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서 불안장애 약을 먹는 나
H사에서 8,000만 원짜리 자동차를 구매한
구매자에게 출고정지 통보를 내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유는 구매자의 주거지가 임대아파트라는 것.
일명 '차깡'을 하기 위해 비싼 자동차를 구매했을
가능성을 두고 내린 조치였다는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남편과 기사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말했다.
"아마 여보랑 결혼 안 했으면 나도 그런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카드깡하고 신용불량자
되고... 얼른 여보 코 꿰길 잘했지, 내가!"
20대의 나는 길을 잃었었다. 2,000만 원의 빚과
함께 구멍이 숭숭 난 채로 어디로 굴러가야 할지
몰라 위태로웠던 나날들.
그런 내 곁에서 남편은 묵묵히 자기 자신과 나를
지키며 미래를 위해 한 발짝씩 나아갔다.
가진 거라고는 손대면 톡 하고 산산조각 나버릴
유리멘털과 빚 밖에 없는, 뭣도 없었던 나는
염치 좋게도 남편에게 결혼하자고,
빨리 나 좀 데려가라고 재촉했다.
책임감이었을까. 그저 사랑이었을까. 남편은
자신의 인생으로 기꺼이 나를 '입고' 시켜 주었다.
"어휴...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지."
"그러니까, 진짜 큰 죄를 짓지 않고서야..
전생 조사 한 번 해봐야 한다니까? 진짜 우리
둘이 원수 지간이었을 수도 있어.
정신 못 차리던 인간 하나 사람 만들어 놨지.
근데 여보,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여보 벤츠 타게 해 준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이런 아내를
다 얻었으니'라는 진심의 소리 나오게 해 줄게."
우리는 큰 소리로 웃어젖힌다. 남편의 진담 섞인
농담에 놀라지는 마시라. 우리의 오랜 대화 방식이니.
남편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다.
가난에 굴복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자기 자신 하나만 믿으면서.
매사에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남편은 허세가 살짝
있기는 하지만 늘 자신감이 넘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패기가 있다.
연애와 결혼생활의 모든 과정에서 그는 강한
정신력과 자존감을 내가 조금씩 물들어갈 수
있도록 지켜보며 도왔다.
"너는 그 누구보다 빛나는 보석이야."라는 말을
아끼지 않으면서.
그랬다. 나는 남편이 없으면 쓰러지는 존재였다.
남편이 많은 의지가 되었고, 남편 또한 나를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유리멘털을 가진 여자'라
여겼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남편이 없으면 쓰러지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말할 수 있다.
"점점 호야화 되어가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함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함께 꾸려 나가는 파트너로서 존재한다.
다만, 자립과 독립은 홀로 서서 사는 것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올바른 나로 서서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걸어 나가는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여전히 남편에게 '짐짝'이 될 때도 있음을 고백한다.
2024년 10월, 정신과를 찾은 내게 의사가 말했다.
전문용어를 못 알아들으니 쉽게 설명해 주셨다.
"지금 기분이 너무 좋은 상태예요, 유유님은.
유유님 몸은 50만큼을 처리할 수 있는 몸인데
기분이 80만큼 업이 되어있어서 몸이 못 따라가니까
불안이 오는 거예요. 기분을 좀 눌러주는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내 마음대로 해석한 건지 모르겠으나, 그날 나는
남편을 향해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나 여보랑 사는 게 너무 행복해서 불안이 온
거래!! 인생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내 몸이 못
따라가서 과부하가 온 거래! 너무 신나지 않아?"
웃기지 않나? 몸이 기분을 못 따라가서 생기는
불안이라니. 남편은 행복해서 불안장애 약을
먹어야 하는 아내를 챙겨야 하는 처지에까지
놓인 거다! 행복하게 해 줘도 난리냐고!
"여보는 진짜 전생에 무슨 죄를 얼마나 크게
지었길래, 이제는 하다 하다 공황장애 약 먹고
녹내장 약까지 넣어야 하는 나를 데리고 사는 거야?
재난 상황에서 나 혼자면 진짜 죽을 거야.
여보 없으면 나는 안 돼. 나 버리지 마. 푸하하하!"
"알아줘서 고맙다. 푸하하하!"
이렇게 살아가는 거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건 채워주면서,
포기할 수 있는 건 과감하게 포기하면서...
내가 아직 꼿꼿하게 서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남편이 내게 의지할
수 있는 작은 안전지대 정도는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