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해하기 - "교실 안의 야크": 선생님과 촌장님

어른쉽, 존중, 그리고 자기 주도적 선택의 마중물이 된 멘토링

by 유유자적

교실 안에 야크가 왜 있을까? 궁금해서 보게 된 영화.

지난 몇 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쾌하고 많이 웃었고 사랑스러운 힐링 영화였다.


철없는 도시선생님과 루나나…

부탄의 젊고 철없는 도시선생님 유겐이 산간벽지, 전화도 전기도 없는 오지 중의 오지에 발령 나서 겪게 되는 일들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까지 근무해서 의무기간 5년을 채우라는 교육부장관의 엄명. 고산증이 있어서 그렇게 높은 오지에는 못 가겠다는 유겐에게 “부탄사람 맞아요?”라고 일갈하며 그냥 발령을 내버린다. 한 성깔 하시는 여성 장관님 되시겠다.

하는 수 없이 길을 나서는 유겐. 이번 근무만 끝내서 의무기간 채우고는 호주로 이민을 갈 예정이다. 수도 팀푸에서 발령지 루나나까지 가는 데 8일이 걸린단다. 그중 버스가 닫는 곳은 하루까지 만 이고 나머지 기간 동안은 강기슭을 6일간 “가볍게” 걸은 후 올라가야 한단다. 게다가 중간에 며칠은 숙박시설이 없어 야영을 해야 하고. 그래서 버스가 끝나는 곳에 선생님을 모셔오라 촌장님이 마을의 총무격인 미첸과 당나귀를 보내셨다. 여정이 진행됨에 따라 화면에 표시되는 자막이 재미있다.

가사. 인구 448명. 고도 2800m.

코이나. 인구 3명. 고도 3100m

그렇게 며칠을 걷다가 마침내 마을사람들이 마중 나온 것을 보고 주인공이 외쳤다. “다 온 거여요?” “아니요. 2시간 더 가야 해요.” “그럼 저 사람들은요?” “선생님이 오셔서 너무 기뻐서 모두 마중 나온 거랍니다”

마침내 도착한 곳.

루나나. 인구 56명. 고도 4800m

학교를 돌아보고 좌절한 주인공. 도저히 적응 불가, 다시 돌아가겠다고 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핸드폰을 충전할 수도 없는 곳이다. 아무래도 돌아가야겠다는 유겐에게 “당나귀가 좀 쉬어서 회복하면 모셔다 드릴게요”라고 하시는 촌장님. 선생님을 그냥 가시게 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미첸의 만류를 조용히 가라앉히신다. 그냥 가면 어쩌냐 화를 내거나 강요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으시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신다. 이 촌장님, 어른쉽을 제대로 보여주시는 분으로 영화 내내 이 분의 대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음날 아침, 꿀잠 중 누군가 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조그만 여학생이 하나 초롱초롱 서있다.

누구냐는 질문에 선생님께 공손하게 인사 후 “펨잠 이~나. Class captain 이~나” 이름은 펨잠이고 반장이란다. 누구라고? 다시 물으니 “Class captain 이~나”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수업이 8시 30분인데 지금 9시여서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으신지 와보았단다. 또랑또랑 맑은 목소리로 해맑게 이야기한다. 영화 명장면 중의 하나이자 나의 최애장면이다. 실제 이름도 펨잠이라는 이 아역배우, 직업배우가 아니라 현지인이었단다. 이~나. …이~나라는 말이 예뻐서 찾아보니 ~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정도 뜻의 존대어법인 것 같다. 부탄의 종카어는 우리말처럼 존대법이 상당히 복잡하게 존재하는 언어라고 한다.

교실에 아이들이 있다고? 당황하신 선생님, 곧 갈 테니 교실에 가 있으라 하고는 얼결에 수업을 시작한다. 전교생 9명. 내 이름은 유겐... 이름을 쓰려고 보니 흙벽에 칠판이 없다. 칠판이 어디에 있냐는 질문에 "칠판이 뭐여요?"라고 묻는 학생들. 자신들에게 무엇이 없는지를 몰라 결핍을 모르는 장면이 가슴에 알싸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수업을 시작하고 보니 아이들을 떠날 수 없다. 며칠 후 촌장님이 미첸과 함께 오셔서 이제 당나귀가 회복되어 떠날 수 있다 하자 아무래도 계속 머물러야겠다 하시는 선생님. 너무 기쁘신 촌장님이 필요한 것 뭐든 말씀만 하시라 하셨다. “필요한 게 있기는 한데요…” 나무를 자르고 먹칠을 해서 뚝딱뚝딱 칠판을 만들어 내는 미첸. 분필도 동글동글 뭉툭하게 반죽 빚어서 만들었다. 맥가이버가 따로 없는 극강의 자급자족.

그렇게 선생님의 수업은 시작된다. 수업이 끝나고 어린 여학생을 무릎에 앉히고 손톱을 깎아준다. “공무원이 되어서 국왕님과 일하겠다고 했지? 그러려면 손톱이 깨끗해야 해” 영어시간에 A for Apple, B for Ball, C for Car, 하는데 아이들이 apple과 ball은 아는데 car는 모른다. 본 적이 없단다. Car를 Cow로 바꿔 주시는 훌륭한 선생님. 공책이 없는 아이들에게 종이를 나누어 주는데 어느 날 반장이 종이가 다 떨어졌다 한다. 창문에 바람을 막느라 덮어놓은 전통종이를 잘라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종이가 돈 보다 귀하다는 루나나에서. 이런 장면들이 전혀 과장 없이 그냥 심드렁하게 일상으로 그려진다. 장대위에 걸린 양변기커버를 보고 놀라 저게 뭐냐 물으니 아이들 놀이기구란다. 농구골대. 미첸이 그 골대를 이마로 받치고는 단단히 묶어놓는다. 매우 진지한 얼굴로.


