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짝이 신발을 신고 뛰어간 그날

잃어버린 20년, 다시 만난 나의 뮤즈

by 유유


5월답지 않게 햇살이 따가운 어느 날의 오전.

은은한 핸드드립 커피의 향이 퍼지고, 따가운 햇살이

창을 넘어 따스함으로 전해지는 작은 카페.


"나 요즘 글을 조금씩 써 보고 있는데,

너에 대해 써볼까 해."


" 오~ 글?"


"거창한 건 아니고, 글쓰기 수업을 수강 중인데,

이번 주제가 어린 시절이야. 근데 아무리 떠올리려 해

봐도 좋은 기억이 별로 없더라?

음.. 그중에 정말 또렷하고 행복한 기억이

네가 태어난 날이더라고. 그래서 그날을 그리면서

너랑 나의 관계에 대해서도 써보려고."


"우와~ 내가 언니 글의 주인공이네? 나 언니 뮤즈야?"



1992년 12월 23일.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종업식.

엄마의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고,

차분하지만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유야, 엄마 동생 낳으려 다녀올게.

명희 고모 올 거니까 밥 먹고 종업식 잘하고 와."


예정일이 며칠 남았지만 양수가 터져버려

급하게 병원으로 가야 했던 것.

소심한 데다 엄마 껌딱지였던 나는

고모와 단 둘이 있는 공간이 너무 어색했고,

고모가 차려준 밥을 급하게 입으로 밀어 넣은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짝이 맞지 않은 신발을 신고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가족 구성원 수를 조사하는 시간이었고,

4인, 5인, 심지어 7인 가족도 있었는데,

나 혼자만 3인 가족이었다. 그날, 나는 엄마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동생을 낳아달라고 했다.


"종업식 내내 신발이 짝짝이인 게 엄청 거슬렸어.

그런데 동생이 집에 온다는 사실이 더 설레는 거야.

달리기도 정말 못하는 내가 학교 끝나자마자

얼마나 뛰었는데. 그렇게 헐레벌떡 집에 왔는데

네가 벌써 와있더라?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된 아기가 어쩜 그렇게 뽀얗지?

너무 뽀야면 빛이 나는 거 알아? 내 기억 속엔 그래.
속싸개를 살짝 열어서 발을 만졌는데

아주 투명하고 맑고 부드러웠어.

동그랗던 엄마 배가 푹 꺼진 것도 신기하고,

그 배에서 네가 나와서 누워있는 것도 신기하고..

많이 행복했던 것 같아."


"어릴 때 사진 보면

언니가 나 업고 있는 사진도 많더라?"


"그랬지. 나이 차이가 일곱 살이나 나서 그런가,

업고, 안고, 돌보고, 그게 난 좋았어.

한 번은 엄마가 시장 가느라 너랑 둘만 있었는데

네가 보행기에 앉아 있다가 쉬를 한 거야.

기저귀를 안 차고 있었는지 바닥에 오줌이 흥건했는데

그게 싫지 않았던 기억이 나."


"진짜? 초등학생 때부터 육아만렙이었네."


"나 열 살 때는 네가 내 머리 자른 거 모르지?"


"나 들어서 알아. 언니가 앉아 있는데

내가 뒤에서 가위 들고 싹둑 잘랐다고."


"어, 맞아. 머리 뒤에서 그야말로 싹. 뚝. 소리가 나서

돌아봤을 때 니 표정이 엄청 짓궂었어. 해맑고.

잘린 머리가 얼마나 짧아졌는지,

하늘로 계속 뻗쳐서 한 동안 애먹었다~"


"나 엄청 별났다고 하더라."



그랬다. 여자 아이지만 장난감 총만 가지고 놀았던,

유별났던 골목대장. 내 여동생 은지.

조용하고 차분하던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이었지만,

은지가 어떤 사고를 쳐도 웃을 수 있었고,

그저 귀엽게만 보았던 것 같다.

어디를 가든 은지를 꼭 챙겨 함께 다녔고,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우리는 잘 지냈었다.

그랬던 우리인데..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서서히 사이가 멀어졌다.

우리 둘 사이에 어떠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툰 것도 아니었다.

사춘기가 시작된 나와 겨우 일곱 살이었던 은지는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이혼을 감당해야 했고,

엄마와 강제로 이별하게 된 나는 무기력해졌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엄마로 인해 모든 자존감이 채워지던 그런 아이였다.

엄마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학교 생활도,

친구 관계도 엉망이 되었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어린 동생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남보다 못한 사이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겨우겨우 관계만 이어오던 우리.



약 3~4년 전부터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회복되는

중이다. 당시 나도 힘들었지만, 그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너무나도 불안정한 나날을

홀로 버텨내야 했을 내 동생.

나는 못해준 것들만 기억이 나는데,

사이가 멀어졌던 중에도 언니의 좋았던 모습만을

간직한 내 동생. 내가 다 놓쳐버린 시절의 일들을

소중히 기억 속에 담아 온 채

나의 기억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내 동생.


"우리 서로에게 하나밖에 없는 존재잖아.

흘려버린 시간들은 너무 아쉽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도 못해 준 기억들은 이제 더 이상 자책 안 하고

잊으려고. 지금처럼 같이 대화 많이 하면서

더 좋은 기억들 많이 만들자."


은지의 쌍꺼풀 없는 커다란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언니, 나 사실 요즘 스트레스도 많고 힘들었는데,

진짜 힘이 되고 위로가 돼. 언니 글 다 쓰면

꼭 보여줘. 힘들 때마다 언니 글 보면서 힘낼 거야.

고마워."



서로 가까웠던 시간보다 남보다 못한 사이였던 시간이

더 길었던 우리지만, 서로로 인해 행복하고 기뻤던

기억들을 자양분 삼아 자매의 애정 씨앗을

튼튼하게 잘 키워보자 손가락 걸어 약속했다.



여덟 살의 그 겨울을, 은지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을,

나는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