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느끼는 인간관계
우리 나중에 4층 건물을 짓자.
2층엔 너, 3층엔 나, 4층엔 얘.
1층은 공용공간이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놀기도 하는 거야.
카페 같은 거 같이 해도 재밌겠다!
우리 셋은 매일 붙어 다녔다.
이렇게 붙어 다니느니 같이 사는 게 낫겠다며 진지하게 함께 살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는 어쩌면 실현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다.
그때 우리는 사회에 막 발을 들여,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서로 나눴다.
회사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 분노하고 그러다 곧 별거 아닌 이야기에 꺄르르 배를 잡고 웃었다.
서로의 흑역사와 과거 연애들, 가족들, 말 못 할 고민들.
모든 것을 나누었고 그러면서 또다시 추억을 쌓아갔다.
그러다 어느새 모두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일이 바빠지고, 누군가는 아이를 돌보고, 멀리 이사를 가게 되어 연락이 뜸해졌다.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고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며 또 웃었다.
하지만 대화 사이사이의 짧은 공백은 우리의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서서히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느꼈으리라.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던 사이에서, 이제는 2년에 한두 번도 어려워졌다.
그마저도 요즘은, 가끔 단톡방에서 생일 축하를 하거나 안부 톡을 주고받는 게 전부다.
그들 없이 마흔이 된 나는 시절인연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학찰시절, 회사 초년생 때.
나의 어느 한 시절마다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루 종일 일상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누군가 이직을 하고, 누군가는 결혼하면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럴 때마다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때로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친구가 많다는 게 든든했을 때도 있어 무리하게 이미 지난 관계를 억지로 끌고 간 적도 있었지만,
지나간 관계를 붙잡고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흔이 된 지금은 힘들이지 않는 자연스럽고 잔잔한 관계가 좋다.
지금 사는 동네에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친구가 되었다.
시시콜콜한 아이 고민을 나누고 매일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여기서도 서로 마음을 나누고 같이 울고 깔깔거리지만
나는 가끔,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갈 이 시기의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많은 것들이 달라진 세 명의 친구는 지금은 자주 보지도,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우정은 주로 단톡방 안부로만 남아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수많은 시절인연들을 겪으며 그것이 꼭 슬픈 일은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저 자연스러운 거다.
그 시절의 나를 버티게 해 주고, 그 시절을 함께 기억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아, 보고 싶네. 오랜만에 전화.. 말고 톡이나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