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과서에 담긴 세상

by 해사

매일 연락하던 친구와 사소한 오해가 생겼다.

먼저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7살 막내가 무심히 말한다.


엄마, 친구랑 싸웠을 때는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같이 놀자 하면 돼.

가끔 아이들의 입에서 세상의 가장 단순하고 정확한 해답이 튀어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복잡해진다.

체면도 고려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지나치게 배려하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요즘 그렇게 머리가 복잡할 때 사용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바로 아이들 교과서와 문제집을 읽는 것이다.

처음엔 아이를 알려주느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볼수록, 그래, 맞아. 고개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많아진다.


5학년 국어에는 '마음을 나누며 대화해요.' 단원이 있다.

읽다 보면 너무 당연하지만, 어른들도 종종 잊고 사는 말들이 적혀 있다.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

상대의 입장에 서 보기

상대 기분을 생각하며 말하기

내 말에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살피기

비슷한 경험을 나누기.

조언을 해야 한다면, 공감부터 하고,

상대 말엔 크게 반응하기.


하마터면 기립박수를 칠 뻔했다.

이거 못 지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친구들에게 ‘우린 서로 잘 아니까’라는 핑계로 자주 기본을 잊는다.

나를 반성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우리 남편 생각도 났다.

속상한 일을 말하면 해결책만 제시하는 그에게,

초딩도 배우는 이 공감하는 대화법을 이참에 밑줄을 쫙쫙 그으며 알려줘야지.


4학년 사회도 만만치 않다. 경제활동에서 합리적 선택을 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필요한 물건인지 생각하고,

내가 쓸 수 있는 돈을 확인한 뒤,

인터넷, 마트, 친구 후기 등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선택 기준을 세운 후 평가해 결정하라.

교과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동안 난 얼마나 내 기분에 맞춰 충동구매를 일삼아왔던가.

배운 대로 살았으면, 지금처럼 많은 물건에 치여 살고 있진 않겠지?


5학년, 6학년 사회에는 인권, 정치, 경제가 담겨있다.

과학 교과서를 읽다 보면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

이래서 초등 교육이 꼭 필요하다 하는 거였다.

요즘 사람들은 gpt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초등학생이 들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줘.’

자, 여기 진짜 초등학생을 위해 쉽게 쓰인, 인생의 나침반이 여기 있다.


우린 나이가 많을수록 세상을 더 잘 안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오래 살수록 겁이 많아지고, 세상을 더 복잡하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린 세상 사는 법도, 사람과 잘 지내는 법도 이미 어릴 때 다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살다가 길을 잃으면,

거창한 철학책이나 자기 계발서 말고, 초등학교 교과서를 펼치기로 했다.

복잡할수록, 답은 가장 기본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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