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읽는 꿈과 그 엔딩
시대마다 청춘이 노래하는 꿈의 색깔이 있다. 2003년과 2023년, 딱 20년 차 꿈을 소재로 한 두 K-팝 노래에 담긴 스토리텔링을 소개한다.
2003년 발매된 보아의 정규 3집 ‘Atlantis Princess’의 4번 트랙 ‘Milky Way’는 ‘언젠가 소중함마저 잃어버린 채 난 어른이 돼버렸지'라며 희미해져 가는 꿈을 자각하고, ‘I need you,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라며 다시 곁에 있어달라는 소중한 마음을 고백한다. ‘까만 밤 내 안에 펼쳐진 세계로' 무한히 펼쳐지는 나라는 우주 속에서 / 꿈은 반짝이고 있어'라며 동화같은 영원함을 기약한다. 현실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이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어디론가 그렇게 흘러가지 / Oh my milky way’ 은하수에 흐르는 별처럼 운명을 맡겨버린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3년에 발매된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의 멤버 허윤진의 솔로 앨범의 싱글 트랙 ‘Blessing in Disguise’는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의 노이즈가 두드러진 락 사운드다. ‘Blessing in Disguise’는 한국말로 전화위복 : 재앙과 화난이 도리어 복이 됨의 의미를 갖고 있다. ‘Hey 앞길이 가로막혔잖아'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험난한 상황에서,‘괜찮아 괜찮지 않아 / 장난이야 아니 진심이야 / 온통 그르쳐진 내 plan’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그 끝에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I don’t know where to go 나의 자리' 어디로 가야 할지 불안감에 멈춰 서있다. ‘다 되리라 고진감래야' 주문처럼 외우는 내 안의 다짐으로 ‘상상해봐 지난날 되돌려봐’ 과거의 테이프를 돌려본다. ‘손을 모아 발을 내디딘 채 / ‘시작이야 take it back my 인생' 절박함의 기도를 올리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패를 뒤집은 인생을 노래한다.
두 곡의 타임라인의 차이는 딱 20년이다. 2000년대 ‘Milky Way’의 타임라인 속 나는 아빠 차 안에서 막연한 꿈을 창밖에 그리는 초등학생이었고 2020년대 ‘Blessing in Disguise’의 타임라인 속에서 나는 세상의 벽에 부딪혀보고 실패해버린 20대 중반이 되어버렸다. 보아처럼 꿈이 반짝반짝 너무 소중하다고 말하기에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고, 허윤진처럼 거침없이 세상에 소리치기에는 의심과 불안이 많아졌다.
르세라핌의 데뷔 과정을 담은 다큐 ‘The World is my oyster’에서 허윤진은 데뷔가 될 것 같을 때 엎어지고, 또 될 것 같을 때 다시 엎어졌다고 했다. 데뷔 이후 허윤진은 그 당시를 회고하며 스스로 노크하는 문 뒤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그녀의 자작곡에 담긴 스토리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세대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젠간 이뤄질 거라고 믿고 그 성공을 위해 하루하루 희생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세대' 라고 평가받는 MZ 세대의 리스너에게 새로운 엔딩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4세대 아이돌이 스토리텔링하는 키워드는 모두 다르지만,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아득바득 이겨내서 결국 최고가 되겠다는 르세라핌의 메시지는 본질적이다. 청춘 그 자체가 특권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아득바득 버티는 것이 특권이다. 은하수가 드넓게 펼쳐진 판타지적이고 동화같은 꿈은 이제 없어졌지만, 회색빛의 꿈을 전화위복 해보자는 당찬 메시지가 더 깊게 와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