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나를 잃은 기분이야.”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야”,
“다들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기분이야.”
이 말들을 이해한다.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육아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계속 커리어를 이어갔고, 어느새 높은 직위를 갖게 되었다.
나는 티 안나는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 동안,
어느새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저 높은 곳에 올라 있었다.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정말 멈춘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말 앞에서 자꾸 나를 되묻게 된다.
‘나는 지금 멈춰있는 걸까? 나를 잃어가고 있는 걸까?’
셋째 아이를 낳고 일을 놓기 전까지 나는 회사에 다녔다.
성과를 쫓았고, 안될 것 같은 일들을 해내기도 했다.
결국 해내고 나면 성취감을 느꼈고 성장한 건가 싶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진짜 성장이었을까?’
난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노하우는 쌓였고 업무적으로 능숙해졌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 윗사람들의 눈치 속에 나를 재단하며 지냈던 시간들이
오히려 멈추었다 여겨졌다.
내가 성장했다 느끼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읽은 책 속에서.
퇴근 후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고민하는 침대 위에서.
내가 말하는 성장은 사회적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도 아이 셋을 키우며 살며 답답할 때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티 안 나고 보람도 없지만 끝도 없는 집안일, 사회적으로 내 이름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 답답함의 본질은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의 성장 위에 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를 잃었느냐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육아를 하고, 주부로서의 일상을 보내며 나 자신으로 다가갔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나를 관찰했고,
요동치는 감정을 다루기 위해 애썼다.
비슷한 배움과 성향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전 직장과는 다르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는 사회적 위치도, 말투도, 생활 방식도 다른 사람들과 부대꼈다.
그들을 보며, 삶을 사랑하는 법을 알고 유연한 태도를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주부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또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나만의 방식으로 자라고 있다.
성장은 꼭 위로 향하는 게 아니다.
나를 알고, 나를 정돈하고, 내 세계를 넓히는 것.
고로 진짜 성장은 내가 넓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제자리걸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다른 속도로 다른 방향으로 우린 매일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