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엄마, 주말에 뭐 해?"
"김천이모가 주말에 부산 놀러 온다네.
외삼촌 집에 갔다가 하룻밤 자고 여수 가려고. 올래?"
"아니, 못 가. 약속 있어."
토요일,
"엄마, 이모 오셨어?"
"아니, 1시쯤에 도착한대.
이모가 너 오는 줄 알고 있길래 약속이 있어서 취소를
할 수 없어서 못 온다고 했어. 이모 서운할까 봐."
여기서 김천이모는 내 친엄마의 20년 지기 절친이다.
하지만, 20년 동안 생이별했던 엄마와 내가
재회한 지는 5년밖에 되지 않았고,
김천이모를 실제로 만난 건 단 한 번뿐.
"아니, 엄마는 왜 말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거지?
내가 당연히 가야 해? 조금 어이가 없네?
선약 있어서 못 가는 내가 미안해야 하는 상황인 거야?"
남편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래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 안 가. 못 가. 신경 안 써."
"여보 진짜 많이 변했다.
예전 같았으면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에는 마음 불편하게 갔을 텐데."
"그러게. 진짜 많이 변했네, 나."
20대 중후반의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기 바빴다.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과부하가 찾아왔다.
나의 저 깊은 밑바닥의 모습은 나만 아는 것인데,
그것을 들키게 될까 늘 불안해하며 조금이라도
바닥을 보이게 되면 동굴 속으로 숨어버렸다.
나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을
스스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가면을 쓰고 잘하는 척,
뛰어난 척을 하며 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내 그릇에 맞지 않는 일들이
주어지기도 했고, 처음에는 열의에 넘쳐 잘하다가
얼마 못 가 밑천이 드러나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하던 일에서 손을 떼고 또 숨어버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혹여라도 사람들 앞에서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말을 아끼게 되고, 어쩌다 내뱉게 되는 몇 안 되는
말들도 잠자리에 누워 수도 없이 되뇌고,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들과 말투, 시선 등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밤잠을 설쳤다.
스스로를 괴롭히며 참 피곤하게도 살았던 시간들.
그러니 불면증에 시달리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직장도 제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곁에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금의 남편이 묵묵히 버텨주고 있었고,
그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리고
나이를 한 살씩 먹으면서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바로 남편을 닮아간다는 말.
웃긴 표정이나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거나,
나름대로 센스 있는 농담을 할 때,
주변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소신대로 일을 진행할 때,
남편은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잘하고 있어, 점점 호야화 되어가고 있네."
부모님보다 더 나의 본모습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이기에
엄지 척을 하며 해주는 칭찬의 말이
그 어떤 말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다.
스승님에게 인정받는 제자의 기분이랄까?
'아싸! 한 단계 업그레이드!'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등교시킨 후,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지내는
완벽한 집순이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중이다.
최선을 다해 아이와 집안 살림을 돌보고, 책을 읽으며,
부족하지만 이렇게 나의 글도 써본다.
때때로 잊지 않고 엄마들과 교류를 하며,
인스타그램이라는 SNS활동에도 도전 중이다.
몇 년 전,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발이 저려오고,
급기야는 과호흡이 온 것이다.
부정맥 의심 소견이 있었고,
다행히 48시간 심전도 검사 결과 이상 없음이었다.
시간이 흘러 알게 된 병명은 불안장애.
공황발작이었던 것이다.
응급실에 가서 누워있는 두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발전 없이 하루하루를 축내며,
육아와 살림을 한다는 핑계로 그저 지내는 듯한
내 일상이 조금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나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내 몸을 돌보고,
미래를 위해 매 순간을 알차게 보낼 방법을 찾아보자.'
그렇게 열흘 정도 몸을 추스르고
달라진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굳이 누군가를 만나려 하지 않았고,
무엇을 배우고 도전하려 하지도 않았다.
혼자가 외롭지 않았고, 누군가를 만나면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 그만큼의 시간을 혼자 보내며
충전을 해야 하기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집안일을 하고,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좋았다. 변화나 발전 없는 그 시간들이
안정적인 시간들이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완벽한 착각과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들과 어울릴 수 없어.
난 고고해.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아.'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 저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일까?
사실, 너무나도 정적인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체력적으로 예전보다 지치는 것이 사실이다.
나의 변화된 생활에 아직은 안정기가 찾아오지
않았기에 머릿속이 아주 많이 복잡해
과부하에 걸리기 직전인 것도 비밀 아닌 비밀.
그럼에도 일상에 활력이 생기는 요즘이다.
스몰토크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지금도 나의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주로 듣는 입장이지만,
엄마들과 교류하며 아이의 학교생활에 도움을 받기도
하고, 아이 또한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며 또래사회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의 작은 변화 하나로 또 다른 긍정적인 변화가
따라오니 활력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기한 건 내가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괴롭히지도 않는다는 것.
갑자기 왜?
운동하고 새로운 도전들을 하며 자신감이 생겨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고 인정하며
좋은 모습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서인가?
혼자만의 시간에 갇혀 있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변화된 걸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좋은 신호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이 신호를 놓치지 않고
몇 단계의 업그레이드를 하게 될지 사뭇 기대가 된다.
더불어 나의 변화가 내 가족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으로 다가가길 바라며,
자랑스러운 나를 응원한다.
몹시도 애먹었던 이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