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F아내 vs 팩트폭격기 T남편
"여보, 나 브런치 작가 됐어!"
"축하해!! 근데... 거기 이상한 데 아니야?
여보 글 잘 쓰긴 해. 근데 거기서 왜?"
이 무슨 콜라 김 빠지는 소린가?
"아니, 고작 글 세 편 보고 당신을 뽑았다?
말이 안 되잖아. 어떻게 그걸로 이 사람이 능력이 있다
없다를 판단해? 그리고 브런치라는 곳
들어본 적도 없는데? 10년이 됐고, 그렇게 유명한
플랫폼이면 내가 들어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곳이야.
글을 꾸준하게 써서 출판사 눈에 들면
출간 제의도 받을 수 있고."
"아, 그럼 자유게시판 같은 곳이네? 글 마음대로
써서 올리고 출판사에서 고르는 거. 그럼 그거네.
글이 많으면 많을수록 대박 하나 터뜨리면
기업 입장에서는 좋으니까 너도 나도 뽑아서
몸집 부풀리려는 전략."
브런치가 자유게시판이라고?
참고로 내 남편은 극강의 T다.
나름대로 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결론이라는 것.
반박을 해 본다.
"너도나도 글을 쓰게 하면 전체적인 퀄리티가
낮아질 텐데 기업이 그걸 원하겠어?
심사팀에서 글을 얼마나 많이 읽을 텐데 단 한 줄의
글을 보고도 시장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않을까?
그리고 당신이 못 들어봤다고 유명한 곳이 아니다,
이상한 곳 아니냐는 판단은 너무 섣부른 것 같아."
"작가들 중에 출판사에서 출간제의 받는 사람들이
10% 이내래. 이 사람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 받은 사람인데 글 읽어보니까 정말 멋지더라.
대상 받으면 상금 500만 원에 출판기회까지 생기고."
"그럼 기대 안 해도 되겠네."
핸드폰을 보며 무심한 표정으로 던지는
남편의 한 마디.
콜라에 멘토스 수 백개를 넣은 것처럼
내 안의 서운함이 '펑'하고 폭발하려다 헛웃음이 났다.
누가 기대한다 그랬나? 참나...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18년을 함께한 사람인데 그의 깊은 마음을 모를 리가.
남편은 그저 내가 괜한 큰 기대를 안고 나중에
좌절하고 상처받을까 봐 한 말이었을 것이다.
알면서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여보, 나 지금 당장 대박 나겠다는 거 아니야.
나중에 그렇게 되고 싶다는 게 뜬구름 잡는 소리도
아니고. 어렵게 타이틀 얻었는데, 내 이름 박힌
종이책 한 권 내보겠다는 목표...
당연히 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
"당신 브런치 합격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지금 하는 거 봐봐. 너무 과열되어 있잖아.
밤잠도 안 자고, 하루 종일 노트북 붙잡고 앉아서...
인스타그램이랑 유튜브도 처음에 불타올랐잖아.
준영이 케어도 제대로 못하고,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잘 못하고...
그러다 조회수 안 나오고 쉐도우밴 먹으니까
금방 열정이 수그러들었지? 내 눈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금방 포기하는 것 같았어.
조회수 안 나와도 최소한 6개월은 한 가지 콘텐츠로
꾸준히 해보라고 내가 그랬잖아. 그런데 당신은
한 달 정도 해보다가 안되니까 바꾸고 또 하다가
안 되니까 바꾸고, 그러다 브런치로 갈아타는 걸로
밖에 안 보여. 양은냄비 성향의 전형적인 모습이잖아.
이것도 지금 열정에 불타다가 반응 없으면 상처받고
또 포기할 것 같아서 그래."
남편의 팩트 폭격에 온몸이 얼얼했다.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면 정말 김 빠진 콜라가 될 것 같아,
나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반격에 나섰다.
"당신 눈에는 이것저것 건드리기만 하다가 안되니까
포기하고 또 포기하는 걸로 보였겠다.
그럴 수 있겠어.
응, 나 돈 벌고 싶어서 인스타랑 유튜브 했어.
돈 빨리 벌고 싶은데 결과가 빨리 안 나와서 마음이
너무 조급했던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6개월도 못 기다리고 이것저것 시도했어.
그 과정에서 실패하며 상처받고 좌절했냐고?
아니, 전혀. 오히려 배웠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면 안 된다는 걸.
나는 정말이지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고
인플루언서가 될 만한 센스도 없다는 걸.
그래서 쓰던 글, 더 집중해서 쓰자 마음먹었고,
늘 마음속에 있었던 브런치라는 곳에
도전장을 내민 거야. 합격할 줄은 몰랐지만.
예전에 당신이 그랬지? 글 계속 꾸준히 써 두면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올 거라고. 그 빛이
0.1mm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나 양은냄비 맞아. 그런데 양은냄비가
제일 빨리 끓는다? 그 속도로 일단 20편 써볼게.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해.
그리고 나한테 사인 미리 받아두는 게 좋을 거야.
나중에 안 해줄 거니까 후회하지 말고."
내가 양은냄비라는 걸 인정할 줄 몰랐나?
남편은 잠깐 벙 찐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대상이나 출간 제의 같은 거창한 미래는
일단 접어두기로 한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끓어 넘쳤다 식어버리는 양은냄비가 아니라,
매일 일정한 온도로 나를 기록하는 무쇠솥이 되는 것.
내 삶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는 이 작업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일 저녁에도 나는 노트북을 켤 것이고,
남편은 슬며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놓아주겠지.
그래도 사인은 안 해줄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