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면...
<부부사이에 운전은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라는 룰을 깬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 부부 이야기다.
2014년 서른 살의 봄날,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한 번의 실격 이후에 맞이한 합격의 기쁨.
학원비 한 푼 들이지 않고 받아 든 운전면허증.
그 뒤에는 숨은 공신이 한 명 있었다.
기능시험부터 도로주행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가르쳐준 남편.
내가 시험을 치른 곳은 부산 남부운전면허시험장.
남편은 먼저 도로주행 코스를 모두 외운 뒤
나를 운전석에 앉혔다.
우리의 싸움 없는 운전연수는 그렇게 시작됐다.
남편은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나를 가르쳤다.
내가 잘해서? 절대.
남편이 순한 사람이라서? 그럴 리가.
남편은 알고 있었다. 다그치고 화내면 더 주눅 들어
오히려 사고 낼 위험이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나라는 사람은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줘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전에 아빠에게 운전을 배운 적이 있었다.
아빠는 왕초보인 내가
(깜빡이 켜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데)
사이드미러를 안 본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셨다.
브레이크와 액셀을 부드럽게 밟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무안을 주셨다. 하루하고 그만둬버렸다.
나름의 트라우마가 있는 나에게 남편선생님은
그야말로 천사였다.
대학원 졸업 후 취업 준비로 한창 바빴던 시기에
기꺼이 보름의 시간을 내게 할애한 남편.
내 성향을 잘 파악했기에
'합격을 위해서라면 전략적으로 내 감정을 컨트롤한다.'
라는 마인드로 조수석에 앉아있지 않았을까.
끼어들기를 잘 못한 것 빼고 도로주행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문제는 주차!
운동신경도 제로, 공간감각능력도 제로인 나는
주차가 정말이지 어려웠다.
남편은 주차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을 여러 군데
섭외해 다양한 방법으로 연습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공대생답게 주차공식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주차공식 따위 아무리 설명해도
나라는 인간은 알아듣지 못했고,
남편은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며 최대한 쉬운
방법을 찾아 내 주차실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그 과정에서도 무시나 질책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을지 모르겠으나
얼굴을 웃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치러진 첫 시험. 결과는 보기 좋게 실격!
작은 횡단보도에서 갑자기 길을 건너던 남성분을
캐치하지 못해 급정거를 해버린 것이다.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 채
허탈하게 웃는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푸하하하! 실격이 뭐야, 실격이!"
우리는 그날 저녁,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며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내 실격에피소드를 안주 삼아.
두 번째 시험.
주행코스가 끝이 보일 때쯤 감독관이 말했다.
"면허취소자세요?"
"아니요, 실격자예요."
"운전을 너무 잘하시는데?"
"남자친구한테 배웠는데, 가르쳐준 선생님이
좋아서 그런가 봐요."
자신 있게 시험장을 빠져나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나를 남편은 힘껏 안아 올렸다.
"축하해! 잘했어!"
"감독관이 면허취소자냐고 하더라? 운전 너무
잘한다고. 남자친구한테 배웠다고 말하니까
엄청 놀라시더라."
"에헴~ 내가 좀 잘 가르치긴 하지."
면허증을 받아 든 날, 나는 생각했다.
남편이 가르쳐준 건 단순히 액셀과 브레이크
밟는 법이 아니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시험에서 '실격'하더라도
"푸하하하! 다시 하면 돼!"하고 웃으면서
파이팅을 외쳐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삶의 운전대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때
함께 길을 찾아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그가 가르쳐준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이제 40대 인생 시작점에서
운전대를 잡고 섰다. 인생이라는 도로 위에서
예상치 못한 급커브에 휘청이기도 할 테고,
돌발상황에 급정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남편이 나에게 좋은
운전선생님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
속도를 내는 법부터 코너링하는 법,
돌발상황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법,
지칠 때면 쉼터에서 쉬어가는 법을 친절히
가르쳐줄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서로의 내비게이션이 되기도 하면서.
<부부사이에 자동차운전은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라는 말은 맞을 수도, 아닐 수도.
하지만,
<부부사이에 인생운전법은 가르쳐줘도
괜찮다> 정도로 정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