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0순위, 아이는 1순위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1순위가 누구야?"
"당연히 준영이지!"
"그럼 0순위는?"
"0순위도 있어? 그럼 0순위가 준영인데?"
"아니지~ 0순위는 엄마여야지~ 엄마가 그랬잖아.
자기를 제일 사랑하라고. 그리고 엄마,
밥을 좀 많이 먹어. 내가 남긴 거는 좀 먹지 말고!
나보다 밥을 조금만 더 많이 먹으면 좋겠어."
부끄러웠다. 아이는 자기가 남긴 밥과 반찬을
먹는 나를 보며 '엄마의 사랑'을 느끼기보다
'자기 자신을 우선순위로 챙기지 않는 엄마'로
느꼈던 거다. 남긴 밥을 먹는 엄마보다 온전한
밥그릇을 비워내는 엄마를 보고 싶었던 거다.
백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아이에게
가르치면 뭐 하나? 엄마가 지키지 않고 있는데.
준영이는 알고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우리 집의
온도가 따뜻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엄마가 스스로를 0순위로 돌보고 가꾸어야
자식인 자기를 온마음 다해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는 아이가 남긴 음식을 먹지 않는다.
(적어도 아이 앞에서만큼은)
대신에 아이가 음식을 최대한 남기지 않게
이전보다 양을 조금씩 줄여 배식을 한다.
모자라면 더 먹으라고...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집안 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조방낙지>에서 홀서빙.
한 두 번 일하는 모습을 본 준영이가 말했다.
"엄마, 나도 나중에 커서 조방낙지에서 일할래."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하는 아빠를 보고도 말한다.
"나 어른 되면 대리운전 기사 해야지!"
또 아빠가 본업으로 일하는 사무실을 가보고는
"우와~! 나도 여기서 일할래! 아빠랑 같이!"
아이의 눈에 엄마, 아빠가 하는 일들이 멋있어
보였던 걸까. 대단해 보였던 걸까.
아이는 알고 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는
자신들의 일을 함에 있어 자부심과 당당함을 가지고
임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오늘, 전화 너머로 엄마가 말했다.
"한 동안 글쓰기 안 하고
인스타랑 유튜브로 요리하고 먹방하고 할 때는
몸에 안 맞는 옷 입은 것 같이 위태위태하더니
글 쓰는 건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엄마가 봤을 때.
정말 네가 하고 싶어서, 너를 위해서 하는 것 같아서
엄마 마음이 좋아."
지난해 약 3개월간 인스타와 유튜브를 운영했었다.
맛집 소개, 요리레시피 소개,
밀키트를 조리해서 먹고 리뷰하는 콘텐츠.
한 가지 콘텐츠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바꾸기를 여러 번. 결과는 중도포기.
엄마 말이 맞았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었다.
맛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음식에 대해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음식을 콘텐츠로
뭔가를 해보려 하다니. 어리석었다.
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아, 이 사람은 진심으로 즐기면서 하고 있지 않네.'
그러다 보니 조회수와 사람들의 반응에만 연연하며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을까, 어떻게 하면 더 빨리 팔로워를 늘릴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인플루언서가 빨리 될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합리화를 하지만
실상은 참 어리석었다. 그리고 급했다.
3개월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급하면 체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배웠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나보다 더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다는 것을 배웠다.
유튜브 구독자 84명인 나와 함께 식당에 갈 때면
"엄마, 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엄마 알아보고
사인받으러 오는 거 아냐?"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했다.
나의 삶을 가장 나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엄마여야 했다.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다시 써 내려갔다.
잘 모르는 음식에 대해 촬영을 하는 대신
내가 가장 잘 아는 내 삶의 온도를 쓰기로 했다.
내 삶의 0순위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아이가 정말 사랑하는 나를 나부터 온전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한다.
글 쓰는 일이 내 몸에 딱 맞는 옷이라는 확신은
사실 아직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불특정 다수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잘 되기 위해' 마음이 급하지 않다는 것.
그저 어제도 썼고, 오늘도 쓰고 있으며,
내일도 쓸 것이라는 것.
아이에게 당당하게 "엄마 글 쓸 거야. 너도
책 만들거나 책 읽자."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이런 모습이 준영이에게 자부심이 되길,
빠른 시일 내에 나에게 딱 맞는 옷이라는 확신이
들길 바라며,
어제 사 온 딸기 박스에서 가장 예쁘고 큰 딸기
일곱 알을 골라 먼저 먹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