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곁에서 나는 매일 자란다
오전 7시. 오늘의 아침식사 메뉴는
달걀을 푼 우유에 밤새 재워둔 두꺼운 식빵을
버터에 노릇노릇 구워 메이플시럽을 뿌린
폭신하고 부드러운 프렌치토스트,
그리고 예쁜 코랄색의 건강스무디.
고소한 버터 냄새를 맡으며 잠에서 깬 남편이
가스레인지 앞에 선 나를 뒤에서 포근히 안아주며
말한다.
"잘 잤어? 오늘 우리 결혼 10주년 축하해~
이따 저녁에 맛있는 것 먹자~"
"나도."
나도 참, 무드 없지. 고작 한다는 말이 '나도'라니..
내 뇌는 왜 이럴 때 10%의 인지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 대신 사랑과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은 토스트와 주스를 도시락 가방에 넣어
남편을 배웅한다. 아침잠이 부족한 탓에
잠을 조금 더 자고 차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
"포크랑 물티슈도 넣었어. 맛있게 먹어.
운전 조심하고 이따 봐."
현관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안방으로 들어가
곤히 잠든 아이를 깨워 남편 것보다 아주 조금 더
정성을 담아 만든 토스트를 먹여 학교에 보낸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나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남편과 아이에게 해주었던 것과 같은 아침 메뉴지만
나를 위해 조금 더 예쁘고 정갈하게 플레이팅을 한 뒤
TV도 핸드폰도 멀리 둔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꼭꼭 씹으며 식사를 한다.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식사를.
참 기분 좋은 아침이다. 벌써 결혼 10주년이라니.
우리가 2009년부터 연애를 시작했으니, 연애까지
합하면 우리가 사랑한 지는 16년 차가 되는 거다.
이 정도면 권태로울 법도 한데, 해가 지날수록
더 좋아지고 애틋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며칠 전, 남편의 본가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중에 내가 말했다.
"엄마(시엄마를 엄마라고 부른다),
나는 아직도 준영 아빠가 그렇게 좋다?
우리 16년이나 됐는데도 왜 그럴까?"
"그래? 아이고, 우리 새끼들이 이렇게 이쁘게 사는 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내 아들이지만 호야가 참 한결같지?"
"맞아~ 연애 때랑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어.
진짜 똑같아. 너무 신기해.
세상에 이런 남자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시엄마의 말씀처럼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남편은.
참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는 사람.
때때로 허세가 있지만, 그 허세가 허무맹랑함이
아니었음을 결과로 반드시 보여주는 사람.
밖에서 힘들었던 일을, 피곤하고 지침을 스스로
표현하지 않지만, 내가 알아봐 주었을 때 더 큰
고마움으로 화답하는 사람.
무엇보다 16년 동안 늘 한결같은 눈빛과 말투를
장착하고서 나라는 사람을
꾸준히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
나보다 어린 녀석이(?) 어쩜 이렇게 속이 깊은지.
연하남의 패기와 어른의 단단함을 동시에 갖춘
이 남자를, 나는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 한결같음의 보답으로 그가 얻은 건,
나처럼 꽤 괜찮은 아내다.
(비록 인지능력 10%라 답답할 때가 종종 있을 테지만)
집안일과 육아, 그리고 이제는 글쓰기까지 치열하게
해내고야 마는 그런 아내 말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재우고 맥주 한 캔과 함께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깊은 이야기부터 시답잖은 농담까지,
몇 시간이고 웃고 울며 나누는 대화의 시간들을
가장 좋아하는 우리.
그중에 늘 빠지지 않는 대화 내용이 있다.
"당신이 육아도 집안일도 너무 잘해주니까
내가 바깥일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워. 우리 집에서 당신이 제일 힘든 거 내가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남편 기 살려주고
준영이도 바르고 이쁘게 잘 키워주고..
이런 와이프가 어디 있어!"
이렇게 말을 멋지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사람에게 잔소리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아니야, 여보가 나 배려해 주고 가족 위해서
희생하니까 내가 육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거지.
당연한 걸 하는 거야.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남편이 돈 벌어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오히려 왜 이렇게 쥐꼬리만큼 버느냐고 구박하고.
당신 같은 사람 잘 없어."
"남편이 자기 한 몸 희생해서 가족 건사하는데
직장도 다니기 싫은데 집안일도 하기 싫다,
근데 너는 돈 많이 벌어야 한다? 그건 썅년이지."
내 주변에는 그런 썅년들이 없다고 믿기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말.
썅년은 되지 말자고.
사실 우리는 기념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둘 다 그런 쪽으로는 성향이 맞아서
기념일 문제로 다툴 일도 없고,
심지어 우리 두 사람 모두 결혼기념일을 까맣게 잊고
지나간 적도 여러 번. 함께하는 일상의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행복과 의미, 그리고 특별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티 나게 다를 것 없이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 한 그릇 맛있게 먹고 아이의 축하를 받으며
작은 케이크에 촛불 켜 다 같이 '후~'하고 끄고
손뼉 치고, 또 아쉬우면 아이 재우고 맥주 한 캔 하며
수다 떨다 잠들 것이다. 그걸로 특별한 오늘이 되는 것.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보다 더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60년의 시간도
쏜살처럼 흘러버리겠지?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서로를 충실히 사랑하고,
함께 하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아쉬움 없이 살아갈 것을 믿는다.
오늘처럼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10주년, 30주년,
60주년이 되길 기대하며..
이 글이 결혼 10주년을 맞은 그에게
작은 선물이 되길 바란다.
(여전히 사인은 안 해줄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