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낭비 감정낭비 연애 썰 1

아닌 건 끝까지 아닌, 확신이 없는 관계

by 딱좋은나

어쩌다가 알게된 나이 많은 아저씨를, 오빠라고 한번 부르지도 못했으면서 남자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5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사람과 나는 징검다리 건너듯 띄엄 띄엄 만났다.


어린 나를 데리고 노는 그의 손에서 제대로 농락당하는 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제대로 시간낭비 감정낭비를 하는 줄 알면서도 놓지 못했던 미련스러웠던 과거가 있다.


이제는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어떤 이의 아빠가 되어 살고 있는, 나에게는 내 마음 가지고 논! 정말 나쁜 사람이었던 그와의 악연을 되짚어본다.




나는 대학에 들어간 이후 학기 중에는 장학금을 위한 학업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절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돈 30만원을 받아 한 달동안 휴대전화 요금도 내고 밥도 사먹고 용돈으로 썼다.


대신, 방학 기간동안에는 반드시 아르바이트를 했고 내 용돈을 벌어썼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이나 학비가 모자라서도 아니었고, 사고 싶은 걸 사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공부를 하지 않는 기간엔,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누구도 내게 일을 하라 하지 않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수능 직후 주유소 알바를 두 달한 이후, 나는 절대 몸을 쓰는 알바를 하지 않았다.

마흔이 넘도록 나는 아직 서빙 알바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살았다.


대학생 시절 나는 주로 TM회사에 단기 계약직으로 근무하였다.

더운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 있었고 추운 겨울엔 따뜻한 히터 앞에 있는 사무실 근무를 했다.

몸은 아주 편하고 실적 스트레스로 마음만 조금 불편하게 다녔다.

그나마 끝이 있는 일이니 늘 잘 견뎠고, 성과급도 쏠쏠히 받았다.


아마 그때 내가 조금더 생각이 깊고 내게 조언해주는 이가 곁에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배정 된 과목이 하등 쓸모 없을 것이라며 교직이수도 안했었다.

있는지도 몰라 욕심을 못내 부전공이나 복수전공도 못했다.

상대 심지어 무역학을 전공했으면서 어학 실력이 안되서 교환학생도 못갔다.

더럽게 관심이 없어서 토익 점수나 자격증 취득도 못했다.

학점만 잘 받았지, 그보다 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것에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할 정도로 나는 반만 똑똑했다.


물론 그 기간에도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고무신 신기 싫어 5년을 만난 남자친구를 버리고 만난 운동하던 사람과는 결국 오래 가지 못했다.

그리고 고3 여름부터 나는 다른 남자친구가 생겨 그때까지 햇수로 4년째 만나고 있던 중이었다.




여름 방학에 알바를 해봤는데 좋은 경험이었다며, 겨울 방학엔 같이 일을 해보자며 친구가 제의해왔다.

TM일도 지겨워지던 찰라라 나는 흔쾌히 겨울방학 기간 동안 친구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사실 그 친구는 여름방학동안 대형마트에서 알바를 하며 인사부 소속으로 직원 교육을 하러 온 남자와 눈이 맞아 연애 중이었다.

인사과에 근무하던 친구 남자친구의 빽으로 나는 나름 편한 직무로 빠졌다.

그렇게 간 곳이 백오피스였다.


백오피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직접적으로 물건을 사러 마트에 온 손님을 응대하는 곳이 아니다.

후방에서 업무 지원을 하느라 입고와 출고가 빈번히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단기 아르바이트인 나 외에도 로테이션 근무자들의 수가 많았다.

또 그 백오피스는 마트 안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유난히 근무자들간의 사이가 끈끈하고 돈독했다.

나는 그 사무실에 한 자리를 얻어 한시적으로 명절 선물 배송에 대한 해피콜 업무를 담당했다.

(TM이 싫어서 마트로 왔는데, 이전의 경력 때문에 결국 나는 전화통을 또 붙잡았다. 경력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겉으로 보기엔 칼 같이 살 것 같은 내가 속이 물러 터져 한 사람을 놓지를 못하고 미련이란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다.


나를 미련덩어리로 만든 그사람은, 그 마트 백오피스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담당님이었다.

(퐁당 퐁당 만나는 동안 담당님, 주임님, 대리님, 과장님까지 단 그를 직급으로 부르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와 그사람은 나이 차가 아홉 살이나 난다.

직급을 떠나 나이차가 워낙 나다보니 일하는 동안에도 내가 상대하기엔 그리 편한 사람은 아니었다.

둘의 업무도 달라 일을 하는 동안 업무적으로 말을 섞은 것도 몇 번 안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기에도, 일을 시작한지 몇 일 안된 내가 잠깐 보기에도 그사람은 늘 드렁큰 상태였다.

매일 아침 술냄새를 달고 와 담배 피러 가기 바쁘고, 술이 덜 깬 걸 커버하려는 건지 그사람은 근무시간 내내 믹스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셔댔다.


주윗사람들과 하는 얘기만 봐도 업무적인 것 보다는 술 약속 잡는 게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퇴근 후 술 마실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좀 한심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내 기준에서 알콜과 니코틴 그리고 카페인까지 3종에 찌든 그 사람은 반쯤 폐인이었다.

덩치만 컸지 순하다 못해 모지리로 보이는 그가 그래도 업무에서 제 몫의 일은 잘 해내는 걸 볼 때마다 놀라고 신기했다.

