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받지 못한 브런치 작가 데뷔

축하받지 못한 현재의 나 vs 축하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

by 유유


친구의 침묵을 탓하다가,

잊고 있던 나의 '업보'를 마주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게시했다.

축하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걸까?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내가

나름의 페이스대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중이라는

것을 그저 자랑하고 싶었을까?

글에 대한 나의 애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가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

브런치에 대한 일언반구의 말도 없는 것에 대해

크게 서운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브런치가 뭔지 몰라서 그런가?'

'그래도 작가가 되었다고 하는데,

궁금해하지도 않네?'

'나는 지난번에 축하한다면서 선물도 줬는데

내 게시물에는 좋아요조차도 안 눌러주네?'


서운한 마음과 싸우고 있을 때, 문득 떠오른 과거.



수년 전,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직장에서 만난 동료였는데,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여

같은 시기에 임신을 했고 일주일 차이로

아이를 출산했던 친구. 아이를 데리고 놀러 온

그 친구는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나 OOO아파트 청약 당첨됐어. 23평짜리."


"응. 네 식구 살기에는 너무 작다."


그게 전부였다.

어떤 축하의 말도, 부러움의 말도 없었다.

사실 '축하해'라는 세 글자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당시 1억 6천만원짜리 전세에 살던 나는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더 컸기에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우리 사이는 그렇 천천히,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로부터 1년 뒤, 우리 부부에게도

아파트 청약 당첨이라는 기쁨이 찾아왔고,

당첨소식을 들은 그날 나는 그 동생을 떠올렸다.

나의 반응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던

그 아이의 표정을. 축하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기억을 잊으려 했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 오늘, 축하받지

못해 서운한 마음을 가진 것이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마치 "너도 그때 그랬잖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내가 준 상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을 하며

잊어놓고, 나의 서운함만 생각하는 옹졸함이었다.

그때 그 동생은 얼마나 서운했을까.

단 한 마디면 되었을 것을..

나는 왜 그 한 마디를 못했을까.

새로운 시작을 하는 그녀에게 나의 축하가

작은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누군가의 성공과 기쁨에 온마음 다해 축하하는 데에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한 것인지,

또는 넉넉한 경제상황이 필요한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것은

나의 진심 어린 축하 한 마디가 상대방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행복에 기꺼이 '축하해'라고 말할 때,

비로소 나의 행복도 누군가에게 축하받을

자격을 얻는다는 것을 이제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