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뭔가 하고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었던 날
나는 말주변이 없다.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들을 입술 근처에서 정리해 내는
능력이 남들보다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생각과 말이 어긋나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며칠 밤을
'후회의 이불 발차기'로 지새운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언니, 브런치라는 플랫폼 알아요?
나 거기에 글 쓰는 작가 됐어요."
"진짜? 내가 뭐 어떻게 하면 돼?
이게 네가 쓴 글이야?? 대박~!"
지금의 동네로 이사오기 전
학부모 사이로 만나 친하게 지냈던 J언니.
아이들의 국악극 공연관람을 위해 만난 오늘,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 나와버린 말이다.
알릴 생각이 없었는데 정말 나도 모르게!
"M은 정교사 자격이 있거든. 우연히 oo고등학교에
TO가 나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고,
H는 어린이집 다니고 있어. 그리고..."
주변 엄마들이 각자의 사회적 위치를 찾아
안착했다는 소식들이 쏟아졌다.
그 평온한 성취들 사이에서 내 마음속엔
뾰족한 조바심이 돋아났다.
'나도 뭔가를 하고 있어요!'라는
비명 같은 외침이 입술 끝까지 차올랐다.
브런치 어플을 설치해 내 글을 읽는 언니.
나는 바로 후회했다.
'아, 괜히 말했어. 아직 글도 몇 개 없는데...
내가 왜 그랬지? 입이 방정이다. 다른 엄마들은
각자 사회적 위치를 찾아가는 중인데 현실감각 없이
글이나 쓰고 있다고, 집 대출금도 갚아야 하는데
나가서 돈을 벌어야지, 글도 못 쓰는데 무슨 작가냐고
비웃으면 어떻게 하지?
너무나도 개인적인 이야기들인데
나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언니, 다른 엄마들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집에 오는 길에도, 저녁을 차리는 중에도
후회가 밀려왔다 쓸려갔다를 반복했다.
"나 진짜 웃기는 여자네."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말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축하해 주기를 바라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브런치 작가 데뷔> 소식을
대문짝만 하게 게시해 놓고
오늘의 일은 부끄럽고 후회된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거다.
그렇다. 나 자신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그저 내 안의 관종력이 비집고 나왔던 거다.
알릴 생각이 없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
알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던걸 참고 있었을 뿐.
그러다 참지 못한 방귀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뽀옹'하고 새어 나온 것이다.
'제발 다른 엄마들한테도 널리 알려주세요!'라는
마음이 담겨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여전히 마음은 편치 않다.
아니 편한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잘 써야겠다.포기하지 않고 써야겠다.'라는
행복한 책임감이 나를 에워싼다는 것.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이제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내가 뱉은 말의 무게만큼, 아니 그보다 더 무겁고
단단한 문장을 써내는 것.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하기보다,
비웃을 틈조차 주지 않는 치열한 작가가 되는 것.
오늘 밤은 후회의 발차기 대신
다음 글의 첫 문장을 벼리며 잠들어야겠다.
(그럼에도 발차기 열 번은 더 할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