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데이트에서 프러포즈받은 이야기
"나한테 시집 와라."
아니, 이게 두 번째 데이트에서 할 소리인가?
미친 거 아냐?
"진심이야?"
"내가 누나 머리 위에 있는 먹구름 걷어주고 싶어."
대학시절, 20kg를 감량한 나는
세상 누구보다 예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예뻤다는 건 내 눈에만)
친구들이 나를 향해 이런 말을 할 정도.
"네가 걸어올 때면 500m 거리에서도 알 수 있어.
하도 예쁜 척을 하면서 와서."
내 안에 가장 밑바닥은 나만 아는 것이기에
남들에게 굳이 들춰 보이지 않았다.
가장 밝고 예쁘고 자신 있는 모습들만 보이려 했다.
누구를 만나도 나를 향해 밝은 사람이라 평했고,
고생 없이 자란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런 내게 남편의 먹구름 걷어주고 싶다는
한 마디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내 의구심이 들었다.
'나를 안 지 얼마나 됐다고
내 머리 위에 있는 먹구름을 걷어주겠다니!
내 뭘 보고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거지?
그나저나 철저히 감췄다고 생각했는데,
내 그늘을 이 사람은 어떻게 알아본 거지?'
스물네 살짜리 남자애가 치기 어린 객기로 하는
말일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계속되는 그의 은근한 프러포즈.
그 말을 전할 때는 평소의 유머 넘치는
장난꾸러기가 아니었다.
스물네 살이 하는 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진지한 목소리와 자신감 넘치던 눈빛.
처음에 황당했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쁨으로 변해갔다.
남들이 500m 밖의 내 아우라(?)에 감탄할 때,
이 남자는 내 머리 바로 위에 떠 있는
시커먼 먹구름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처럼... 화려한 수식어도, 값비싼 선물도 없었지만
그의 '시집와라'는 한 마디가 점점
내 심장을 세게 때렸다.
"내가 먹구름이 어디 있어? 다 나보고 밝다고 하는데?"
"나는 다 알지."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말해줘 봐."
"술자리에서도 애들이랑 잘 이야기하고 놀다가
가끔씩 멍 때리면서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일할 때도 집중하지 못해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어. 자존감도 많이 낮아 보이고...
내가 볼 땐 가면 쓰고 애써 밝은 척하는 것처럼 보여.
꾸미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알려주고 싶어."
타인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말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보였을까?
아니면 이 사람만 알아본 걸까?
밑바닥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도 잠시,
'그래, 이 남자라면 언젠가 들이닥칠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겠구나.'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믿음이 솟구쳐 올랐다.
몇 년 뒤, 그 믿음은 현실이 되었다.
나의 무지함과 부족함으로 2,000만 원의 빚과 함께
2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하며 허우적댈 때가 있었다.
이렇다 할 스펙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도 그만둔 이후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않고 소액대출을 받으며
노력 없이 당장의 달콤함만 좇으며
인생을 허비했던 시간들.
무언가에 홀린 듯 삶의 중심을 잃고 헤매었던 때.
불안했지만 불안하지 않은 척했고,
한심했지만 한심하지 않은 척했다.
더불어 찾아온 불면증과 극도의 예민함.
남편은 그런 나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애써 건네지 않았다.
무시하며 비난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내며
나라는 사람이 스스로 제자리를 찾기를 기다려줄 뿐.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날,
우산 없이 비를 쫄딱 맞고 있는 내 옆에서
우산을 씌워주기보다
우산을 손에 쥔 채 함께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것처럼.
연인이라는 사람의 힘든 상황을 보고
방관했던 것 아니냐고? 너무 포장하는 것 아니냐고?
당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남편은
밤낮 구분 없이 실험하고 연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에 바빴다.
나는 안다. 내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평생을
자책하며 자존감 낮은 상태로 살아갈 것을
남편은 알고 있었다는 걸.
당장 손 내밀어주는 것보다 묵묵히 자기의 길을
닦은 뒤 내가 혼자 일어섰을 때
함께 걸어 나갈 튼튼한 공간을 만들어두는 것이
나를 돕는 일이라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이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똑바로 서서 그와 함께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정신을 차리고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불면증이 사라졌고,
빚도 조금씩이지만 갚아나갔다.
불투명했던 미래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투명한 미래의 나에게는 항상 그가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2014년의 어느 날, 인생의 폭풍우를 함께 맞으며
버텨준 그에게 진지한 눈빛으로 내가 말했다.
"나한테 장가 와라."
잠시간의 침묵.
뭣도 없는 내가 하기에는 너무 염치없는 말인가?
후회가 되려던 순간,
남편은 이내 세상 가장 따뜻한 온도의 미소로
내 프러포즈에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