지 모르겠더라

비 오는 날 차에서 빗소리 듣기, 음악 듣기. 나는 글쎄...


독 토독 토도독


선루프 유리와 자동차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우렁차다.

남편은 왜 매 번 차에 탈 때마다 선루프 안 쪽을 열어 놓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드세게 비가 오는 날은 그저 비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혹시 비가 새어 들어올까 염려가 되는데....

- 선루프 누수 이슈가 빈번한 차지만 우리 차는 뽑기 운이 좋았는지 다행히 아직 괜찮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 연인이라면 둘이서 이렇게 차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집에서 점심도 굶고 우릴 기다리고 있는 아이 셋 걱정에 내 마음은 조바심이 난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기까진 속도가 똑같은데, 차를 출발하기까지 인터벌이 길어도 너무 긴 남편.

그런 그가 운전석에 앉으면 성질 급한 내 숨은 열두 번도 더 꼴딱 꼴딱 넘어간다.

그렇다고 내가 운전대를 잡기엔 남편이 운전을 너무 잘한다.

1호차 운전병 경험에 1종 대형까지 학원 없이 혼자 해낸 베스트 드라이버 남편은 인터벌이 흠이지 운전 실력만큼은 최고라고 나도 인정한다.


"안 가?"


짜증스러운 내 물음에도 남편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유투브로 노래를 선곡한다.

마음이 급해서 발까지 동동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하나도 급한 게 없다.

배곯아 있는 내 새끼들은 엄마 아빠 언제 오냐며 재촉인데, 그는 이 와중에도 참 태평하다.


"좀 기다리라 그래. 금방 가잖아."


오늘 같이 애들을 집에 두고 잠시 일 보러 나온 날이면

비 오는 날의 감성은 개나 주라며 괜히 내 마음만 더 팍팍해진다.


나는 비가 와도 말랑한 감성이나 분위기 따위는 없는 딱딱한 현실에 사는 애셋 엄마이다.




결혼 전에 나는 어떠했더라? 그때도 비를 참 싫어했다.

어느정도였냐면 비가 오면 있던 약속도 취소해버리고, 출근과 통학을 제외하고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귀찮고, 우산을 쓰는 것도 싫었다.

비가 주는 시원함보다 꿉꿉함과 찝찝함이 더 크게 와닿았다.

비는 그 존재만으로도 여러가지가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비가 오는 날은 집 밖에를 나가지 않았다.




19살에 면허를 땄지만 운전을 하기 시작했던 26살부터 나는 비가 더 싫어졌다.

카트라이더도 아니건만 직진애호가인 나는 비가 오면 막히는 도로도 짜증스러웠고,

빗물웅덩이로부터 물벼락을 맞는 것도 싫었고, 옆을 지나가는 큰 차가 뿌려대는 물보라도 싫었다.

심심찮게 보이는 빗길 사고 현장을 마주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시간~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산업단지로 출근을 하던 시절엔 더 했다.

내가 지나야 하는 고속도로에 컨테이너가 즐비하게 다녀 비 오는 날은 더 위협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적인 태풍이 불던 날, 나는 출근길에 제대로 날벼락을 맞았다.

근처 공사장에서 날아온 가림벽이 내 차에 그대로 내리 꽂혀버린 것이다.


"어? 어? 어! 어!!! 아아아아악!"


설마 설마 하며 속도를 낮추어 운전을 했건만, 무섭게 날려오는 기다란 가림벽의 위협에 카풀을 하던 사람과 둘이서 결국 소리를 질렀다.

피할 새도 없이 내리 꽂힌 가림벽에 하마터면 우리는 죽음의 강에 발을 담글 뻔했다.

다행히 몸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그저 자동차 앞유리와 보닛과 휀다까지만 딱 망가졌다.

내 차에서 앞구르기를 한 가림벽은 또 다시 바람에 저만치 멀리로 굴러가버렸다.

(놀란 가슴으로 출근하자마자 구청에 전화해 공사 현장에서 날아본 가림벽으로 인한 피해를 알렸다.

그 당시 나 외에 차 몇 대가 더 피해를 본 터라 현장에서 찍은 증거 사진 한 장 없이 나는 아무 탈 없이 사고 처리를 받을 수 있었다. 8차선 도로라서 나에게 피해를 준 가림막을 찍으러 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 후부터 나는 비가 오는 날은 정말 출근조차도 하기 싫어졌다.

