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각자의 상식의 섬이 따로 있다
"그 사람은 가지고 있는 상식이 너와 다를 수 있어."
이 말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틀렸고 내가 맞다고만 생각했지,
가진 상식, 그러니까 사고체계가 달라서 그런 일이
생겼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이다.
2025년 어느 날,
생일 선물로 내게 화장품을 선물한 친구.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아 들었고,
내용물을 보고는 이내 의아함이 몰려왔다.
겉포장에는 분명히 '2개입'이라고 적혀있는데
박스 안에는 화장품 하나만 덜렁 들어있었다.
심지어 박스 스티커를 칼로 도려낸 자국까지 선명했다.
'뭐지? 무시하는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학부모 관계로 만났지만, 결이 닮은 우리는
짧은 시간에 무섭도록 친해졌기에
배신감까지 들 정도였다.
서운함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친구에게
차가운 태도를 보였었나 보다.
"요즘 예전 같지가 않네. 무슨 일 있어?"
기회는 이 때다 싶었다.
'그래, 좋은 사람이잖아.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니고,
속마음 시원하게 말하고 풀어버리자.'
그런데, 돌아온 그녀의 말,
"내가 하나 써보니까 향이 너무 강하더라고
사용 방법까지 알려줬잖아?
그 말로 이미 열어봤다고 너한테 말한 건데?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하면 새 걸로 사주려고
배려한 건데. 그러면 그때 말을 하지 그랬어"
나는 왜 그 말에 또 체했을까.
'아니, 배려라고?
<상식적으로> 선물을 그렇게 주는 게 말이 돼?
무슨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하지?'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나를 휘감았고,
찝찝함을 뒤로한 채 대화는 끝이 났다.
명치끝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내 상식의 사전에서 '선물'은 '완전한 것'이어야 했고,
'정성'은 '새것'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손절을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무례함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또 끙끙 앓다
인생의 멘토인 친한 언니에게 상담을 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돼요?"
라고 묻는 내게 건넨 그녀의 한 마디.
"그 사람은 가지고 있는 상식이 너랑은 다르겠지.
사고체계가 다른 사람인 거야."
앞서 말했듯,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친구는 정말 진심으로
'내가 써보니 너무 좋아서 하나는 너 주고 싶었어'라는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 상식의 잣대로 '선물은 새것이어야 한다'라는
프레임을 씌워 상대를 판단했던 건 아닐까?
답답했던 속이 조금씩 뻥 뚫리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
서로 다른 생각과 언어를 사용했을 뿐이라는 생각에,
결국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의 상식이라는 공간이 따로 있다는
생각에. 그걸 인정하고 나니 친구의 어처구니없었던
변명이 비로소 배려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멘토 언니가 말했다.
"관계 속에서 해결 안 되는 것들이 매번 있는데
유유 너는 매번 그걸 명쾌하게 받아들여.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나라는 사람은 사람 보는 눈이 더럽게도 없는 줄
알았다. 어떻게 만나는 사람마다 나랑 그렇게 다른지...
내가 오만했다. 내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고고하게
굴었다. 각자가 가진 생각의 섬이 다른 모양이라는 것을
인정한 지금, 예전보다 더 편한 마음으로 친구를
대할 수 있다. 물론 친구는 무척 조심스러워한다.
내게 전하는 자신의 배려를 내가 독으로 받을까
몹시 두려워한다.
그 조심스러운 마음을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노릇.
예전처럼 아주 가까운 사이로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 둘 다 각자의 섬에서
나와서 이 다름을 웃으며 말할 날을 기다릴 뿐이다.
타인의 상식을 인정할 여유가 생긴 지금,
나의 세상은 어제보다 조금 더 넓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