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지랄맞은 딸

'뭐 대단한 일'하는 딸이 한 번 되어보려고!

by 유유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아프노?>*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엄마한테 투정 부리는 건데

그냥 우쭈쭈 해주지 그랬어.

그동안 아빠한테도 새엄마한테도 못했던 거
하고 싶다는데 좀 받아주지.

나는 엄마 밑에서 열네 살까지 살았으니

내 성향은 엄마랑 잘 맞을 거야.
하지만, 은지는 한창 인격이 형성될 시기에

아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잖아.

아빠를 닮는 게 당연해.
탓을 돌리자면 절반은 엄마의 탓이야.

아빠 성격 잘 알면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자랄지 뻔히 알면서 우리를 두고 갔어?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갔어야지,

엄마는 은지한테 뭐라고 할 자격 없어."


엄마가 미웠다. 그동안 감춰 왔던 원망이 튀어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내 말에 엄마는 가슴이 아팠을까?

내 진짜 마음은 엄마가 아팠으면 했던 걸까?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내 마음보다 스무 배는 순화해서 말을 했는데.

소리 지르며 속마음을 다 말했다면

원망이 해소됐을까? 복잡하고 어렵다.


그 뒤로 '엄마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말을 못되게 하는 사람'이라는 베이스를 깔고

엄마를 대했다. 어떤 조언을 하든, 어떤 잔소리를

하든 들은 체하지 않았다.

매일 하던 전화 통화는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이 되었고,

점점 내가 먼저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먼저 걸려오던 엄마의 전화도 뜸해졌다.


그러던 중 한 달 만에 큰맘 먹고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나를 밥값도 못 하는 사람 취급을 한 것이다.

(엄마가 그 단어를 내뱉지는 않았지만...)



기분 나쁘고 불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멍하니 휴대폰으로 SNS 구경을 하다가

짧은 영상 하나를 보았다.

가수 이효리가 엄마와 함께 여행하는 프로그램.

30년 만에 엄마의 오징어뭇국을 먹고는

맛이 똑같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아마 옛날 기억과 변하지 않은 엄마의 손맛에 대한

감동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섞인 눈물이었을 거다.

'우리 엄마는 옛날 맛 하나도 안 나던데.'

20년 만에 엄마의 케첩떡볶이를 먹고 실망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화장대 서랍에 고이 간직한

따뜻하고 포근했던 그날의 기억을 꺼내보았다.




2019년 3월, 아이와 둘이서 기차를 타고

인천에 있는 엄마 집에 갔다. 하루 이틀이 지난날,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식탁에 쪽지가 있었다.

엄마 글씨체.


[엄마 딸, 곤히 자고 있네.

엄마는 치과 갔다가 일 마치고 올게.

필요한 것 있음 전화 주세요. 사랑해요.]


마음 깊은 곳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코끝이 찡해지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딱지 모양으로 접힌 쪽지를 열어

한참을 읽고 또 읽었다.


'진짜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 마음 다른 거 맞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고? 당장 엄마를 만나야겠어.'




밤 10시 반,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내일 만날래?>

[그래, 둘이 놀자.]

<응, 만나서 수다 좀 떨자.>



오전 10시. 서면의 한 카페. 올해 초부터 엄마는

부산에서 살고 있다.

언제든 약속하고 30분 만에 만날 수 있다.


"생산적인 일을 하라는 건 결코 돈을 말한 게 아니야.

나이도 젊은데 남편이랑 애한테만 집중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랬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까 봐.

우리 딸이 꿈을 꾸고 있고, 뭐든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줄은 엄마는 몰랐지.

글 써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그랬어.

엄마가 알았으면 그런 말 안 했지."


"아직 너무너무 미숙하니까

부끄러워 말 못 하겠더라고."


"그런 게 어디 있어! 엄마는 응원해!

행여 도전하다가 내 길이 아니다 하고 그만둬도

응원할 거야. 잘했어. 잘하고 있어.

엄마가 못 이룬 꿈 딸이 이루어 봐."


"엄마 꿈?"


"엄마 문학소녀였어. 책 좋아하고,

시 쓰는 거 좋아하고,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도 늦지 않았어!"


옅은 미소만 짓는 엄마.


"우리 딸이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해봐.

엄마가 도울 일 있으면 뭐든 도와줄게.

글 쓰면 엄마도 좀 보여주고."


"보면 마음 아플 텐데?"


"아파도 감동 있게 잘 써봐."


그 자리에서 두 편의, 아직 너무나도 초보적인

나의 글을 엄마에게 선보였고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차가운 도시락을 먹었다는 나에게 미안해서,

동생과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내가 기특해서.

그리고 엄마만의 어떤 감정들로 인해.


긴 시간 동안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홀로서기 역사. 열일곱 번쯤은 들었을 이야기.

이제는 귀를 활짝 열고 듣는다.

어릴 적 부업을 쉬지 않으며 악바리처럼 살았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언젠가 만나게 될 딸들을 위해 재혼은 꿈도 꾸지 않고

남편과 딸 둘이 있는 여자로 살고 있었던 엄마.

혼자서 기를 쓰고 열심히 살았을, 덩치도 작은 여자가

혹여나 무시당할까 큰 소리 내며

더 강한 척하며 살아야만 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엄마와 다시 재회했을 때 아빠보다 더 최선을

다해 살아온 엄마에게 감사했고,

엄마를 존경했다. 내 생일을 기억해 주고,

사위의 생일을 챙겨주며 딸의 기를 살려주는

엄마의 존재가 든든했다.

언제든 목소리 들을 수 있고,

마음먹으면 만날 수 있는 엄마.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불과 몇 년 만에 당연시하게 되다니.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이렇게까지 철이 없을 수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부끄러웠다.


엄마의 말을 이해해 보기로 한다.

20년 넘게 홀로 강하게만 살아야 했기에

표현 방법이 다소 거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둘째 안부를 넌지시 묻는 엄마는

작은 딸의 손을 놓은 것이 아니다.

팽팽한 줄을 계속 잡아당기면 끊어질 것을 알고

스스로 줄을 잡고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급한 성격 탓에 아이를 더 다그치다가 영영 멀어질까

잠시 줄을 느슨하게 잡고 있는 것이다.

그걸 표현함에 있어 서툴렀던 것뿐이라고.

힘들었던 지난 이야기들을 계속하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담고만 있었던 말들을

딸을 만난 이제는 얼른 털어내 버리고 싶어서라고.

사실 그럼에도 100퍼센트 이해를 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해해 보기로 한다.

엄마와 동생이 쥐고 있는 팽팽한 줄을

탄력 좋은 고무줄로 몰래 바꿔놓기로 한다.

늘어났다 줄었다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나는 완벽한 딸이 되기로 했다. 완벽하게 지랄 맞은 딸.

싫으면 싫다 표현하고 돌을 던지면 왜 던지냐

꽥 소리 지르며 따지는 그런 딸.

그러고도 마음이 풀리지 않을 때면 화장대 서랍 속에

쪽지를 꺼내보며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을 되찾아야지.



'생산적인 일'을 해서

언젠가는 '뭐 대단한 일 하는' 딸이 되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