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의 철학

by 해사

아이 친구 엄마들과 종종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꾸밈에 대한 생각은 정말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느낀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피부를 돌봐야 해. 좋은 피부가 사람을 얼마나 생기있게 만들어주는데!”

“나는 잠깐을 나가도 꼭 옷은 갖춰 입는게 좋더라. 그렇게 입어야 내가 자신감이 생겨.”

“나는 다른건 다 괜찮은데 손톱은 꼭 관리 받는게 좋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또 다른 사람은 말한다.

“나는 그렇게 꾸미는게 참 귀찮아. 그냥 썬크림만 바르는게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아.”

나는 또 다르다.

옷도, 손톱도, 유행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 바로 보습이다.

내 몸에 손이 닿을 때, 촉촉한 살결이 만져지면 그 감촉 하나로도 하루 기분이 달라지니 말이다.


20대의 나는 꾸미는 법을 배우고, 따라하느라 바빴다.

꾸밈 노동 이라는 말처럼 예뻐 보이기 위한 숙제처럼, 남의 시선에 맞추려 했다.

남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유행을 좇고 복잡한 화장 순서를 외우며 여러 제품을 챙겼다.

남들에게 예뻐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꾸밈에 대한 생각은 확연히 달라졌다.

이제 꾸밈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더 알게 된다. 바로 자기확신이다.

어쩌면, 40대의 꾸밈은 자기확신에서 생겨난 자기 존중의 방식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가 꾸밈의 기준이 된다.

때로는 꾸밈의 거부 또한 자연스러움을 선택하는 개인의 철학적 선택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오랫동안 안뿌리던 향수를 하나 샀다.

우연히 만난 누군가에게서 느껴진 은은한 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손목에 살짝 뿌리고 나선 그 향기가 온종일 나의 기분이 되었다.

달콤한 향을 뿌리면 하루가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상큼한 향을 뿌리는 날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꾸밈은 여전히 타인의 눈을 의식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누구의 기준으로 꾸미느냐다.

자기확신 위의 꾸밈은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다.


어떤 날은 붉은 입술로, 어떤 날은 민낯 그대로.

또 다른 날은 은은한 향기로.

40대가 된 나는,

이제 모든 날을 나답게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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