일이 암만 좋아도 목숨까지 걸기는 싫었기에.




비가 싫어도 이렇게 싫은데, 연애를 한다 한들 비 오는 날이 좋아질 수 있을까?

만남을 가지는데 되려 번잡하고 번거롭고 거슬릴 뿐이지.


내가 잠시 만난 어떤 남자는 비가 오는 날 차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빗소리를 듣는 걸 좋아한다 했다.

그런 게 왜 좋냐는 내 물음과 어이없다는 반응을 기억에 담아두었던 그는

비가 오는 어느 날 대뜸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왔다.


"아, 추워."


차에 올라타기 전까지 짧은 시간의 추위도 싫었다.

가뜩이나 비는 싫은데 차가운 겨울비는 더 싫지!

당연히 나오기 싫다고 버티는 나를 굳이 끌어내는 데 성공한 그는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이 넘는 시간을 달려 송정 바다까지 갔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에 주차를 마치자마자 그는 주행 중에 들었던 신나는 음악 대신

절로 쓸쓸해지고 슬퍼지고 짠해지는 그런 음악을 틀었다.

예를 들면 '눈의 꽃' 일본어 버전 같은 그런 청승맞은 노래를.

(그래서인지 나는 이 노래를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딴에는 내게 비 오는 날 차에서 빗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몸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름 편의점에서 사 온 따뜻한 차까지 쥐어주며 나의 반응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켜보았지만, 따신 유자차만 홀짝이는 내 표정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가 내게 어떤 낭만이나 로망을 기대하였는지 알지만 모른 척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배려심이 많거나 말랑 말랑한 사람이 아니었다.

말이 없는 내가 감동이라도 한 건지 기대하며 어떠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단 두 마디로 흥을 와장창 깨버렸다.


"춥다, 다 보고 듣고 했으니 빨리 집에나 델따 도 (데려다 줘)!"


자동차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와 잔잔하고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음악소리.

거기다 더한 까만 밤바다와 하얗게 다가왔다 부서지며 사라지는 파도.

계획한 대로 기대한 대로 모든 것이 세팅된 이 순간을 그가 얼마나 기다렸을지 따윈 내게 중요치 않다.


내게 이 모든 것을 잘 느껴보라는 배려를 한답시고 차 유리창에 김서림이 생기지 않도록 틀어놓은 바람이 내게는 추워도 너무 추웠다. (나는 더위는 거의 타지 않고 추위를 심하게 많이 타는 편이다, 그때도 지금도)


"아, 니 진짜............!"라고 황망한 표정의 그가 말했던 것 같다.


"좋으면 니나 많이 해라. 이런 거 난 추워서라도 못하겠다. 빨리 집에나 가자."

다 마신 유자차 빈병을 흔들어 보이며 나는 귀가를 재촉했다.



그냥 같이 있기만 하여도 그저 좋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리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내 입장에서는 비 오는 날 집 밖을 억지로 나와야 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증스러웠다.

거기에 더해 비도 빗소리도 싫다는 내 취향을 존중하거나 고려하지 않은 그놈의 심보가 매우 괘씸했다.


부산 사람이 바다를 못 보고 산 것도 아니고,

가뜩이나 비까지 더해 날도 추운데 사람도 없는 겨울 바다까지 와서

뭐 하러 빗소리를 듣고 앉아있는 시간 낭비를 하는 건지!

그게 뭐가 대단한 거라고 나를 덜덜덜 떨게 하는지!


그날 이후 나는 그가 잠시나마 내게 기대했었을 연애라는 기회까지도 박탈해 버렸다.





이제 내 나이 4n살.

비 오는 날 차에서 듣는 음악소리, 나는 여전히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내게 비는 여전히 불편하고 싫은 존재이다.


비가 오면 애 셋 우산 챙기기부터 밝은 색 옷을 입히고 얇은 겉옷까지 챙기느라 신경을 한번씩 더 써야 한다.

또 남편이 오고 가는 길의 운전 걱정, 사고 걱정까지 절로 하게 되니 여전히 비는 내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언젠가 비오는 날 차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빗소리를 즐기는 날이 올까?

지루한 장마 끝에서, 선루프에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을 보며..........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감히 장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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