어른쉽, 존중, 그리고 선택의 마중물 – 조용한 멘토링...

유겐선생님이 팀푸를 떠날 때 그에게 루나나는 의무기간을 채우라는 명령의 수행처일 뿐이었다. 절대 가고 싶지 않으나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던 곳. 도착해서 보니 도시출신인 그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곳이어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설득도 강요도 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촌장님을 만나고 선생님을 오랫동안 기다린 학생들을 만나면서 루나나에서 근무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는 어느덧 학생들과 함께 하겠다는 스스로의 선택이 된다. 의무가 사라지고 자기 주도적 선택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그 선택은 유겐선생님의 선한 마음을 뭉게뭉게 끌어올리는 동력이 된다. 정성 들여 수업을 준비하고 수도 팀푸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아이들 학용품을 보내게 하고 학생들에게 기타 치며 음악을 가르친다. 아이들이 앉아 있는 교실의 모습도 바뀐다. 줄 맞춰 앞뒤로 나란히 있던 책상들은 어느새 둥글게 모여 앉는 자리로 변해있다. 철없는 젊은 선생님이 이렇게 변화해 가는 과정에 촌장님이 조용히 크게 작용한다. 첫 수업 때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학급의 유일한 남학생인 싱게라는 아이가 장차 교사가 되고 싶다 한다. 이유를 물으니 “선생님은 미래를 어루만지는 분이니까요”라고 한다. 미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촌장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범대에서도 못 들어본 말이었어요” 유겐이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묵직한 존경이자 교사의 가치를 정의해 준 것이다. 촌장님은 자신의 이런 철학을 유겐에 대한 대접에서 계속 보여준다. “선생님께 차를 드리세요” “선생님께는 나무 그릇에 드리세요” “길한 기운이 선생님을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대접에 유겐은 멋쩍어하면서 말한다. “제 친구들이 제가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 걸 보면 어이없어할 거여요” 마을의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이 정말 필요했던 촌장님은 그 선생님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자신의 가치를 알게 하고 자발적으로 그 역할을 하게 하는 멋진 멘토이다. 리더십보다 빛나는 어른의 모습으로 어른쉽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촌장님 덕분에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은 유겐은 자신도 모르게 의무를 스스로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의무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되는 순간 자신이 상황의 주인이 된다. 통제소재(locus of control)가 발현되며 많은 일들을 스스로 기꺼이 해나간다. 이제 그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의무를 이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황의 주인이 되어 자신이 만들어 나간다. 촌장님에게 계속 머물겠다 한 후 나뭇가지를 꺾어 교실의 먼지를 청소하는 장면은 그의 능동성과 효능감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가 한껏 일상적 선함으로 피어오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무, 선택, 주도성, 통제소재라는 일련의 어휘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알게 함으로써 이런 상황을 이끌어낸 촌장님의 어른쉽과 조용한 멘토링, 조용하고 소중한 마중물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주도성의 발현과 효능감을 경험한 것은 이후 유겐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마침내 호주이민 허가를 받아 호주로 떠난 후 어느 식당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중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와 상관없이 웃고 떠들자 조용히 노래를 멈춘다.


교실 안의 야크는 야크 똥을 주워서 말려 땔감으로 사용하는데 주우러 다니지 말라고 야크를 한 마리 교실 안에 가져다 둔 것이다. “이 아이에게 먹이는 선생님이 필요한 똥만큼만 주세요”하면서. 날씨가 추워 밖에다 두면 안된다면서. 야크 이름은 노부. 선물이라는 뜻 이란다. 그런데 촌장님과의 대화를 보면서 실제 야크는 선생님을 지칭하는 중의적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전생에 야크 목동이었던 것 같아요” “아니요, 선생님은 그 이상 이셨을 것 같아요. 야크 셨을 것 같아요” “야크요???” “네, 야크는 많은 것을 주거든요” 야크를 목동보다 위에 놓는 것에 놀랐다. 눈 덮인 히말라야산이 영화 내내 배경으로 나오게 카메라를 잡아 눈호강했다. 불교적 사고가 몸에 밴 사람들의 대화가 인상적인 영화의 대사들을 계속 곱씹어보게 한다. 이 사랑스러운 영화를 이제야 보다니… 젊고 철없는 선생님도, 아이들도, 마을사람들도, 촌장님도, 만능해결사 미첸도 모두 사랑스럽다. 그리고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좀 내려놓고, 숨 돌리고, 관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마음속에 편안한 힐링 한 자락을 넌지시 건네며 슬쩍 무언가 무장해제 시키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코치로서 질문은 유겐선생님이나 촌장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고 싶어졌다. 지금 나는 얼마나 편안한가… 나는 과연 나이에 걸맞은 어른쉽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편안한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가… 나는 의무가 아니라 주도적 선택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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