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집에서 노는 줄 아시나 보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아프노?"
스피커폰으로 흘러나오는 엄마의 말에
점심에 먹은 샌드위치가 턱 얹힌다.
탑 오브 탑 집순이였던 나.
책 읽기, 글쓰기, 우쿨렐레 배우기 등을 하며
갑자기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그래봤자 정말 바쁜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내 나름대로 버거웠나 보다.
그래서 최근 한 달간 체증이 가시질 않은 상태로
몸이 아팠다 말하는 내게 엄마는.
"참 큰 일 하십니다. 돈도 안 벌면서.
생산적인 일을 해라."
'생산적인 일이 뭐야? 당장 돈 버는 일?'
이라 묻고 싶지만, 여기서 반박을 해봤자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적당한 핑계를 대고 통화를 끝낸다.
한 달 만에 연락을 한 딸에게 하는 말이
나는 또 듣기가 싫다.
"칭찬과 응원은 유유를 춤추게 하지요~
하루라도 빨리 진짜 친엄마를 찾으러 가야겠어요."
음정을 붙인 우스갯소리를 하며 소화제를 꿀꺽 삼킨다.
"오늘 재미있었나?"
"응."
"음.. 엄마를 보내줘야 할 것 같다.
유유랑 은지는 아빠랑 살자.
엄마 훨훨 날아가게 보내주자."
초등학교 졸업을 얼마 앞둔 저녁이었다.
사직운동장에서 아빠와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들어온 후 아빠가 나를 따로 불러서 한 말이다.
'무슨 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뒤로 몇 마디가 더 오고 갔을까?
마지막 아빠의 말만이 기억에 남는다.
"아빠랑 살면 절대 울지 않게 할게. 엄마 보내주자.
아빠는 친구 집에서 자고 올 테니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해라."
아빠가 나간 뒤, 엉엉 울며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학이라 우리 집에 놀러 와 있던 외사촌 언니와 오빠,
그리고 엄마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애한테 왜 벌써 말을 하냐며 언성을 높인다.
다음 날, 엄마와 여동생은 집에 두고
언니와 오빠를 따라 둘째 외삼촌 집으로 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지난밤 아빠의 말들이
별 일 아닌 것처럼 잊힐 때쯤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가 집을 떠난다고.
아빠랑 동생이랑 잘 지내고 있으라고.
살쪄도 되니까 잘 먹고 건강히 지내라고.
교복은 누구누구 의상실에 부탁해 놓았으니
언제 찾으러 가면 된다는 말들.
식상하게 나중에 돈 많이 벌어 데리러 갈 거라는
말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1998년 늦은 겨울, 나는 엄마와 하루아침에 이별했다.
당시 부모님의 이혼 사유가 무엇이었는지,
진실이 무엇인지 대충 예상은 되지만
그건 엄마, 아빠 두 사람의 문제일 뿐.
내가 굳이 마주할 필요는 없겠다.
엄마는 우리를 한 번도 찾으러 오지 않았고,
시간은 흘러 2018년이 되었다.
사실 2006년 스물두 살의 나는
잠시 동안 엄마를 만났었다.
외사촌 언니의 싸이월드에 들어가
엄마의 소식을 물으며 내 연락처를 남겼고,
엄마는 바로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왔다.
8년 만에 만난 엄마의 모습은 내 기대와 너무나 달랐다.
나의 안부와 나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미안함은 뒤로 한 채,
전남편과 시가 식구들을 욕하기에 바빴다.
8년 만에 만났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엄마 모습에 내 눈물도 쏙 들어가 버렸다.
반갑지만 놀랍고 황당하며 찝찝한 기분.
그렇게 아빠를 속이고 엄마를 몇 번 만났다.
그리고 다가 온 여름 방학. 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며칠 동안 인천으로 놀러 오라고 재촉하는 엄마에게
화가 나서 아예 연락을 끊어버렸다.
무서운 아빠에게 죄스러운 마음도 한몫했을 테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1년이 지난 2018년,
또다시 찾은 엄마.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엄마에 대한 기억이 미화가 되었던 걸까?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그저 날 낳아준 엄마라는 사람이 그리웠던 걸까?
내 남편은 매일같이 엄마를 찾는 나를 데리고
엄마를 찾아 차를 몰았다.
다행히 둘째 외삼촌은 예전 그 집에 여전히 살고
계셨고, 가족들 모두 우리를 반겨주셨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엄마는
세월의 흔적이 있을 뿐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굵은 웨이브 넣은 긴 염색 머리를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엄마.
나 어릴 적부터 해오던 스타일 그대로.
아빠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들도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무조건적인 내 편이 생겼다는 생각에
참 힘이 되고 든든했다.
그렇게 간절하게 찾았던 엄마인데.
남편 말처럼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처럼 내 마음이 변덕을 부리는 건가 싶기도
하다.
다시 시작된 아빠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들,
과거의 힘든 일에 대한 이야기들.
딸인 내가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온 데 간데없고 같은 이야기가 열댓 번쯤 반복되자
짜증이 밀려오던 어느 날,
내 마음에 커다란 돌을 던진 말이 있었다.
"어쩜 그리 지 아빠랑 똑같노.
몰라, 이제 신경 안 쓰고 싶다.
내 몸도 아픈데 생각하면 스트레스받는다.
전화도 먼저 안 할 거고 먼저 나한테 오면 오는 거고,
안 와도 그만이고. 알아서 잘 살라 해라."
엄마의 둘째 딸, 그러니까 나보다 일곱 살 어린
내 여동생에 대한 말이다.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딸을 바르게 가르쳐보려
잔소리를 했던 엄마.
엄마와 여섯 살 때 헤어진 동생은
언니로 인해 갑자기 나타난 친엄마의 존재에 대해
적응이 필요했을 테다.
엄마의 잔소리 폭격이 먹힐 리 없는 게 당연.
생각만큼 잘 따라오지 않는 둘째 딸에 실망한 엄마는
동생을 놔버렸다.
직장 일이 힘들다며 그만두고 싶다 투정 부리는
동생의 말에 엄마를 돈으로 안다며,
직장 그만두고 용돈이나 받자는 심산이라던 엄마.
동생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한 마디에, 나는 결국...
([3-2]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