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과 재혼하기
6월에 학점은행제로 시작한 사회복지사 2급 수업을 7주 동안 들었다.
한 달 남짓을 요령 없이 인터넷 강의를 보고 강의 요약을 직접 다 하는 식으로 공부를 했더니 죽을 것만 같았다.
하루에 한 과목씩 3강을 듣느라 주 7일을 저녁 열시에 수업을 시작해 새벽 한 두시에 끝났다.
늦게 자도 일어나야 하는 시간은 같으니 수면이 너무나 부족했다.
"살려줘!"
내가 침실로 들어오는 소리에 선잠을 깬 남편에게 다가가며 매일 하소연했다.
"진짜 죽을 것 같아. 늙어서 공부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야.
간만에 하는 문과형 공부 너무 힘들어. 이거 진짜 보통 일이 아니야! 나 좀 살려줘"
잠에 취해 비몽 사몽 하면서도 남편은 "쯧쯧 불쌍한 것." 하며 나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이렇게 가끔 밤에 앓는 소리를 내고 나면, 남편은 더 많이 나를 도와주기 위해 애써준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는 전담해주고 있고,
암만 바빠도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는 수고를 해준 후 출근한다.
또 휴일처럼 아이들과 하루종일 집에서 나와 부대껴야하는 날에는
"엄마 좀 도와줘라, 엄마 힘들게 하지 말아라" 하는 잔소리같은 당부를 아이들에게 해준다.
(평소에 남편은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별로 없는 편이다.
워낙에 내가 잔소리를 가장한 화풀이를 해대서 그런지 평소에도 추임새만 넣지,
직접적으로 나서서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는 악역이 되지는 않는다.)
욕심을 부려 마흔이 넘어서도 공부를 한답시고 미련을 떨고 있는 나는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자 라면을 끓여먹더라도 내 손으로 다 해야하는 억척 주부이며,
오후 시간에는 공부방 선생님으로 일도 하고 있고,
남편이 실무를 보고 있는 사업장의 대표로서 모든 경리와 세금 업무도 맡아서 처리하고 있다.
거기다 더해 더 늦기 전에 나도 내 꿈을 한번 찾아 가보겠노라 선언한지 석 달.
재능도 재주도 없는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글 쓰는 취미도 나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남은 읽어주지도 않는 웹소설을 자기만족과 혼자만의 재미로 쓰고 있고,
작가 소리 듣게 한 브런스토리에도 일기를 쓰듯 매일 욕심을 내고 있다.
거기다 더해 써먹을지 확신도 없고, 언제 쓸지 모르는 사회복지사 2급을 따겠다며 공부도 시작했다.
지금 내 생활의 5분의 1쯤을 차지하는 내 꿈 찾기가 시작된 때가 2023년 6월이었으니,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아직까지는 페이스 조절을 잘 하며 밸런스를 맞춰 열심히 달리고 있다.
가뜩이나 할 게 많은 나인데
전공과 무관하고, 당장 써먹지도 않을 거고, 돈도 안되는 공부까지 시작해서
힘들다는 소리를 하며 앓으니 남편 눈에는 내가 한심해 보일만도 하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허공에 대고 삽질을 열심히 하고 있어도 역시나 이 사람은 끝까지 내 편이다.
암만 허공이라도 삽질하면 힘드니까 포크레인을 가져다 줄 사람이다.
"하고 싶으면 공부 해. 오빠가 너 공부하는데 드는 돈 만큼은 더 벌어올게."
내가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의논하자 남편이 말했다.
그는 유학을 포기하고 만난 남자였고, 내겐 대학원 박사과정과 맞바꾼 결혼이었다.
늘 공부, 아니 솔직히 박사 학위에 목말라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공부하겠다는 나의 말에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돈을 더 벌어와서 내가 학비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라고 기꺼이 응원해주는 그의 대답이 참 고맙다.
결혼 기간 내내 내가 못한 공부 욕심을 남편에게 투영시켜 홍대 미술 대학원에 가라 가라 등떠밀었지만,
남편도 결국 생활비를 이유로 진학을 포기했었다. - 무엇보다 이 남자는 원래 학위나 공부에는 그다지 흥미도 관심도 없는 편이다.
그런 그가 나의 학점 은행제는 까짓거! 하며 흔쾌히 첫 등록금을 내주었다.
공부의 시작은 내 부모님에 의한 동기부여였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만큼은 그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고 싶다.
그래서 용을 쓰고 기를 쓰며 새벽까지 달렸는데, 체력이 달린다.
힘들까봐, 잠 못자서 피곤할까봐, 다음 날에 지장 갈까봐 라는 핑계를 대어 남편은 가끔 나를 만류한다.
지켜보기 짠한지 잔뜩 뭉친 내 어깨도 자주 주물러 준다. 그러면서 무어라도 열심히 하는 내가 기특하단다.
쥐꼬리만한 페이를 받으며 일을 해도 즐거웠던 영화판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 때 자신이 참 열정이 많았다 생각했는데, 한꺼번에 이렇게 여러가지를 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나를 보며 진짜 열정이 무언지 알겠다 한다. 세상에 이보다 더 진한 찬사가 어디 있을까?
말로만 번지르하게 포장을 해서 그렇지, 나보다 더 바쁘게 나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돈 안되고 용만 쓰고 있어도 그의 말은 나를 최고로 만들어 준다.
내가 하는 일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위로가 되어준다.
이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없던 용기도 생긴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지쳤던 에너지도 불끈하고 새로이 솟아난다.
무어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비록 법적으로 내 전남편이지만, 나의 가장 큰 뒷배다.
든든한 그의 뒷배를 안고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그의 든든한 뒷배가 될 그 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