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과 영정사진 4

영정사진을 찍기 위한 핑계, 가족사진

by 딱좋은나

2023년 봄, 아빠의 생신이 되었다.

시집 간 이후 아빠의 회갑 이후론 아빠 생신에 참석한 적이 없던 나였는데.


아빠의 심장은 수술을 한 번 했을지라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건 여전하다고 했다. 이미 터진 상부 대동맥류만 수술을 했고, 아직 안터진 하부 대동맥류의 상태도 그다지 좋은 건 아니라니.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라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리 아빠 생신은 반드시 챙기겠다 마음 먹었다. 멀리서 직업을 갖고 제 일을 하며 사는 딸이 친정에 올 수 있는건 명절 두 번과 아빠 생신뿐이다. 볼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봐둬야겠다.


"어이 사랑하는 우리 아빠 뭐 먹고 싶노. 내 아빠 생신 때 부산 갈끼다!"


말 많고 솔직한 나라도 오리지널 경상도 사람이다보니 가족에게 하는 애정표현에는 서툴다.


하지만 아빠가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부터 엄마와 아빠께 최대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 중이다.

억지로 숙제를 해치우듯 하더라도 해야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 아빠가 죽고 나서 한 맺힌 목소리로 부르짖게 될 테니.


"뭐 하러 오노. 돈 든다 오지 마라."


역시나 내가 간다는 말에 아빠는 오늘도 또 돈타령이다. 일을 안하니 아빠에게도 가장 절실한 건 돈이다. 내 돈이 귀해보니 남의 돈도 귀하다는 걸 알게됐다.


부모님이 딸래미 돈 걱정까지는 하지 않도록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용돈을 많이 드릴 정도가 되면 우리 엄마아빠는 돈 걱정을 그만 하시려나? 아니, 그때엔 또 다른 고민을 하시겠지?이번에 아빠 아픈 걸 겪고나니 돈 걱정이 세상에서 제일 수월한 걱정인 걸 알았다.


"그냥 보고싶다 조심해서 온나 하면 되지,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 딸래미 가니까 쫌만 기다리라."


나나 우리 애들이랑 잠시만 같이 있어도 정신이 하나 없다 하시면서도 아빠는 우리를 제일 반겨주신다.





둘 뿐인 우리 남매는 아빠 생신을 맞아 미리 작당 모의를 했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아빠의 심장을 핑계삼아 가족 사진을 찍기로 했다.


"형님! 제가 돌잔치 사진 볼 때마다 아버님이 빠져서 얼마나 속상한대요."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이나 아들보다 며느리의 마음이 더 착하고 그 씀씀이가 크다.

그래서 나는 늘 올케가 고맙고 없는 집에 시집 와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다.

가족사진을 찍자고 먼저 제의를 해준 것도 올케이고

스튜디오 여러 곳을 전화 돌려 예약을 하고 열 명의 가족 의상까지 준비해준 것도 우리 올케이다.


"사진 찍는 김에 엄마 아빠 영정 사진도 찍자." 하고 동생 부부에게 말했다.


"안그래도 제가 그거 말씀 드릴랬는데, 제가 먼저 말 꺼내기가 그래서...."

하며 올케가 내 의견에 동조해주었다.


"엄마 아빠한테는 여권 사진 찍는 거라 하고 영정사진 찍자. 언제 써도 쓰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찍어두면 엄마 아빠도 좋지 뭐."


"그라자, 그라믄." 동생도 별 말 없이 따라주었다.


"원래 영정사진 찍으면 오래 산다는데,

우리 아빠 너무 오래 살아서 천덕꾸러기 되믄 우야노.

적당히 살다 죽어야 될낀데. 딱 3년만 더 요대로 건강히 살다 한방에 가셨음 좋겠네."


살벌한 내 말에 동생의 말이 뾰족해진다.


"3년은 그래도 너무 한 거 아이가. 아직 아빠 70도 안됐는데."


아빠에 대한 감정이 사랑보다는 미움이나 원망이 더 큰 남동생인데

그 대상이 없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건 번번이 사랑해마지않는 딸인 내가 아니라 동생인 것 같다.

연명 치료 때에도 그렇고 아빠의 죽음도 그렇고 동생이 더 필사적으로 붙잡는 것 같다.


