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파솔'라'톤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적막한 친정이 낯설어진, 어느 며느리의 고백

by 유유


결혼 후 처음 맞는 명절,

명절이 그렇게 시끌벅적한 날인 줄,

고스톱이 그렇게나 배꼽 빠지는 놀이인 줄,

그날 나는 난생처음 알았다.



시댁 식구들은 기본적으로 목소리들이 크다.

그리고 표현력 또한 커서 많이 시끄럽다.


일례로 시엄마, 시누이, 남편 이렇게 세 명이

토론 아닌 토론을 할 때면

나는 웃으며 말한다. "또 시작이네, 시작이야."

누가 누가 목소리가 크나 대결하는 사람들처럼

목청을 높여가며 각자 자기 할 말만 하는 세 사람.

그러나 희한하게도 말이 통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그럴 때면 준영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 너무 시끄러워서 TV 소리가 안 들려."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다.

나는 기본적으로 고요한 분위기에서 자랐고

표현도 잘 못하는 성격에 말하는 것도 즐기는

편이 아닌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다가온 두 여자, 바로 시엄마와 시누이.

충청도 사투리와 서울말이 묘하게 섞인

그녀들의 말투와 표현력은

내게 가히 공격적이었고 낯섦 그 자체였다.


도레미파솔라, '라'

라톤으로 말하는 두 사람은 음식이 맛있을 때도,

고마울 때도, 감동받을 때도, 슬플 때도,

그렇게 표현에 적극적일 수가 없었다.

위화감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목소리도 작고 톤도 높지 않은 나에게는 나를

"우리 막내딸", "하나뿐인 내 여동생" 하며

예뻐하는 말들조차도 가식으로 다가오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결혼을 하고 2년쯤 지난 어느 명절날,

친정엘 갔는데 친정의 적막한 분위기가 너무 적응이

안 되는 거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시댁 식구들의 반응과 너무

다른 리액션에 당황하기를 몇 번,

고스톱을 치는데 세상 그렇게 재미없는 고스톱이

있었던가 싶은 거였다.


시댁 고스톱은 패 하나에 비명이 오가는데,

친정 고스톱은 마치 독서실에서 패를 돌리는 것처럼

경건했다. 그 정적이, 그날따라 왜 그리 낯설던지.


조용한 물가에 살던 물고기가 파도치는 바다로

던져져 당황했었는데, 파도 타는 법을 배우고 나니

잔잔한 물가는 심심해서 못 살겠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시댁의 시끄러운 분위기에

물들어갔던 것이다.



물론, 표현력의 차이가 사랑의 크기 차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친정 식구들의 사랑의 온도가,

그 크기가 결코 작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한다.


다만, 마음은 표현을 할수록 서로 간에 더 친밀함이

생길 수 있고 그 크기도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시댁 식구들을 통해 배웠다.



아이를 출산하고 참 어려웠던 것이 있었다.

바로 말 못 하는 아기랑 대화하기! 사실 돌아오는

대답이 없기에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거지만.

아기에게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건 내게 너무나도

어려운 미션이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민망하고도 어색한 그것.


침묵의 조리원과 친정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내게

시엄마와 시누이의 대화스킬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아구, 우리 이쁜 준영이, 준영아~ 그래쪄요?

맘마 먹어쪄요? 아고, 예뻐라, 우리 준영이~"


끊임없이 아이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넋을 잃었다.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될 재목이 못 되나? 저런 말이 어쩜

저렇게 술술 나오지? 안 민망한가?'


아이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온 집안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지르는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말하는 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처음 용기 내어 준영이에게 말 다운 말을 걸었던

기억을 꺼내본다.


"준영아~ 준영아~ 아가~"


평소와 다른 명확하고 크지만 다정한 목소리에

거짓말처럼 짧은 옹알이로 답하던 준영이.

안간힘을 써서 엄마의 말에 답해준 아이가 기특해서,

안간힘을 써서 아이에게 말을 건넨 내가 기특해서

영문 모를 준영이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 뒤로 봇물 터지듯 수다스러운 엄마가 되었냐고?

아니, 전혀. 묵언수행 하던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조용하고 말수 적은 엄마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는 게 없는데 어떡해!

다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이 미안함과 아쉬움으로 남을 만큼

과묵했지만.



결혼 11년 차인 나는 아직도 '라'톤이 못 되었다.

여전히 시댁 식구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속에서

한 발짝 물러난 관찰자일 때가 많다.

여전히 조금은 과묵한 엄마이자 며느리이지만,

이제는 나의 침묵이, 시댁 식구들의 시끄러움이

어색하지 않다. 나의 고요함을 감싸안는 소란스러운

사랑 안에서 기분 좋게, 나만의 방식과 온도로

그들을 사랑하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