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했지만 성공적인 도피처로서의 결혼
"저 내년에 결혼해요!"
남편이 취업하자마자 나는 온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결혼한다고.
남편의 의사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이제 막 취업한 남편을 매일같이 들들 볶아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염치없는 설레발이었고,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었지만, 나는 절박했다.
2014년 7월, 당시 스물아홉 살의 남편은
취업에 성공했다. 남편의 취업은 나에게
'지옥에서 탈출하라!'는 신호와 같았다.
하지만 갓 취업한 신입사원의
통장잔고가 넉넉할 리는 없었을 터.
남편은 내 억지스러운 요구가 부담스러웠을 테고
많은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끝내 취업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나와의 결혼을 결정하고야 말았던 그.
요즘도 남편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리 좀 잡고, 적어도 몇 개월만 더 늦게 하면
대출도 저금리로 받고 좋을 텐데... 싶었지.
근데 당신을 보니까 안 되겠다 싶더라.
어차피 이 사람이랑 결혼 안 할 것도 아닌데,
좀 무리해서라도 일찍 결혼하는 게 맞다 싶었어."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여기서 좀 꺼내줘!"라고 말하는 나를.
결국 우리는 결혼을 위해 2,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그 빚으로 하얀 드레스를 입었고,
무려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났으며,
우리가 발 뻗고 잘 투룸 월세방을 구했다.
어느 누군가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또는 스스로 마련한 자금으로 든든히 시작할 때
우리는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든든한(?) 백을 메고
'부부'라는 이름의 인생여행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참 철없고 무모했다.
하지만 그 철없음이, 뒤는 생각 않았던 무모함이
(여전히 유리멘탈이지만) 무쇠솥으로 거듭날
용기를 가진 양은냄비가 되게 했다고 믿는다.
팍팍하고 답 없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결혼을 택한 것 아니냐고?
남편에게 조금 더 의존적인 삶을 살기 위해
결혼을 더 서두른 것 아니냐고?
다 맞는 말이다.
집이 싫었고, 발전도 없이 살아지니까 살아가는
답 없는 내 인생이 싫어 남편에게
기대어 살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러나 남편은 나라는 사람을 의존적이게 두지 않았다.
아니, 여전히 그렇기에 '않는다'로 정정하겠다.
누군가의 아내로만, 엄마로만 살게 하지 않는다.
한 인간으로서 나를 존중하고 존경한다.
내게 자동차운전을 가르쳤을 때처럼
스스로 핸들을 잡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게 힘껏 돕는다.
정신 못 차리고 속도를 높일 때 브레이크를
대신 밟아줄지언정, 운전대를 대신 잡아주진 않는다.
차는 다쳐도 사람만 안 다치면 되니
마음껏 즐겁게 운전하며 다니라고 말해준다.
나를 지켜줘야 할 연약한 사람이 아닌
100세 인생을 평생 함께할,
때로는 전쟁 같을 인생에서 함께 싸워나갈
한 사람의 파트너로 인정한다.
글쓰기를 하는 나를 보는 태도도 마찬가지.
"아직 당신 글은 작품이 아니야. 자만하지 마.
더 열심히 보고 느끼고 배우며 인풋해. 그래야
양질의 아웃풋이 나오지. 눈앞의 것만 보고
지레 겁먹거나 포기하지도 마. 길게 봐."
예열 없이 시속 200킬로로 달리려는 나를
급제동시키거나 하늘 위로 올라가려는 나를
끄집어내리기는 하지만,
"당신 진짜 대단하다. 우리 가족 내가 다
먹여 살릴게. 당신은 아무 걱정 말고 유유하게
글만 써."라는 달콤한 말은 하지 않는다.
동네의 작은 카페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봤다는 내게 남편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 커피에 관심이 있고 나중에 카페를
차리고 싶다거나, 그쪽 분야로 나아갈 생각이라면
해. 근데 지금 당장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고
싶은 거라면 난 반대야. 차라리 잘하고 좋아하는
독서 열심히 하고 글쓰기를
더 치열하게 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봐."
나를 의존하게 두지 않는 그의 단단함이,
이 결혼생활이 '도피'가 아닌
'현실을 직면하고 맞서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렇기에 나는 과거에도 배웠었고,
지금도 배우는 중이며,
앞으로도 기꺼이 배워나갈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는 연약한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온전한 파트너가 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