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도시락을 먹던 소녀가 '해바라기 유부초밥'을 싸는 이유
소풍을 가는 건 여덟 살 아들인데,
잠을 설치는 건 마흔의 나다.
지각 한 번 해본 적 없는 내가 굳이 알람을 대여섯 개씩
맞춰두는 건, 단순히 늦잠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나의 어떤 지독한 예민함 때문이다.
아이의 유치원 시절부터 1년에 3~4번은
도시락을 쌀 일이 있었다.
아이가 내게 특별히 요구를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늘 특별하고 빛나는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드 도시락 1층에는 해바라기를 닮은 유부초밥과
돌돌 말린 롤샌드위치를 '입주'시켰다.
2층엔 보석 같은 블루베리와 방울토마토를 채웠다.
인스타그램 속 화려한 도시락들을 훔쳐보며 완성한
나의 사랑과 정성이다.
그리고,
"내 새끼~ 소풍 가자~" 하고 아이를 깨운다.
눈을 비비며 식탁으로 다가온 아이는
알록달록한 도시락을 보고
"맛있겠다." 한 마디 하고는 씩 웃어 보인다.
꼭 김밥을 싸달라던 아이에게 날씨가 많이 더워
상할 수도 있으니 김밥은 집에서 먹자 하고
상할 염려 없는 음식으로 싸주겠다 했었는데,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나게 놀고 기분 좋게, 맛있게 먹고 오길 바랄게.'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아이를 등교시킨 뒤,
어질러진 주방을 보며 현타와 피로가 밀려오는 동시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특별한 도시락에 집착하는 것 같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의문인지라
한참을 식탁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멍하니,
또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린 시절 기억의 영향이다.
엄마의 부재 전에는 너무나도 특별하고 자랑스러웠던,
엄마의 부재 이후에는
참으로 초라하고 부끄럽고 외로웠던 그것.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나를 열심히도 뒷바라지했었다.
유치원의 모든 행사를 도우며
내가 '특별히'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게 했고,
때때로 맛있는 간식들을 한가득 해서
내 기를 세워주기도 했다.
그리고 비싸지 않아도 늘 깨끗하고 빳빳한 예쁜 옷을
입혀주었다. 원장선생님이 납치될까 걱정된다며
너무 부잣집 아이처럼 입히지 말라고 말렸을 정도로..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담임 선생님을 위해
여름이면 꽁꽁 얼린 얼음물을,
겨울이면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물을
매일 내 가방에 넣어 보냈다.
(이제 와서 6년 내내 했던 그 심부름 때문에
내 키가 크지 않았다며 엄마는 미안해한다.)
소풍 때마다 환장할 만큼 맛있는 내 도시락과
선생님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선생님과 나는 특별한 관계라는 기분만으로도
학교 생활에 자신감이 넘치던 때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이별한 후.
급식이 없던 중학생 시절,
내게는 도시락을 싸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냉동 돈가스와 다 터진 계란말이, 맛없는 깍두기...
겨울에도 차가워진 밥과 반찬을 먹어야 했고,
난 내 도시락이 부끄러워
늘 손으로 가리며 밥을 먹었다.
보온도시락에 따뜻한 국과 밥, 그리고 가지런하고
정성스레 담긴 밑반찬들이 부러웠다.
아파트에 살면서 브랜드 가방을 메고 늘 빳빳하게
다려진 단정한 교복을 입고 등교를 했던,
키가 무척이나 크고 착했던 그 친구의 도시락이
나는 많이도 부러웠다.
그럼에도 무섭고 무관심한 아빠에게
보온 도시락을 사달라는 말은 끝내 뱉지 못했다.
그런 기억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아닐까
혼자 결론을 내려본다.
우리 부부 둘만의 욕심으로
아이를 이 세상에 강제로 소환시켰으니,
부모로서 아이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소한 기쁨이
큰 행복, 그리고 자존감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을 믿기에,
누군가는 유난이다 할지라도
아이가 돗자리에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어 먹는
그 순간의 행복을 위해 정성을 다한 것이다.
"도시락 맛있게 먹었어?"
"응~ 근데 너무 많아서 남겼어~
해바라기는 안 무너지고 그대로였어~
샌드위치 먹고 유부초밥을 두 개째 먹는데
배가 부른 느낌이 나는 거야~
그래서 그만 먹고 블루베리랑 방토만 먹었어.
그리고 과자는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었어!
엄마 도대체 왜 먹어보지 않은 과자를 넣은 거야?
앞으로는 먹어본 과자로 넣어줘~"
"응, 알았어~ 새로운 걸 넣어본 건데,
엄마가 실수했네~
유부초밥이 하이라이트였는데 남겼다니 아쉽다."
"그래도 맛있었어.
다른 엄마들은 김밥이랑 과일만 싸주는데,
우리 엄마는~ 서프라이즈~!!
뚜껑 여는데 진짜 기분 좋았어.
친구들한테 자랑했어. 엄마 최고! 고마워!"
"그래~ 우리 준영이가 그 순간 많이 기뻤으면
그걸로 됐어.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프라이즈 도시락 싸줄까?"
"당연하지!!"
아이의 반응이 참 귀하고 소중하다.
고작 여덟 살짜리 꼬맹이가 엄마의 정성을 알아차려
감사해하고 그걸 자랑삼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런 마음을 가지는 아이가 우리의 아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그런 아이의 엄마인 내가
더욱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밤잠을 설치는 건 커피 한 잔 마시거나 잠을 보충하면
되는 일. 어질러진 주방을 보고 현타가 오는 것도
재빠른 설거지로 해치우면 그만,
잠깐의 나의 부지런함과 노력으로
두 사람이 행복해지는 마법을 경험하는 거다.
아이는 눈 뜨자마자 집에 올 때까지 행복했을 것이며,
나는 내일, 아니 한 달 내내 아이의 사랑스러운 말을
되뇌며 행복할 것이다.
더불어 내 청소년 시절의 시린 기억이 씻기는 경험도...
엉망이 된 주방을 치우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게 아니라,
손으로 가리고 먹어야 했던 학창시절의 내 도시락 위로
따뜻한 온기를 붓고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