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사람

by 해사

어릴 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끝이 없었다.

선생님도 됐다가, 문방구 주인도 됐다가, 약사도 됐다가, 그리고 엄마도 되고 싶었다.

지금은 엄마가 되어, 그 모든 꿈을 동시에 살아내는 중이다.

집에서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아플 때 돌봐주고,

준비물을 척척 챙겨주니 말이다.

이걸 꿈을 이루었다고 해야 하나? 참 복합적인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마흔이 되어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나이 든 부모님을 챙기고, 가정을 돌본다.

이 나이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육아의 시간과,

부모님으로 향하는 새로운 돌봄의 시간이 겹치는 시기이다.

아이는 여전히 손이 많이 가고, 부모님은 점점 더 걱정이 된다.

그리고 나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해야 할 일과 꿈을 놓고 싶지 않기도 하다.

인생은 늘 그 시기마다 감당해야 할 몫을 주는데,

어쩌면 40대의 과업은 돌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돌본다는 건 단순한 챙김이나 도움이 아니다.
세심히 살피고 상대의 속도를 이해하고 책임을 떠안는 일이다.
사실 내 앞가림만 해도 벅찬데 ‘마흔’이라는 이름값을 하려니 정신이 없다.

자연스레 나에 대한 우선순위는 뒤로 밀렸다.


“엄마! 양말은 왜 항상 짝이 없어?”
“우산 두고 왔어, 데리러 와줘.”
“딸, 인터넷 주문 어떻게 하는 거니?”
“문자 왔는데, 이거 뭐라는 거냐?”


매일 쏟아지는 이 귀여운(?) 요구들.
너무 사소해서 돌봄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못 해내면 ‘엄마 실격’, ‘딸 실격’, ‘어른 실격’ 이 되는 기분이랄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부모님은 늙어가고,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아이를 낳고 돌본 지도 어느새 10년.
정신없는 하루하루 속에서, 조금씩 깨닫는다.
‘잘 돌본다’는 건 결국 나를 돌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그래서 잘 해내기 위한 나만의 생존 전략을 만들었다.


내 상태 파악하기 : 지칠 땐 멈추고, 한계 오기 전에 도움 요청하기.

상대 이해하기 : 판단은 잠시 넣어두고, 공감부터 챙기기.

에너지 관리 필수 : 충전 없는 돌봄은 결국 방전이다.

변화에 적응하기 : 아이도, 상황도 늘 변하니, 나도 조금씩 유연해지기.


결국 나를 돌보지 않으면 돌봄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짜 돌봄은 나를 챙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걸 잊으면 결국 그 끝은 고갈뿐임을 뼈저리게 배웠다.


이 글은 지치고 까칠했던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잔소리라고나 할까.
세상의 모든 돌보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잠깐이라도, 나 자신을 돌보자.

나도 오늘만큼은 나를 먼저 챙겨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배달이다.

(빌드업 그럴듯했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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