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친구와 마시는 레몬맛 맥주
참 이상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끙끙 앓으며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쳐야 유유인데,
너무 아무렇지 않은 게 정말 이상했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과거의 어느 날,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정리했다.
한때는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
그 사람의 진심을 믿을 수 있게 도와달라
기도할 만큼 간절했던 관계였는데,
이상하리만큼 냉정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
그 사람의 마지막 말들로 인해.
나의 솔직함을 되레 나를 공격하는 무기로 삼는
그에게 더 이상의 배려는 필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찝찝했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간절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자,
거짓말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관계에 전전긍긍하며 쓸데없이 감정에너지를
소비하는 유유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그로부터 카톡 알람이 울려도,
전화벨이 울려도 반응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여보, 내가 알던 유유 맞아? 예전이랑 너무 다른데?
역시 내가 사람 하나 잘 만들어놨어."
"그렇지, 나 기특하지? 당신이 잘 만들었지만 결국
달라진 건 나잖아. 당신 같은 남자 만나도 안 바뀔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 나니까 이만큼 성장한 거지."
그랬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아니, 출산하기 전까지,
아니, 2년 전까지였던가.
나라는 사람은 인간관계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늘 허우적거리던 사람이었다.
바다같이 넓은 인간관계도 아니었다.
좁디좁은 연못 정도? 누군가 자갈돌 하나만 던져도
내 마음의 수면은 며칠을 요동쳤다.
그 안에서 나는 타인의 감정에 일일이 반응하며
나를 소모했고, 정작 내 마음이 말라가는 것은 몰랐다.
과거의 나는 관계의 단절을 두려워했었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사람이었으므로.
관계를 억지로라도 이어가는 것만이 나에게 득이라고
생각했었다. 관계가 끊어지면 나는 외로워질 것이고
혼자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구구절절한 장문의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손가락을 덜덜 떨었었다. 좁디좁은 내
연못의 수면이 요동칠 때마다, 누군가 던진 돌에
흙탕물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마다
내 영혼이 시커멓게 멍들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 연못이 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 좁은 관계들도 어떻게 이어 나갈지를 몰라
늘 눈치 보며 전전긍긍하던 나를 구한 건 바로
가족이었다.
남편은 '연못에서 나와라!'하고 손 내밀어주는 대신
좁아터진 그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밖에는 푸릇푸릇 잔디 위에 평생을 함께할 자신이
지키고 서 있음을 알려주었고,
아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를 지켜야 할 이유가
되어주었다.
지금의 나는 연못 밖 잔디밭을 지키고 선 한 사람과,
내 손을 잡은 아이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좁디좁지만 깊고,
작지만 단단한 지금의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심이 드는 것도 사실.
오늘도 우리는 레몬맛 무알콜 맥주를 각자 앞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말한다.
"친구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친구 없어도 돼.
같은 편 먹고 발맞춰 나갈 평생 친구가 여기 있잖아.
우리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