아빠 살아생전에 미움도 원망도 풀었음 좋겠는데,

아직 동생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풀고 보면 사실 별 거 아닐텐데, 용기를 내렴!!!!





사실 심장 수술 이후 아빠는 병원 생활을 몇 달 하신 것도 있지만 거동이 불편해져서 일을 못하고 집에만 계신다.

엄마의 외벌이로 두 식구가 살아야하는데, 젊어서 아빠가 엄마한테 지은 죄가 많다보니, 요즘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단다.

엄마 심기를 거스를까 그러면 싸우게될까 아빠는 대놓고 말도 못하시니 겨우 내게만 서운한 티를 내신다.


"그러니까 힘 떨어지기 전에 평소에 잘하지 그랬어, 인쟈는 삼시세끼 밥 얻어 먹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소."

하고 위로되지 않는 위로를 건내지만 어쩌겠는가, 엄마에게 아빠는 애증이자 애물단지인데!


엄마는 자신이 하지 않으면 우리 남매가 건사하게 될 짐이라 생각하고 아빠를 짊어졌을 뿐 아빠가 좋아서 버리지 않은 게 아니다. 엄마 눈엔 아빠가 이뻐 보일 수가 없다는 걸 알기에 나도 감히 뭐라 말을 못꺼낸다.







드디어 가족 사진을 찍는 날이 왔다.


여전히 우리 예삐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예삐의 비협조 때문에 아주 힘들게 10명의 가족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의 제안에 할아버지 아빠 아들 (아빠 동생 조카) 이렇게 삼부자 사진도 찍었다.




모든 촬영을 마치고 아빠와 엄마께 여권사진도 찍자고 했다.


"사장님, 여권도 되고 영정 사진도 되게 찍어주세요."


엄마가 스튜디오 대표님께 요청하는 말씀을 듣고 속으로 뜨끔했다.


"갑자기 영정사진은 왜?!"

알면서 묻는 뻔뻔함으로 커버를 해보려하지만 표정관리부터 잘 안된다.


"느그 아빠나 내나 인쟈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미리 준비 해놔야지. 요새 초상집에 가보면 전부 다 아직 안 죽을줄 알고 영정사진 같은 건 준비 하나도 안해놨다이가. 닥쳐서 하니까 사진이 죄다 폰으로 찍은 거라 꼴 뵈기 싫드라.

그러니까 이 참에 우리는 미리 미리 준비하자."


그렇게 엄마 아빠 두 분의 여권 사진을 가장한 영정사진도 단정하게 찍어두었다.







"저런 건 얼마나 하노?"


이제 정리하고 집에만 가면 되는데 갑자기 아빠가 스튜디오 한 켠에 걸린 어르신들의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보며 물으셨다.


"와? 아빠도 엄마랑 리마인드 찍고 싶나? 함 찍을래? 그래, 아빠 생일인데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찍어라!"


동생과 의논도 안하고 나는 질렀다.


"사장님, 이 컷 추가하면 얼만데요? 이거 우리 엄마아빠도 찍어주세요."


"뭐하러 쓸데 없이 또 돈을 쓰노 나는 안찍을 거다"던 엄마도

공을 들여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악세사리도 이것 저것 대보며 최선을 다해 치장하셨다.

그리고 잔뜩 굳은 얼굴이지만 아빠와 리마인드 웨딩을 찍었다.

두 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자식으로 매달 생활비는 커녕 병원비 한 번 보태드릴 수 없는 내 처지가 슬펐고, 아빠 엄마가 이렇게 살아서 내 곁에 계셔주심에 감사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빠의 심장이 조금 더 우리 곁에서 힘차게 뛰어주길.

절름발이가 된 다리병신이라도 괜찮으니, 아빠가 조금 더 힘내서 살아주길.


모든 걸 겸허히 받아들이셨는지 얼마전부터 아빠는 경비지도사, 주차관리원 자격을 취득하셨다. 그리고 연이어 전기기능사 시험을 준비 중이시다.


나는 아빠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이렇게 마음 건강히 살아주시는 것만도 감사하다. 다리 한 짝에 자존심은 비록 무너졌어도 아빠의 자존감은 무너지지 않아주셔 감히 대견하고 기특하다.


부디 아빠가 사는 날까지 후회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사시길!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아빠,

누가 뭐래도 나는 강하고 멋진 우리 아빠를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족사진과 영정사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