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에 놓인 딸기 다섯 알의 온기

by 유유



그런 날이 있지 않나,

누군가가 갑자기 보고 싶은 날.

그날이 꼭 그런 날이었다.


로또 한 장 사러 가는 길이었다.

일주일의 요행을 기대하며 버스에 올랐는데,

뜬금없이 10년 전 끊긴 친구의 연락처가 떠올랐다.

꼭 연락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너무나 오랜만의 연락이, 내 용기가,

내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너에게 연락할 용기를 내 본다.

10년 동안 내 생각과 추억 속에 살던

네가 갑자기 보고 싶어서..]


사이가 나빠져서가 아닌, 서울과 부산이라는

먼 거리를 두고 서로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낳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던 내 친구.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던

소중한 내 친구 현진이.


메시지를 보내놓고 친구와의 추억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동그란 단발머리에 동그란 뿔테안경을 썼던

현진이는 얼굴도 눈도 입술도 동그란 아이였다.

그리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똑똑했다.

사실 제일 친한 친구였다고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에피소드들이 없다.

살면서 가장 불행했던, 부모님의 이혼을 겪고,

왕따를 당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통째로 잊어버린 탓이다.

현진이와의 학창 시절 기억은 한 가지뿐이다.

동네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자주 만났었다는 것. 무

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었는지,

세세한 것은 단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그저 롯데리아라는 장소만 기억이 날 뿐.

내 뇌는 불행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현진이와의 6년을 통째로 삭제해 버렸다.


삭제된 과거가 서러워 울컥할 때쯤

딸기 다섯 알이 떠올랐다.


2015년 12월, 내가 결혼을 했던 그 해 겨울,

현진이를 만나러 서울에 갔다.

만삭의 몸으로 한가득 장을 봐온 현진이는 부대찌개와

갖가지 반찬을 뚝딱 만들어 저녁을 차렸다.

다음 날 아침, 머리맡에 놓여있던 딸기 다섯 알,

그게 뭐라고 그렇게 따뜻한 추억으로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딸기 다섯 알이

생각나자 또 다른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내 남자친구의 양다리 소식에 나보다

더 분노하던 모습, 간호대에서 배운 지식들을

내 앞에서 마구 뽐내던 모습, 함께 해운대에서

호캉스를 즐겼던 우리, 결혼식에 와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던 현진이의 따스한 눈빛, 나의 임신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던 현진이의 목소리까지..


‘그래, 학창 시절 기억 안 난다고 슬퍼할 일 뭐 있어?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을 살아낼 텐데,

딸기 다섯 알 같은 좋은 추억들 안고 살아가면 되지!’



메시지를 보내고 몇 시간 뒤, 사람들이 퇴근할 무렵의

어느 시간, 현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10년 만의 통화였지만 어제도, 그제도 통화했던

것처럼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의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잘 지냈냐는 안부 인사를 시작으로

우리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연락에, 너무 보고 싶다며 울먹이는

나의 말에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스레

물어오며 연락 못해 오히려 미안하다던 친구.


" 딸기 다섯 알이 너무 따뜻했어."


"응? 뜬금없이? 딸기 다섯 알?"


"왜 내가 너희 집 갔을 때 자고 있는 내 머리맡에

네가 접시에 딸기 다섯 알 이쁘게 놓고 갔거든.

그 기억이 너무 따뜻해서 잊을 수가 없어."


"야, 난 기억도 안 나~ 별 걸 다 기억한다~

또 놀러 와~ 이번엔 딸기 열 알 놓아줄게."


간호사인 현진이는 개구쟁이 초등학생 아들 둘을

키워내느라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고 했다.

앞으로 자주는 아니라도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자고,

서울이든 부산이든 한 번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한참을 휴대폰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10년 만의 통화가 너무 친근하고 다정해서,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서, 그게 너무 신기해서..

좋은 기억들을 불행에게 다 내어주었더라도

친구는 여전히 내 곁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해서..



이제는 안다. 텅 빈 학창 시절을 안쓰러워할 필요

없다는 것을. 불행이 삼켜버린 기억의 빈자리는,

친구가 머리맡에 놓아준 딸기 다섯 알 같은

다정함으로 채우면 그만이다.

다음에 현진이를 만나면 말해줘야지.

네가 준 다섯 알 덕분에 내 10년이 다정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