계약직들이 허둥지둥하여 그사람을 찾으면 어디선가 나타나 금세 문제를 해결하고 또 휘릭 사라졌다.

여지껏 겪어보지 않아 독특하고 이상하고 신기한 캐릭터였다.


한심하지만 반전 있는 그 사람을 나는 그저 동네에 흔히 있는 아저씨 정도로만 생각했다.

일 하는 동안 전혀 관심 밖이었고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는 것만 빼면 외모나 하는 짓이 맘에 드는 게 하나 없었다.


사실 그를 보면서 상대에 재학 중인 나는, 혹시나 마트에 취업을 하게 되면 저렇게 살까싶어 겁이 났다.

매일 그에게서 나는 숙취의 냄새와 피곤에 쩌든 모습을 보며 대형 마트는 일 할 곳이 못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유통업 종사자와 연애금지를 다짐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의 잘못된 예이자 부정의 표본으로 생각했던 그를 어쩌다가 남자로 보게되었는지 그저 원통하다.

회식 날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의 짧은 근무를 했다.

마트 백오피스에서 앉아 전화를 걸던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 까진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모두들 내 남자친구의 존재를 알고, 우리가 얼마나 알콩달콩 사랑하는지도 알았다.


일 하는 동안 나는 백오피스 근무자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냈다.

완전히 친한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척을 두고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목소리도 크고 활달한 나는 그 바쁜 백오피스에서도 존재감은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 출근 시간에는 몇 십번이나 안녕하세요 소리를 해야했다.

그리고 정규직에게 일을 떠넘기지 않아도 될 만큼 맡은 일을 해냈다.

컴플레인 처리도 잘 했고, 사후 관리까지도 무난히 해 일 잘한다 소리를 들었다.

대학 졸업을 하면 마트로 오라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지만 술자리 잦은 백오피스 식구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우... 싫어요. 마트는 알바면 충분하지 저 같은 사람에게 직장으론 좀 아닌 것 같아요." 하며.


말 한마디로 잘 해냈다라고 쓰면 말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나름 신경을 많이 쓰고 머리글 굴리고 인내심을 쥐어짰다.

모자라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부족하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게 인생 선배들의 눈에 보였을까.

아르바이트를 그만둔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백오피스 부서 회식에 내가 초대되었다.


아르바이트 기간 동안 명절 연휴가 끼여 전체 회식을 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며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나마 한 솥밥 먹은 나의 송별회 겸 친목도모를 하자며 일 끝났다고 연락 한번 없냐고 서운하다 하셨다.

못간다 안간다는 말을 하는 내게 여러 명이 번갈아 전화를 바꿔 받으며 제발 오라고 부추겼다.



잊지 않고 연락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내가 뭐라고 이 난리들인가 싶어 미안해서라도 가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만해도 술을 잘 마시지 않았던 때라, 회식자리에 가서도 나는 적당히 술잔만 부딪쳤다.

초록병이 돌고 도는 동안 고단한 하루에 찌든만큼 술에 절여진 사람들이 하나 둘 택시에 태워져 보내졌다.


유통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공감하실 것 같다.

유난히 술자리가 잦고, 그 때 마다 그들은 참 많은 양의 술을 마신다는 걸.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취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마셨다.

시간이 흘러 맨 정신이 아닌 사람들만 남아있는 술자리에 온전한 정신으로 남아있는게 어려워졌다.

술자리를 이동하는 틈을 타 집에 가겠다 하니, 발음도 어려운 담당님이라 부르던 그가 나타나 택시를 잡아주었다.

그러면서 친절히 택시의 문을 열어주어 나를 타게 하고, 과하다 싶을 만큼의 택시비를 쥐여주셨다.

굳이 안와도 되는 자리인데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여서.


와!!!

그때 택시비를 주는 그 사람에게 처음으로 찌질함이나 불편함이나 한심함이 아닌 낯선 감정이 들었다.


그깟 택시비로 준 돈 몇 푼에 시선이 바뀔 정도로 나의 오래된 사랑이 흔들리던 중이었다.

기댈 부모 형제 하나 조차 없는 고아를 만나 이게 사랑일까 동정일까 저울질을 자꾸 하던 때였다.

남자친구는 비록 나와 나이 차가 많지 않았지만, 시설에서 자라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그의 개인 사정 상 여러모로 나에 비해 부족한 것이 많았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기까지 우리가 6년이란 세월을 함께 했음에도 그 결핍은 도무지 사랑으로 채워질 수 없었다.

그만의 결핍이었던 것이 나에게까지 전가되는 일도 점점 많아지던 때 다.


자신의 처지로 인해 가지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비난이 마음의 가난으로 까지 이어졌다.

그 당시 내 남자친구는 나와 함께 알콩달콩하며 사소한 연애를 이어 가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연애 초기에 그러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현실을 자각하며 무엇이든 포기부터 하는 그에게 내가 조금씩 지쳐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보인 담당님의 모습에서 나는 제대로 다 큰 어른이자 자신을 지킬 충분한 힘을 가진 남자의 면모를 발견했다.


"고맙습니다!"


액수에 놀라 사양하는 내게 안 받으면 집에 못간다는 협박을 덧붙인 주윗사람들 덕에 나는 인사까지 잘 하고 택시비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되게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진 채로.



길어진 이야기로 2,3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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