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아내와 이과 남편

감탄과 분석 사이의 엇박자

by 해사

어릴 적, 할머니는 집 안 곳곳에 시를 붙여 놓으셨다.

누군가의 생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편지 쓰던 우리 가족은 철저한 문과 집안이었다.

나 역시, 문과 성향의 인간으로 평생을 문과 가족들과 문과 친구들과 지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다.

이 남자는 내가 취약한 부분을 척척 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도무지 감도 안 오는 기계를 뚝딱뚝딱 고치고, 길을 잃은 나를 내비게이션처럼 찾아냈다.

하늘을 막연히 ‘예쁘다’ 말하는 나에게 그는 왜 지금 하늘이 예쁜지, 어떤 날씨에 더 예쁜 하늘을 볼 수 있는지 원리를 설명했다.


그의 말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예쁘다’만 하던 내 세상에 설명이 들어오자 하루가 새로워졌다.

함께하면 흘려보내는 하루가 아니라 맞이하는 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이거지!” “박수가 절로 나오는 그 맛" "자려고 누웠을 때 갑자기 생각날 그 맛"

나의 최고의 칭찬은 나의 느낌과 기분에 근거한 이런 추상적 표현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양파에서 오는 건강한 단맛이 음식을 조화롭게 만들어 주네!" 이라던가

"겉은 바삭하고 안에는 육즙이 가득 담겨 있어서 아삭한 야채랑 같이 씹었을 때 식감이 아주 좋다."


표현하려면 감각을 더 집중시켜야 한다. 그 순간을 온전히 느껴야 비로소 언어로 옮길 수 있다.

예쁜 하늘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었고, 맛있는 음식도 단지 운 좋은 한 끼가 아니었다.

디테일은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똑같은 하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의 방식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크게 있었으니,

그땐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었는데 요즘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저런 소리를 하고 있으면 버럭 한다.

아, 그래서 맛이 있냐고 없냐고오!!
자기가 미슐랭이야 모야 왜 평가를 하고 있어. 감탄을 하란 말이야 감탄을!"


그럼 남편은 시무룩하게 말한다.

그게… 맛있다는 뜻이었어


결혼을 하고 시댁에 가보니, 왜를 중심에 둔 대화는 남편만의 특성이 아니었다.

“어머님, 게장이 참 맛있어요."

“산란기에 잡은 게가 알이 가득해서 맛있는 거야. 게에는 또 타우린이 풍부해서 피로회복에도 좋아.”

우리 엄마 같았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네가 온다고 어제부터 준비했지~ 맛있다고 하니 얼마나 좋아. 빨간 고추 송송 올리니까 더 예쁘지 않니?”

친정은 감정과 공감을 기본으로 하고, 시댁은 "왜?"를 생각한다.


문과 아내와 이과 남편

빵순이 아내와 과일파 남편

집순이 아내와 여행자 남편

올빼미 아내와 아침형 남편

감탄하는 아내와 분석하는 남편


식성도 성향도 무엇하나 같지 않는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신기해하며 관찰하듯 바라보며 살아간다.

가끔은 이해할 수 없고, 때로는 서로의 방식을 배우며,

완벽한 박자는 아니지만 엇박자 속 우리만의 리듬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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