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해하기 – “왕과 사는 남자”: 단종임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자존심, 자존감, 자기 효능감

by 유유자적

국민으로 들어갔다가 백성으로 나온다는 영화. 누적관객 1700만을 넘기는데 응원 한 표 보태려 영화관에 다녀왔다.


효능감, 존재감, 그리고 자존감…

자신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심리학적 용어로 흔히 쓰이는 자존심(pride), 자존감(self-esteem),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일상에서도 흔히 쓰이는 용어들인데 영화 보는 내내 단종임금을 바라보면서 이 세 가지 단어가 계속 연결되어 떠올랐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상왕으로 존재하다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를 떠나는 단종임금의 모습은 삶에 대한 의지나 에너지가 바닥까지 떨어진 채 처연한 모습이다. 유배지 청령포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던 단종임금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시점이 호랑이를 활로 쏘아 죽여서 백성들을 구하는 때이다. “너의 상대는 나다”라고 하며 호랑이의 머리에 화살을 명중시킨다. 이렇게 효능감을 불러 올린 단종임금은 존재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자존감을 회복하며 삶에 다시 복귀한다. “몹시 배가 고프구나”는 단순히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먹고 기운 내고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세상에의 합류의사를 슬쩍 드러내는 멋진 대사이다. 단종의 이런 변화를 한명회는 알아차린다. “그의 눈빛은 예전의 어리고 병약한 눈빛이 아니라 호랑이의 눈빛이다” 살아보기로 한 그의 변화는 역설적으로 그를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 위태롭게 한다.


사람을 신나게 하는 것 – 인정과 칭찬...

이 영화에서 인정은 단종임금뿐 아니라 청령포 백성들에게도 중요하다. 활로 호랑이를 잡아 백성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우러름과 인정을 받은 단종은 백성들에 대한 탁월한 인정의 향연을 펼친다. 막동어멈의 국을 맛본 단종은 누가 국을 끓였나 묻는다. “수라간 상궁보다 낫다”는 단종의 칭찬은 단지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 뿐인 산골 아낙을 대궐의 수라간 상궁보다 뛰어난 음식솜씨를 가진 사람으로 자신의 존재와 효능감을 느끼게 한다. 뜀박질 잘해서 토끼를 잡아 밥상에 올린 마을 청년, 통발로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끓이게 한 아이, 산딸기를 따서 밥상에 올린 아주머니 등에 대한 인정과 칭찬은 그저 하찮았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일을 수행한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효능감을 가지게 한다. 그 사람들 하나 하나와 식사를 같이하면서 밥숟가락 듬뿍 하얀 쌀밥을 나누어 주는 장면들이 꽤 인상적이었다. 글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태산이 글공부를 하겠다 찾아오고 글을 배운 태산이 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삶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꽤 많은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명회가 위협을 느끼기 전까지는. 티키타카 보수주인 엄흥도에게는 아주 나중에 칭찬을 건넨다. "이제보니 인물이 출중하구나"

마을사람들을 대하는 단종임금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심리적 기질은 MBTI 중 NF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대한 통찰이 있고 품격 있는 리더들의 심리적 기질. 마을사람들에 대한 인정과 칭찬으로 동기유발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그는 훌륭한 조직문화 리더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자존심…

자존감이 자신에 대해 스스로 느끼고 인정하는 자신의 인식이자 자기 수용의 태도라고 한다면 자존심은 타인과의 비교, 사회적 체면이나 명예와 관련된 감정이다. 자존감은 낮아진다 하고 자존심은 상한다고 한다. 태산이 장형을 당하는 곳에 나타난 단종임금에게 "저놈 노산이 아직도 제가 무슨 왕이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라고 하는 한명회는 그야말로 프로 자존심박살러이다. 그것도 마을 백성들이 있는 곳에서. 영화내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애초에 미탑재된 인간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이 일로 단종임금은 금성대군의 거사에 응하기로 한다. 단종임금이 자신의 마지막을 한명회 일당에게서 비롯된 방식에 결코 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의 경계를 지키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상왕의 신분이었던 그가 무릎 꿇고 앉아서 왕의 교지를 받을 때 느꼈을 수치와 모멸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무릎 꿇고 앉아 사약 교지를 받을 것을 거부하는 것은 그 사약을 내리는 주체들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임과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삶을 함부로 하게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존심이고 그 자존심은 자신의 품격을 지키는 마지막 결기이다. 그렇게 그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대한의 자기 결정과 주도성을 가지고 생을 마무리한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세조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본 사건을 다룬 그의 방식이 어째 어느 수준의 교전수칙을 넘어 심하게 과잉살상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혹시 세조 자체가 자존감이 낮아 여유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사건을 맡아서 다룬 한명회가 그렇게 하는 것을 묵인하며 그 뒤에 숨은 회피형의 사람은 아니었는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연구해 볼 부분이다. 내가 만일 단종임금을 만나면 코치로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의 자존감과 자긍심의 고양에 기꺼이 일조하고 싶다. “2026년도 대한민국에서는요 국민이 중요한데요, 1700만 명 국민이 임금님을 애도하고 있답니다. 그것도 500년 넘게나 지난 지금에요. 1700만 명은요, 할바마마셨던 세종대왕님 시대 조선 전체인구가 700만 명 정도였으니 그보다 천만명이 많은 거랍니다. 이건 조선왕조 27명의 왕 어느 분도 누리시지 못한 것이랍니다. 그러니 임금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랍니다” 사실 이 분 대단하신 분이시다. 원손으로 태어나 250여년에 걸쳐 왕세손, 왕세자, 왕, 상왕, 노산군, 노산대군을 거쳐 단종에 이르셨다. 역사상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리 오랜 기간 동안 신상의 변화를 거치신 분은 없으시리라. 기왕 내친 김에 세속적 자존심도 좀 세워드리는 것은 어떨까 한다. “수양대군이셨던 세조임금의 묘소 누리집에 누리꾼들이 댓글을 달았답니다. “그러고도 니가 왕이냐”라고요” 무어라 대꾸하실까 궁금해진다. 500년 만에 전 국민이 단종임금의 장례를 치르는 것 같다고 했다는 어느 누리꾼의 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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