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없을 때 날씨 얘기가 최고인것 처럼,
엄마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빠지지 않는 시그니처 질문이 있다.
오늘 저녁 뭐 하세요?
하지만 그 누구도 오늘은 이거다! 라며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나마 메뉴가 정해진 집은 이렇게 대답한다.
"감자 있어서 카레나 하려구요."
"단무지 사둔게 남아서 김밥이나 먹으려구요."
그렇지 않은 집들은 한숨과 함께 "그러게요~" 라고 말할 뿐이다.
아, 끼니는 왜 이리 자주 돌아오는가!
어릴 땐 몰랐다.
엄마는 끼니 때 마다 자꾸 뭐 먹고 싶냐고 물어봤다. 심지어 말한 메뉴를 해주지도 않는다.
그건 재료가 없어서 안 돼.
그건 오늘은 좀 그렇다.
그럴거면 왜 물어본거야. 그냥 마음대로 해주지.
회사든 가정이든, 책임이 생기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받는 입장에서는 모르지만 사실 알고보면 각종 고려해야 할 것들 투성이다.
우리집 주방의 책임자가 된 지금 나는, 어릴 때는 알지 못했던 고려 사항들이 자동으로 머리에 떠오른다.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우선 떠올린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건 우선 처리해야 한다.
최근 먹었던 메뉴는 피하고,
각각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선정해야 한다.
너무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은 죄책잠을 불러일으키니, 건강도 생각하지만
너무 건강한 메뉴는 또 외면당하기 십상.
적당한 양과 맛도 기본이며 나의 노동 강도도 고려 대상이다.
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그래서 오늘도 난 냉장고 문을 열고 멍하니 서있다.
오늘 저녁은 뭐 하지?
하루 종일 고민했는데 아직도 정하지 못했네.
아이가 들어오며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소리친다.
엄마! 오늘 저녁 뭐야?
"뭐 먹고 싶어?" 라고 물으니 한 명은 양고기, 한 명은 회덮밥이 먹고 싶단다.
갑자기 양이랑 회가 어디서 튀어나오나.
둘 다 지금 못해. 나중에 해줄게
"맨날 안된대~" 라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뒤로 한채 생각했다.
아, 난 도대체 인생의 몇 퍼센트를 메뉴 고민에 쓰고 있을까.
오늘은 그냥 미역국이 내 한계다.
내일 메뉴는… 내일 생각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